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줌마의 취미생활
집안일을 하다가 지치면 한숨을 쉬며 거실 소파에 털썩 앉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비스듬히 놓인 우쿨렐레가 보인다. 바라보기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귀여워 죽겠다. 조심스럽게 우쿨렐레의 목을 잡고 살짝 품에 안아본다. 깃털처럼 가볍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오른손 검지로 현을 튕겨본다. 크르릉~ 왠지 모를 원시적인 느낌이 소리와 함께 공간을 메운다. 첫소리는 언제나 시원하다. 상쾌하다. 난 C코드부터 잡고 현을 튕기며 우우우 우우우우우 우... somewhere~ , Em 코드로 전환! over the rainbow~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불러본다. 하와이 출신 음악가 이즈라엘 카마카위올레(Israel "IZ" Kamakawiwo'ole)의 대표곡 Somewhere over the rainbow다. 코드가 쉽고, 손가락 전환도 어렵지 않다. 연습도 많이 해서 그런지 내 연주가 제법 능숙하다. 그럴듯한 연주자처럼 느껴진다. 기분이 좋다. 흥이 난다. 날 보는 사람도 없으니 부끄러울 것도 없다. 고개를 앞 뒤로 까딱거려 보고 창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목소리에 한껏 프로 가수 같은 그루브를 넣아본다. 이 순간... 마법에 걸리듯 나의 공간이 작은 무대로 바뀐다.
대학로 오래된 건물 지하에 있을 법한 컴컴한 공연장. 무대 한가운데에는 라탄풍의 작은 의자가 놓여 있다. 우쿨렐레를 든 채로 선 나는 청바지에 오렌지색이 들어간 체크 남방을 입고 있다. 관객을 향해 인사를 한다. 작은 박수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려온다.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큰 거 같아 보이진 않는다. 난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는다. 조명이 은은하게 날 비춘다. 코 앞에 스탠딩 마이크가 있다. 관객을 한 번 바라보고 왼손으로 잡은 코드를 확인한다. 드디어 현을 튕기고 마이크에 다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우우우~~ 우우우우우~~ somewhere over the rainbow~ 노래가 끝나자 조명이 꺼진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박수가 시작된다. 처음엔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박수 소리가 커진다. 우레와 같은 박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오래 이어진다. 다시 조명이 켜지면 난 무대 위에 우쿨렐레를 안고 서 있다. 다음 곡은 Carpenters 'Close to you'라고 관객에게 말한다. 다시 이어지는 박수. 그리고 마지막 곡은 '언젠가 슬기로울 전공의'에 나온 '달리기', 아직 연습 중이라 조금 서툴지만 해보겠다고 한다. 손가락을 전환하며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연주는 무사히 끝난다. 난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관객을 향해 인사를 한다. 박수 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곧 마법이 풀리고 무대는 사라진다. 다행히 우쿨렐레는 아직 내 품에 남아 있다.
나의 우쿨렐레는 소프라노 음역이고, 줄과 부품 몇 개를 제외하면 악기 전체가 나무로 만들어졌다. 브랜드는 1955년부터 우쿨렐레를 만들었다는 일본 브랜드 FAMOUS, 난 이 친구를 지난 5월 일본 후쿠오카 여행을 갔다가 PARCO백화점 8층에 있는 중고악기 매장에서 만났다. 그곳엔 다양한 크기와 각양각색의 우쿨렐레가 벽 한쪽에 진열돼 있었다. 난 거기 있는 모든 우쿨렐레를 한 번씩 안고 현을 튕겨보았다.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한 50년 우쿨렐레만 만들어온 장인이 만든 것 같은 분위기. 디자인도 색깔도 각양각색. 아름답고, 앙증맞다. 하지만 그 멋진 녀석들 중에 바로 이 친구를 품에 안았을 때 왠지 모를 따듯한 느낌이 나에게 전해졌다. 확신했다. 이 친구가 나의 우쿨렐레다. 쳇 GPT는 이해할 수 없는 기준으로 선택된 나의 우쿨렐레. 나는 종종 이 친구와 함께 환상의 세계로 가 공연을 한다.
*주말 빼고 매일 연재하던 그 아줌마의 오후 3시는 오늘로 일단락됩니다. 많이 놀았으니 얼마간은 책임져야 할 어린이소설 쓰기에 매진하려고요.
곧 놀고 싶을 테니 조만간 이어질 겁니다. 다음 연재는 주 2회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