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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Mar 24. 2021

in 코로나/병원 입원 고군분투기

나에겐 올해 97세이신 할머니가 있다. 

함경북도 출신이시며 일제시대는 물론 

전쟁과 피난까지 겪으셨다.

이후 일찍 남편과 사별 후 아들과 함께 

인생의 거대한 풍랑을 겪으신

나의 할머니...

할머니는 나를 키워주셨고, 나의 딸까지 길러주셨다.


"할머니... 윗집에 아이를 맡겼는데 

그 집 아이가 얼굴을 다 뜯어놨어... 엉엉"


밀레니엄 베이비로 태어난 큰 아이를

사람 좋은 윗집 아줌마에게 맡기고 다시 일을 시작했던 시기였다.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오니 아이 얼굴이 엉망이 돼 있었다.

내 전화를 받으신 할머니는 본업인 한복 바느질을 접고 

바로 다음 날 우리 집으로 출근을 하셨다. 


"그 집에 주기로 한 돈 나한테 줘라"  


할머니가 얼굴이 많이 붓고, 숨이 가빠 몇 걸음도 못 떼신다고

당장 병원에 데려가라고 난리를 치신다고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코로나만 무사히 넘기시길 그토록 바랬는데... 큰일이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할머니 집으로 차를 몰고 가며 병원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3년 전 할머니 고관절 수술을 했던 여의도 성모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응급실과 호흡기 내과 번호를 전달받았는데 

응급실에서는 치료할 침상이 없으니 오면 안 된다고 한다. 

호흡기 내과는 통화 중... 계속 통화 중. 

안 되겠다 싶어 다른 병원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뉴스에 집단감염으로 언급되던 병원은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다.

또 다른 병원 응급실로 전화 연결이 됐는데 

지금은 치료할 수 있는 침대가 없다며 오지 말라고 한다. 

그 병원 호흡기 내과로 연결을 해주어 물어보니

지금 예약하면 한 달 후에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우리 할머니는 어떡하냐고 하니, 

병원마다 전화를 걸어 알아보라는 거다.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았다. 

할머니 숨이 가빠오는데, 갈 수 있는 병원은 없다고? 21세기에? 

팬데믹 상황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할머니는 이미 옷을 갈아입고 당장 병원에 데려가라고 

호통 중이라는데 머리가 아득해졌다.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여의도 성모병원 호흡기 내과에 전화를 걸었다. 

받을 때까지 걸자! 그런 심정으로... 걸고 또 걸고 또 걸고 걸고.. 

몇 십통은 건 거 같다. 이때, 갑자기 전화가 연결이 됐다.    

급히 받은 느낌이길래 얼른 할머니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할머니 주민등록번호를 말해달라는 거다. 지금 모르는데... 그러자 

그럼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는 거다. 나는 너무 다급해,


"제발.. 전화 끊지 말아 주세요! 제발요..." 


그분에게 나의 휴대폰 번호를 남기고 할머니 집으로 가  

주민등록증을 손에 들고 전화를 기다렸다. 과연 전화가 다시 올까? 두려웠다. 


"할머니 입고 갈 수의는 장롱 서랍에 있다." 


우리 할머니는 윤달이면 바느질 동지를 집으로 불러와 

여러 분의 수의를 만드셨다. 할머니가 만든 수의를 입고 

남편이 저 세상으로 곱게 잘 갔다고, 고맙다고 딸기를 사다 주기도 했단다.  

할머니의 수의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시다.  

그 와중에 당신이 입고 갈 수의도 만들어 두신 거다. 

3년 전 고관절 골절돼 병원 갈 때도 같은 말을 하셨더랬다. 장롱 서랍...  


"맨날 그 소리..."  내가 투덜대자,


"... 지원아, 할머니 좀  살면 좋겠는데..." 

"... "

할머니의 이 말 때문에 전화 거는 걸 멈출 수 없었던 거다. 


놀랍게도... 간호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고 

코로나 때문인지 열이 나는지 기침을 하시는지 요양원에 계시는 건지

그런 것들을 확인하더니 12시 30분까지 병원에 와서 외래 접수를 하라는 것.

  

그렇게 도착한 병원 호흡기 내과 외래진료실은 한마디로 북새통이었다. 

호흡기 내과 간호사님을 찾으니 누군가 저분이라고 나에게 알려준다.  


그분은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를 진료실 앞에 

대기시키고 진료를 마친 환자에게 많은 내용을 안내하고 있었다.  

수없이 진료실 안팎을 왔다 갔다 하며 

정말 많은 환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 북새통에... 내 전화 한 통이 뭐라고

무시하지 않고 챙겨주신 그 마음이 

고마워 눈물이 날 거 같았다.  


할머니와 병동에 보호자로 있을 아빠가 코로나 검사를 받은 후, 

다시 집으로 가 대기하고 저녁 8시 즈음 음성 결과가 나와 입원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제야 할머니와 아빠를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긴 하루...

코로나 시대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시스템보다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절감한 하루였다.    


일주일 후 할머니는 퇴원을 하셨다.  

폐에 찬 물을 다 뺀 할머니는 얼굴에 붓기가 빠지고, 호흡이 안정되자 혈색도 돌아왔다. 

이제 100살까지 거뜬하다고 하신다! 브라보!  


할머니의 수의는 장롱 서랍 속에 한참 더 있어야 겠다!  


*여의도성모병원 호흡기 내과 간호사님,

그리고 개인 휴대폰으로 저에게 응급실과 호흡기 내과 전화번호를 보내주신

전화 상담원분... 정말 고맙습니다!   

사실 이 병원 지하주차장 들어가고 나갈 때

그 뱅뱅 돌아가는 길이 너무 좁아서 여러 번 투덜댔는데 (가본 분은 알 겁니다..ㅜㅜ)

그 마음조차 이번에 크게 반성하며 차단기 올려준  

주차장 직원분에게도 "감사합니다!" 인사를 크게 하고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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