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 #'케이크와 맥주' #독후감
서머싯 몸의 '케이크와 맥주'는 읽은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문득 생각이 난다. 그 문장 진짜 웃겼지! 하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지난 일요일 도서관에서 그 책을 또 대출하는 날 발견했다.
옆에 있던 막내가, 엄마는 왜 자꾸 그 책을 빌려? 다 읽은 거 아니야? 한다.
그러게 말이다. 다 읽은 책인데 왜 자꾸 손이 가는지!
이유는 있다. 다 읽었으니 아무 데나 펼쳐 또 읽어도 앞 뒤 내용이 떠오르고,
어떤 부분, 순간 나를 멈칫하게 만든 명문장을 다시 만나면 반가워 낄낄 웃고
곱씹으며 아! 서머싯 몸 아저씨, 진짜 매력 넘치네! 하게 된다.
난 이 책을 읽고,
대작가의 산전수전공중전 인생을 내가 직접 다 살아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작품은 당대 유명한 작가와 그의 아내, 여러 주변인들에 대한 각종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출판계에 만연한 고질적인 문제들을 풍자하며 때로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아마도 서머싯 몸, 그 자신일 1인칭 화자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서술해 나간다.
작가인 자신이 겪은 짜증 나는 일도 있는 거 같고, 업계에서 누군가 보여준 꼴 보기 싫은 모습도
담아낸 듯 같다. 읽다 보니, 요즘도 비슷하게 그런 거 같고, 작가가 되는 건 어마어마하게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막상 되고 나면 엄청 골치 아플 거 같은 느낌이랄까?
작가의 성공 그 이후의 긴 삶,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우여곡절, 그리고 죽음까지...
한 번뿐인 인생인데 꼭 그렇게 골 패며 살 필요 있나? 그런 생각이 들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래 묵혀 발효된 욕망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거 같았다.
긴 인생 여정에서 어떤 갈망, 어떤 성공의 의미를 깊이 성찰해 본 느낌이었다.
그래서 대작가의 인생을 다 살아본 듯한 기분이 들었던 걸까?
특히 이 문장! 작가의 인생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준다.
'작가를 흔드는 인간들은 수두룩하다. 인터뷰를 하려는 신문 기자들,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 원고를 달라는 편집자들, 소득세를 긁어가는 세금징수원들, 오찬을 같이 하자는 귀하신 몸들, 강연을 부탁하는 협회 국장들, 결혼하고 싶다는 여자들, 이혼하고 싶다는 여자들, 사인해 달라는 젊은이들, 배역을 달라는 배우들, 생판 남인데 돈을 빌려달라는 사람들, 감정이 북받쳐 부부 문제를 상의하려는 부인네들, 자기 작품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진지한 청년들, 대리인들, 출판업자들, 관리인들, 따분한 인간들, 팬틀, 평론가들, 그리고 작가 본인의 양심. 하지만 작가는 한 가지 보상을 얻는다. 뭔가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면 괴로운 기억, 친구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슬픔, 짝사랑, 상처받은 자존심, 배은망덕한 인간에 대한 분노, 어떤 감정이든, 어떤 번뇌든 그저 글로 풀어버리기만 하면 된다. 그걸 소설의 주제로, 수필의 소재로 활용하면 모든 걸 잊을 수 있다.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이다.'
실제로 서머싯 몸은 결혼을 하고 이혼도 했다. 그는 작가로서 많은 것을 누렸지만, 고단한 부분도 많았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어떤 번뇌든 글로 풀어버릴 수 있는 자유인이라고 하니! 너무 멋지다! 그러면서 나도 좀 위안을 받았는데, 나는 물론 대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 번뇌를 글로 풀어버리며 살고 있으니
나도 어쩌면 그가 말한 자유인 자격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좀 좋아졌다.
지금까지 내가 브런치에 올린 육아 관련 글, 남편에 대한 글은 대부분 내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는
작업이었다. 특히 아무리 지독한 부부싸움도 약간의 유머를 버무려 글로 쓰고 나면 내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고, 내 글을 읽은 상대방(아마도 남편)도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거 같았다. 물론 남편의 이해를 위해서 쓰는 것보다는 나 스스로 편안함에 이르기 위해 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건, 나는 서머싯 몸만큼 대담하고 솔직하진 못하다. 생각해 보면, 서머싯 몸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 소설 속 이 인물, 나 아니야? 몸, 이 양반 못쓰겠네?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고?
사람 좋아 보이길래, 작가라길래, 똑똑해 보이길래 믿고 내 마음을 다 보여줬는데, 그걸 자기 소설에 이용했다고? 어쩌면 화를 냈을지도! 그런데, 작품해설을 읽다 보니 실제로 이 소설 내용의 실제 인물로 추정되는 인물이 소설을 읽고 출간을 막으려 편지를 썼다는 내용도 작품 해설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하여간 서머싯 몸은 거만하고, 속들여다 보이는 인간을 아주 싫어한다.
