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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Sep 08. 2020

나는 일기장을 찢은 엄마

인문논술 전형으로 대학을 보내긴 했다.

쓰기 대가들에게 본인 아이들 글쓰기 교육을 어떻게 시켰냐고 질문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한 번도 내 아이 글쓰기 교육을 혹독하게 시켰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대가는 본 적이 없다. 


물론 대가들은 본인 글쓰기가 바빠 그럴 시간도 없으셨겠지만, 나는 대가도 아니고, 그냥 솔직히 말해서 내 아이 글쓰기 교육은 혹독하게 시킨 편이다. 


그 시작은 초등학교 일기였던 거 같다. 일기를 제법 재미있게 쓰길래, 더 욕심이 나서 좀 더 길게, 좀 더 구체적으로 고치고, 또 고치고... 나는 화가 많은 엄마라, 일기 공책의 한 장을 부욱! 뜯어버리기까지 했다. 아예 다시 쓰자! 뭐 그런 거였지만, 너무 독했다 싶긴 하다. 우리 아이도 그 교육은 별로 였다고 한다. 그래도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글쓰기 상은 정말 많이 받아왔다. 


지금 생각해도 미안해진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과학 독후감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다. 서울에서 일산으로 전학 오고 학교에 적응 못하고 힘들 때였는데,  그때 그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우리 아이가 얼마나 기뻐하던지. 둘이 부둥켜안고 울었던 게 기억난다. 학교에 글이 전시까지 되어서 나도 읽을 수 있었다. 


독후감의 첫 문장이 기억난다. 대략, ‘나에게는 미숙아로 태어난 동생이 있다’ 그런 문장.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낸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이었는데, 내 동생이 미숙아로 태어났지만 그런 과학자들의 도움으로 건강하게 살게 되었다! 는 글. 수십 편 독후감 대부분 첫 문장이 비슷할 텐데, 갑자기 미숙아 동생이 있다니, 그 문장이 선생님들 눈에 신선해보였던 모양이다. 


“우리는 읽고 쓰는데 특화된 아이들을 논술로 선발합니다.”


연세대 논술 전형 입시 설명회(2018)에서 들은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붙잡았다. 우리 아이는 사실 쓰는 것 보다 읽는 게 더 특화된 아이다.  


고3인지 고2인지 하여간 여름방학이었는데, 에어컨이 너무 빵빵한 독서실을 마다하고 단지 옆에 위치한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공부를 한다는데 장소가 문제냐! 어디서든 해라! 하는 심정으로 저녁을 먹고 도서관에 데려다주었다. 조금만 참고 열심히 하자, 온갖 말로 달래고 또 달랬다. 열심히 하겠다고 한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다고,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한다. 그래 그 마음을 먹어주니 고맙다! 


도서관 건물은 밖에서도 안이 보이는 유리로 된 건물이라 아이가 계단을 오르는 모습도 다 볼 수가 있다. 나는 아이가 3층 열람실로 올라가는 모습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바라보며 육교 위에 서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3층이 아닌 2층 종합자료실로 쏙 들어가는 것이다. 헉, 또? 하여간 중학교 때부터 열람실에서 1시간 공부하고 나면 2층으로 내려와 책을 읽으며 서너 시간 보내고 집에 오는 게 코스였다. 아직도 그 버릇을 못 고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저러고 있으니, 내 속에 천불이 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대충 끌고 나온 남편의 슬리퍼가 벗겨지려는 걸 발끝으로 꽉 잡고, 도서관 계단을 올라가 종합자료실 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는 딸을 찾았다. 째려봤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죽을래?” 해서는 안될 말이지만, 너무나 속이 터져서... 그러니까 그건 심신 미약 상태에서 터져 나온 말이었다. 


나는 우리아이가 수학 공부를 하기 싫어서 '읽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읽는 걸 못하게 했다. 그러다보니 더욱 그 '읽는'것에 아이는 더 집착하게 된 것이다. 


책 읽어라 책 읽어라 말하는 것보다 읽지 못하게 막는 것이 어쩌면 독서능력을 높이는데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로 대합에 합격한 이후, 그 좋아하는 책읽기 이제는 신나게 하라고 했더니, 재미가 없어졌다니 뭐라나... 


내 혹독한 글쓰기 교육과 읽지 못하게 한 독서교육이 휼륭한 방법이었다는 건 아니다. 아이는 그 상황을 별로 아름답게 기억하지 않으니까. 고치고 또 고치고 하면서 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이에게 벅차고 힘들었던 모양이다. 조금 천천히 했다면 좋았을 텐데. 나도 가끔 후회를 한다. 어쨌든 엄마는 최선을 다했어. 일기장 찢어버린 건...  미안해.  그래도 가르쳐주고 싶었던 엄마 마음을 이해해줘. 


아주 가끔은 글쓰기 교육이 잘 이루어지기도 했다. 아이가 처음 쓰는 글은 시작과 몸체와 결론이 없고, 상황 설명이 배재된 상태에서 자신의 감정을 단정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단정 짖고 나면 쓸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 본인이 무엇을 쓰고 싶은 지 정하고, 그 무엇과 연관된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같은 걸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성된 많은 단어들이 모여서 문장이 되고 문장이 또 모여서 글로 완성된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말고 그 완성된 땅을 한번 더 팔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그럼 마지막 한 단락이 더 만들어진다. 그렇게 삽질을 계속 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글쓰기 훈련이 아닐까. 


엄마로서 아이의 글쓰기를 돕고 싶다면, 무엇을 쓸 건지에 대해 먼저 충분히 대화를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너무 딱딱하지 않게, 충분히 부드럽게 유연하게 유머러스한 느낌으로 아이와 함께 낄낄 웃으며 과거에 겪은 일, 미래에 경험하고 싶은 일, 현재에서 느꼈던 수 많은 감정, 어디선가 읽거나 본 지식을 함께 나누며 써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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