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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Mar 24. 2021

방탄소년단과 왕뚜껑에서 찾은
산상수훈

2018년 7/8월호 CTK에 실린 칼럼입니다.

*오늘 유퀴즈에 출연한 방탄소년단을 보니 2018년 여름, BTS의 [봄날]을 들으며 

늦둥이 육아 우울증 속에서 고3 큰 아이 입시 뒷바라지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 

그 시절 CTK에 실린 칼럼을 올립니다.  

(Christianity Today는 미국 개신교의 복음주의 성향 잡지이며 CTK는 CT의 한국판입니다.)




 작년 여름, 강화도에 있는 캠핑장에 다녀온 적이 있다. 남편의 가장 오랜 친구이면서, 나에겐 교회 오빠이기도 한 그 집사님 가정은 소문난 캠핑 마니아다. 고맙게도 가끔씩 게으른 우리 부부를 불러준다. 사실 오래전에는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했었다. 하지만,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등등 바빠진 아이들의 학업 스케줄로 인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보고 싶은 마음에 큰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작은 아이만 데리고 캠핑장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에 예상치 못한 얼굴이 하나 있었다. 그 집 둘째, 우리 큰 애를 졸졸 따라다니며, 언니~ 언니~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던 귀여운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얼굴엔 잔뜩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채, 나 건들지 마세요. 하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진짜 오기 싫은데 억지로 따라온 느낌이었다.        


“어머 언제 이렇게 컸어!” 


앗 실수였다. 너무 흔한 레퍼토리. 역시 반응이 없었다. “어머 이뻐졌네!”는 어땠을까? 아니다. 과거엔 못났다는 이야기로 들릴 거다. “예쁘네..!” 괜찮을 거 같다. 가볍게 던지면, 첫 멘트로 적당할 것 같기도 하다. 그땐 외모가 중요하니까. 나도 모르게 그 귀엽던 아이 눈치를 보게 되고,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고... 그러다 이상하게 마음이 아파왔다. 


 나는 중학생이 얼마나 어려운 시기인지 조금은 안다. 아직 크지 못한 상처투성이 아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더 아프게 찔러대는 곳. 내 편이라 믿었던 친구가 톡방에서 나를 모욕하고,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어마어마한 공포. 그 공포가 언제든 나에게 올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차라리 마음의 문을 닫고, 나는 너보다 강해. 그러니까 꺼져. 하는 표정을 짓는 아이들. 그 세계엔 어른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내 아이가 견뎌주기를, 이 모든 것이 지나가기를, 조금만 더 참아주기를...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많이 울면서 기도했었다.  


 “이모, 방탄 콘서트 친구들하고 가고 싶은데, 엄마가 못 가게 해요. 말 좀 해줘요” 


그 정신없는 콘서트장을 친구들과? 그래 너희들 말로 ‘헐’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우리 큰아이도 고1 겨울방학에 지가 좋아하는 래퍼가 나오는 힙합 콘서트를 가겠다며, 아빠를 구슬려 티켓을 사려다, 당일 나에게 들통이 난 사건이 있었다. 당연히 살벌한 응징과 함께 무산되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니 나는 다정하고 우아하게 마치 그 분야에 깊은 관심이 있는 것처럼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이야... 방탄 좋아하는구나! 그 애들 음악이 그렇게 좋아?” 


나는 어쩌면, 잘생겨서? 멋져서? 뭐 그 정도를 생각하고 질문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아이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이모, 방탄 노래 들으면, 애들 다 울어요.”

“울..어? 왜?”

“둘! 셋!이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그 노래 부르면 다 울어요...”     


그 노래의 부제는 ‘그래도 좋은 날이 더 많기를’이었다. 가사 중 클라이맥스는 바로 여기. 


“괜찮아, 자 하나 둘 셋 하면 잊어! 슬픈 기억 모두 지워! 내 손을 잡고 웃어. 

(중략) 그래도 좋은 날이 훨씬 더 많기를 믿는 다면 하나 둘 셋! 믿는다면 하나 둘 셋!”


폭발하며 발산하는 춤과 멜로디, 아이들의 답답한 마음에 한잔 사이다 같은 거친 가사들... 목청이 터져라 “하나 둘 셋!”을 외치며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해봤다. 그 아이들에게 슬픈 기억들 얼마나 많을지 알기에 가슴이 아파온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두 어깨를 짓누르는 나쁜 기억들... 그걸 지우고 싶어 눈물을 흘리며 하나 둘 셋을 외친다니,  아 하나님, 마음이 너무 아파요.      


 듣다 보니 나에게도 위로가 찾아왔다. 괜찮단다. 힘들어서 짜증 나서 아이에게 소리 질렀던 순간은 잊으란다. 둘째 아이 병원에 있을 때, 퇴원할 수 있을지 없을지. 무섭고 답답했던 기억을 지우란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웃으란다. 그래도 좋은 날이 훨씬 더 많을 거라며...


 나는 동네 아줌마들에게 이 노래를 전했다. 괜찮아, 힘든 육아는 잊어, 설거지 빨래 청소는 지워. 수다를 떨면서 웃어! 자꾸 듣다 보니 부흥집회 생각이 난다. 믿는 다면, 하나 둘 셋! 믿는다면 하나 둘 셋! 믿습니까! 아멘 믿습니까! 아멘. 주여... 


