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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Aug 16. 2023

한 그릇의 뜨끈한 순댓국 같은 연극 한 편.

[여보, 나도 할 말 있어!] 관람기 

 지난 주말, 나의 십 년 육아 동지에서 운동 동지가 된 그녀의 제안으로 연극 한 편을 관람했다. 

제목이 [여보, 나도 할 말 있어!].

 

사실 그녀의 남편은 배우고, 오래전부터 이 연극에 출연하고 있는 중이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본 공연에는 그녀의 남편이 맡은 역할을 성우로도 유명한 안지환 씨가 맡아 좀 

아쉬웠는데,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어쩌면 다행인 건가?

만약 내가 유치원 졸업식에서 뵀던 그녀의 남편이 직접 출연해 열연을 펼치는 걸 봤다면,

그녀와 나는 웃다가, 배꼽이 빠지고, 기절했다, 깨어났다를 반복하고

결국 나뒹굴어 무대 앞에서 발견됐을 것이다. 

 

"아줌마들, 정신 차리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이 연극, 진짜 재밌고, 어마어마하게 웃기다. 



 연극 보는 걸 좋아해 20대부터 대학로를 자주 기웃거렸다. 방송작가로 일할 땐 표가 생기는 일도 가끔 있었다. '오! 마이 레이디'라는 드라마 보조작가로 일할 땐, 이 드라마에 뮤지컬 제작자가 등장하는 이유로 작가님과 여러 편의 뮤지컬과 연극을 관람하고 제작자와 인터뷰도 했다. 난 옆에서 질문도 챙기고, 답변을 녹음하고 메모도 하는 잡무를 담당했다. 그러면서 생겼던 내 선입견은 우리 창작극은 재밌기 힘들다! 몇십 년 무대에 올려진 고전 같은 작품이 표값은 비쌀지 몰라도 작품성과 재미는 보장된다! 아마 많은 분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연극을 관람하고 나오며 그 선입견이 깨지는 시원한 느낌을 경험했다. 아! 이게 진짜 우리 이야기다. 


이 연극은 30대부터 60대까지 여성 4명과 은퇴한 중년 남자, 고단한 40대 가장 총 6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그들은 각 세대가 경험할만한 고충과 사연을 갖고 있고, 그 이야기를 해학과 풍자로 풀어나간다.

오래 친구를 만나도 내놓기 어려운 우리 집 이야기가 연극 속 이곳저곳에 아주 풍성하다.

특히 내가 공감한 건 40대 엄마가 사춘기 아들 휴대폰을 부수는 장면이었다. 

하여간 요즘 다들 우아한 육아를 트렌드인 줄 아는 거 같은데, 솔직히 사춘기 애 키우면서 휴대폰 한 번 

안 던져본 엄마, 몇이나 될까?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에 엄마가 아이한테 감정 섞어 

큰 소리 좀 치는 장면만 나오면 거기 앉은 패널들 무슨 끔찍한 장면이라도 본 듯 과하게 놀란다.

자식 키우며 감정을 배제하라고? 그게 가능할까? 솔직히 백 번 참다가 소리 몇 번 지르면 

최악의 부모가 되는 세상이 난 좀 불편하다. 육아를 왜 이렇게 빡빡하게 해야 하지? 

하지만, 연극을 보니 걱정이 사라진다. 원래 말 안 듣는 사춘기 아이를 키울 땐 휴대폰이 날아가는 

대 혼돈의 순간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꽤 큰 극장이었고, 2층까지 가득 찬 객석엔 깔깔깔 웃음소리가 

넘쳤다. 남의 자식 키우는 것에 훈수는 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자식이 속 뒤집으면 전문가도 솔직히 

우아하기 힘들 것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특히 난 내 옆에 앉아 연극을 관람한 내 또래 중년 부부의 반응이 너무 재밌었는데,  

아내의 웃음소리도 우렁차고 경쾌했지만, 특히 남편분! 비상금 에피소드에 혼자 빵 터져 웃는 모습을 보니

분명 저 아저씨 연극 끝나고 집에 돌아가며 아내에게 이렇게 말할 거 같다. 


"다들 우리처럼 사나 봐!"


아저씨 속이 편해지셨을 거 같다. 난 여성에 비해 남성에게 더 임팩트가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여성보다 남성이 자신의 속 마음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에 서툴러 속병도 더 깊이 드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이 이 연극을 보면, 진짜 속이 뻥 뚫리실 거다. 고단한 일상에 이런 웃음 한 스푼을 추가하는 게 얼마나 값진 일인가? 집에 돌아와 이 작품에 대한 내용을 검색해 보니 초연이 2013년 5월이고, 이후 전국 66개의 도시에서 500회 이상 공연을 했다고 한다. 대단하다!  

  




 중년 이후의 삶은 지속성이 핵심이다. 청년에 만나 중년까지 살아오며 너무 많은 걸 쏟아부은 이 가정을 계속 지킬 건가? 박살을 낼 건가? 물론 박살을 낼만큼 용기 있고 능력도 있는 분이라면 해당 안 될 수 있지만, 그래도 참고 살아야 할 거 같은데, 마음이 힘들다면 이 연극 관람을 추천한다. 

결혼 이후, 출산 이후, 자녀 출가 이후, 은퇴 이후! 내가 마주한 벽과 고단함이 생각보다 일반적이고, 

평균일 수 있다는 안도감이 당신에게 행복으로 다가올 것이다. 


뜨끈한 순댓국 한 그릇을 다 비운 듯 배가 부르다. 마음이 아주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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