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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서 이러면 안 되니까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는 당신을 위한 랩소디

by 임지원


글을 쓰러 스타벅스에 자주 간다. 걸어서 15분, 차로는 5분 거리이고 종일 주차가 가능하다. 곧 차단기가 설치되고 주차 시간을 계산해 돈을 받을 거 같지만 아직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도 스타벅스는 있다. 그런데 책상의 위치와 컨디션, 그리고 콘센트의 위치가 좀 의아하다. 설계자의 의도인가? 하여간 글 쓰러는 오지 말라는 거 같아 조금 멀리 있는 스타벅스까지 간다. 1층보다 2층에 훨씬 넓은 구조인데 그 넓은 2층의 절반 정도가 공부하세요 공간처럼 느껴지고 나머지는 수다 떠세요 하는 거 같다. 공부하세요 공간에는 벽 쪽으로 쪼르르 놓인 책상과 여섯 명이 앉아서 글을 써도 될 만큼 힘 좋은 책상이 두 개 나 놓여 있다. 카페지만 도서관 같다. 게다가 거기엔 완벽한 위치의 콘센트가 있고 적당한 거리에 화장실도 있는데 놀랍게도 화장실 문이 보이지 않는다. 다섯 걸음 정도 걸어야 하는 복도 안에 숨겨 놓았다! 가까운 곳에 있지만 시아에는 들어오지 않는 화장실. 설계자는 분명 뭘 좀 아는 양반이다. 문을 여는 시간은 아침 7시 30분. 닫는 시간은 밤 10시. 난 가능하면 일찍 가서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댄다. 햄에그 샌드위치랑 케일 앤 사과주스 그리고 과일컵까지 챙겨 2층으로 올라간다. 벽 쪽 자리를 선호하는 편인데 이유는 모니터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안전하다. 누가 보는 게 싫다기보다 그냥 그런 느낌이 필요하다.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건지 그 벽 쪽 자리들이 먼저 채워진다. 선호하는 자리가 비어 있으면 얼른 가서 가방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노트북을 편다. 지금부터는 청소 빨래 정리 끼니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TV와 유튜브의 유혹도 떨칠 수 있다. 나 말고도 내 주변으로 노트북을 펼치고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모르는 타인이지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집중력이 높아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연령도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하다. 노트북을 펼치지 않았더라도 '팀장의 능력'같은 제목의 책을 보거나 문제집, 자격증 시험 관련 공부를 한다. 드물게는 혼자 와서 누군가와 큰 소리로 통화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무대 위에서 방백을 하는 배우처럼 보이기도 한다. 둘이나 셋이 함께 와서 수다를 떠는 건 그냥 그런 가보다 하면서 점점 그 소리가 백색 소음으로 전환되는데 혼자 앉아서 휴대폰을 통화하는 걸 들으면 왠지 추리를 하게 된다. 돈을 빌려달라는 건가? 만나자는 건가? 부탁을 하는 건가? 설마 나 들으라는 건가? 듣고 있는 내가 싫다. 추리하는 나는 더 싫다. 써야 하는 글은 안 쓰고 딴짓을 하는 거 같아 속상하다. 더 큰 복병은 방백 같은 전화통화를 하면서 종아리와 발끝을 마구 떠는 것이다. 모니터를 보고 있지만 그 떨리는 발끝이 시아에 들어온다. 안 보려고 애를 쓰자 검은 물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한쪽 눈을 감아본다. 검은 물체는 사라졌지만 모니터가 잘 안 보인다. 안 되겠다. 두 눈을 다시 뜨고 몸과 노트북의 방향을 20도 정도 살짝 틀어본다. 떨리는 검은 발이 시아에서 사라졌지만 왠지 진동이 느껴지는 거 같다. 흔들리던 잔상이 머리에 남아 있나? 머리가 지끈지끈... 어떻게든 저 검은 발에서 해방되고 싶다. 간절히 소망해 보지만 그의 통화가 길어진다. 이제 끊었다! 휴우 안도하는데 잠시 후 다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그가 하는 말이 들린다. 아니 들려온다. 나는 또 추리를 한다. 부탁을 하고 있다. 검은 발이 더 강렬하게 흔들린다. 저 검은 발의 떨림은 초조함이었구나! 난 드디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옆 자리에 앉은 그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이봐요 젊은이! 우리 할머니가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시고, 한복 바느질을 해서 번 돈, 그 얼마 안 되는 걸 쪼개서 십일조, 감사헌금, 건축헌금까지 하신 신앙심 두터운 권사님이셨어요, 그런데도 발을 떨면 복 나간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발을 떨면 일이 되겠어요? 그리고 이건 좀 개인적인 건데 제가 지금 글 써서 밥 먹고 산 지 거의 30년 만에 제 이름을 단 어린이 소설을 출간해요. 그런데 이제 쓸 만큼 썼는지... 잘 안 써져요. 콘크리트에 삽을 꽂는 기분입니다. 제발 그 발 좀 그만 떨면 안 될까요?"


이러면 안 되니까 벌떡 일어난 김에 배려심 넘치는 위치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온다.




20240714502703.jpg 세계일보 기사에 나온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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