 상위권에서 멀어진 우리 큰 아이. 수학이라는 늪에 빠져나오질 못한다.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수학이라는 과목을 공부했던 거 같은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 그런 문제를 풀고 있다. 그래도 상위권은 존재하는데... 그 아이들은 외계인인가? 우리 아이가 말한다. 


“엄마, 시험지를 받자마자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초스피드로 한 문제 한 문제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마치 

여러 번 풀었던 문제를 풀듯 풀어야만 상위권이 되는 거야.” 


몇 년째 열심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힘들다니 정말 너무 한다. 너무해. 


 수학학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이 너무 밀린다. 뒷자리 카시트에 매달려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든 둘째 아이를 보니, 안쓰럽다. 그놈의 수학, 평생 몇 번 쓸 일도 없는데, 몇 퍼센트 세일인지 그래! 그건 필요 하다치고. 요리 레시피를 보다 보면, 비례식 정도는 가끔 필요하던데, 그것 말고 내 인생에 수학이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그래도 어쨌든 수학을 해야 대학을 간다니 멈출 수는 없고. 뭐 우리 아이가 대단히 한 분야의 영재라면 대학 그까이꺼 아예 무시하고 전문가 찾아가든지 해보겠지만, 딱히 개성 없는 우리 아이에게 대학이 전부가 아니야 라고 말할 수가... 없다. 


 수업은 벌써 끝났을 텐데, 차는 밀리고 또 얼마나 짜증을 내며 차에 탈지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이때, 휴대폰에서 전해오는 작은 진동, 카드 사용 문자다. 슬쩍 보니, 날 기다리다 배가 고파 편의점에서 뭘 산 모양이다. 사발면 정도 산 거 같은데,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싶어 또 마음이 아파온다. 언제 도착하나... 나도 모르게 엑셀을 꾸욱 밟는다. 붕~ 하지만 바로 앞 차는 멈춰있다. 바로 브레이크! 붕~ 브레이크! 연비 모르겠다. 그저 내가 밟는 이 부질없는 엑셀이 나를 조금이라도 빨리 학원으로 데려다줄 수 있다면... 나는 딸만 생각하는 바보 엄마일 뿐이다. 

 

 학원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가 나온다. 나는 눈치를 살핀다. 저게 골이 얼마나 났나 싶어 불안한 마음인데, 

아이 얼굴이 생각보다 밝다. 


“늦어서 미안... 여기 왜 이렇게 밀리니... 너 사발면 먹었어?”

“응... 생각보다... 맛있었어...”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면 인생이 얼마나 편해지는...”


앗, 내가 미쳤나 보다. 갑자기 뜬금없는 잔소리. 나는 놀라 내 입을 막고, 다시 눈치를 보는데, 

아이가 웃으며 말한다. 


“엄마, 내가 사발면을 혼자 문 앞에서 서서 먹는데, 쫌 그런 거야. 쓰레기통도 바로 옆에 있구,

 모르는 사람도 있구, 그냥 좀... 가방도 어디 둘 데가 없구.... 배는 너무 고프구...  

 근데, 사발면 뚜껑에 뭐라고 써 있었는 줄 알아?"


“뚜껑에 뭐가 써 있어?”  


“응... 거기 이렇게 써 있어. [너만 맛있으면 돼] 이상하게 위로되더라... 그 문구, 계속 보면서 먹었어. 

괜찮았어... 먹을 만했어.”     


 아, 뚜껑이 우리 아이에게 말을 했다. 너만 맛있으면 된다고. 뚜껑이 우리 아이를 위로했다. 다른 생각 말고, 너만 행복하면 된다고. 지금은 중요한 건 너 자신이라고 수학 점수, 등급, 경쟁, 친구관계... 다른 생각 말고, 

지금에 이 라면에 집중하고 행복하라고 말해준 것이다. P라면 마케팅의 승리. 우리 아이, 학원 수업만 끝나면 그 라면과 대화한다.    


 월요일 아침 학교 가는 길, 아이가 주일학교 선생님이 보내셨다며 메시지 하나를 나에게 읽어준다. 

학원 스케줄 때문에 주일 오전 예배를 2주째 참석 못하고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고3 엄마와 고3 딸이 학교를 가는 월요일 아침, 그 고3은 상위권과 멀어졌고, 엄마는 갱년기다. 우리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서로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그런 우리에게 한 날의 괴로움이 그날로 족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할 수 없는 일, 하나님께 맡기자. 우리가 겪을 괴로움은 하루에 한 팩. 정량. 견딜 수 있는 만큼이다. 깊은 한숨 한번 내쉬고, 우리 오늘 잘 지내기로 아이와 다짐했다. 왠지 아이 얼굴이 편안하다. 수능, 아니 수능 이후에 겪을 괴로움까지 다 짊어지고 차에 탔던 아이가 조금은 편안한 얼굴로 차에서 내려 학교로 향한다. 


주일학교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나 둘 셋! BTS 땡큐! 뚜껑라면 씨도 고마워요~    끝.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ctkorea.net)

2018년 7/8월 호 [그 아줌마 공감일기]에 실린 글이며, 이 글의 저작권은 CTK에 있습니다.   

CTK 2018년 7/8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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