(물론 세상에 그런 사람을 누가 좋아할까 하지만, 잘 모르고 좋아하는 인간도 생각보다 많다.)
그들이 쓴 가면을 조롱하기도 하고, 씁쓸해하기도 한다. 물론 본인도 그 당시 유명한 작가로 추앙받는
남성 지식인이었으니 종종 그 시선으로 여성, 특히 나이 든 여성과 낮은 계급의 인간을 도도하게 바라보는 느낌이 없지 않다. 당연하다. 그는 무려 1874년에 태어났으니까! 높은 수준의 젠더 교육을 받은
요즘 세대에겐 거슬리는 부분이 없지 않겠다. 심지어 그의 다른 작품 '면도날'을 보면, 그런 양상은 더욱 뚜렷하다. 특히, 미국인을 속물로 낮게 보는 느낌! 확실히 있다. 영국남자의 도도함, 대단하다!
그럼에도 요즘 나, 사실 서머싯 몸에 푹 빠져있다.
무엇보다 냉소적이면서 통찰력 넘치는 유머가 진짜 딱 내 취향이다.
이것도 '케이크와 맥주'에서 읽은 인상 깊은 문장이다.
'알다시피 두렵지 않은 경쟁자를 칭찬하는 것은 만만찮은 경쟁자를 견제하는 좋은 방법이다.'
이건 진짜 인간의 저~ 바닥 아래 심리 아닌가? 초등학생도 구사하는 이런 지질한 사회생활 스킬을 대작가 서머싯 몸이 언급했다는 게 너무 재밌어 깔깔 웃었다. 그리고, 또 이 문장,
'평균 나이를 넘긴 노작가가 노년에 보편적으로 칭송받는 진짜 이유는 지식인들이 서른 살이 넘으면 글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읽은 책들은 화려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니 그 책을 쓴 저자의 가치는 해마다...(중략) 물론 계속 글을 쓰고 대중의 시선 안에 머무는 노작가여야 한다.'
으아! 제대로 뼈 맞았다. 내가 툭하면 무라카미 하루키 좋아요 타령하는 것이 서른 살 이후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었다니! 말이 나온 김에 남겨두고 싶은 게 있는데, 사실 최근에 나온 그의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결국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동안 "나 무라카미 하루키 좋아해!" 얼마나 노래를 불렀나? 그랬으면 마땅히 읽어야 하는 것인데, 의리로라도 읽어야지 하면서 결국 덮어버린 건, 도입부에 십 대 소년 소녀의 야릇한(?) 만남, 그 부분이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다. 과거 그의 소설에 원래 그런 내용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더한 것도 많았는데, 왜 갑자기 그게 목에 걸리나 궁금했다. 근데, 깨달았다.
나도 나이가 든 것이다.
심지어 이십 대, 십 대 두 딸을 키우다 보니 왠지 이제 할아버지가 되신 작가님이 왜 이런 걸 계속 쓰시나? 그런 생각이 들고 말았다. 슬프게도...
어쨌든 '케이크와 맥주'를 읽으며 이제 나, 무라카미 하루키 좋아해요! 그 말은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좋아하긴 하지만!
그리고 나 이제 '서머싯 몸'에 꽂혔다. 중년이 되니 고전이 읽힌다. 단편집 두 권과 '면도날'에 대한 글도 곧 쓸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예비 중학생 막내의 겨울방학이 너무 길다. 끼니 챙기기, 청소 정리에, 빨래, 무엇보다 사춘기 진상 수발까지, 하여간 너무 힘든 하루하루다. 그 와중에 서머싯 몸의 소설을 읽으며 즐거움을 느낀다. 몸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중년의 아줌마가 본인의 책을 읽으며 낄낄 댈 거라고 생각은 했을까? 아마 못하셨을 거 같다. 그러니까, 중년 여성의 손을 조류의 발이라 표현하셨겠지!
"요즘 당신의 책을 읽으며, 마치 당신이 제 옆에서 그 오래전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 같아요.
진짜 한번 만나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날 어떻게 표현할까? 정말 궁금합니다. 실력은 안되는데 작가가 되고 싶어 환장한 여자? 다행히 거의 포기한 여자? 밥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모른 채 덥석 결혼하고 아이 낳은 여자? 중년의 비만과 승산 없는 싸움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는 여자!!
왜 사람들이 당신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다 털어놓은 건지, 조금은 알 거 같아요.
만나고 싶습니다. 서미싯 몸 당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