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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Sep 03. 2020

문송하다니!?

수학 못해도 괜찮아!

대학을 보내고 나면, 그다음은? 

3년 내내 그런 생각을 안 했다. 애써 안 하려고 했다. 일단 대학 가기도 벅차니까 그냥 일단 대학부터 보내자. 그런 마음으로 3년을 보냈다. 막연하게 아이가 수학을 이렇게 힘들어한다면 당연히 인문계열에 진학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생각했다. 


주변에 다른 아이들을 보면, 직업적인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본다. 너무 부럽다.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고, 그나마 전공을 정하지 않고 인문계열에 입학해 1년 공부하며 자신의 전공을 찾는 계열 진학이 나름 우리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사실 논술시험을 볼 때, 전공별로 뽑는 다른 대학의 합격 정원은 과 별로 7명, 5명, 이런 잔인한 숫자들이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지원을 하는데, 고작 5명을 뽑다니... 정확한 경쟁률은 모르지만, 어쨌든 어마어마하게 살벌한 경쟁률일 것이다. 그나마 우리 아이를 뽑은 성균관대학교의 인문계열의 합격 정원은 그해 33명이었다. 그래도 33명. 뭔가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했는데, 결국 그중 한 명이 된 것이다. 합격하고 많이 행복했지만, 이제 그다음 단계를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문송하다고 했는지 좀 알 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취업을 위해 할 수 없는 것을 시킬 수는 없지 않겠나.


꼬맹이 둘째 아이를 데리고 직업체험을 하는 키자니아라는 곳에 다녀왔다. 스튜어디스, 조종사, 관세청, 크리에이터 등등 다양한 직업체험을 하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 꼬맹이의 꿈은 언제나 강아지를 키우는 것! 그런 꿈을 가진 아이들이 많은지 늘 붐비는 곳이 바로 동물 병원이다. 결국 기다리고 기다려서 동물 병원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밖에서 보니 고양이와 개가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에 대해 알려주고, 주인의 반지나 다른 작은 물건들을 삼킨 개의 배를 갈라 빼내는 수술 체험을 하는 것이다.


딸이 그린 삽화

술실에는 거대한 골든 레트리버 대형견 모형이 배에 수건을 덮고 혀를 쭉 뺀 채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다. 아이들은 씻지도 않은 손을 하늘로 높이 들고 비장한 얼굴로 수술실로 입장했다. 여섯 명의 아이들이 대형견을 둘러싸며 서고, 스텝의 지시대로 한 명씩 수술도구를 들고 소독도 하고, 링거줄을 체크했다. 우리 집 꼬맹이 순서가 다가오자, 약간 긴장을 한 듯, 어깨를 씰룩씰룩하기도 하고, 뒷걸음도 치고 한다. 동물 병원의 스텝은 이번엔 겸자를 꺼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는 수술 부위를 열어서 고정하는 거라고 설명을 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그 겸자를 

그 대형견의 배로 가져가 꽂고는  쫘악 열었다!


아이들은 서로 그 안을 보려고 달려들었지만, 우리 꼬맹이는 하늘로 높이 들었던 두 손을 자신의 얼굴로 가져가 눈을 가리고 서 있는 것이다!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던 주변의 엄마 아빠들이 웃으며  “어머 무서웠나 봐... ”

나도 빵 터졌다. 이제 동물 병원 의사 하겠다는 말은 안 하겠구나! 강아지는 좋아도 강아지의 배를 가르고 열 수는 없는 거다. 물론 의사가 될 만큼 공부를 잘할 리 없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취업을 위해 문과에서 이과로 바꾼 아이들도 봤고, 취업을 위해 아니면 등급을 위해 문과에서 이과로 바꾼 아이들도 봤다. 문과는 이과에 비해 인원이 적어 등급이 따기가 더 힘들다. 이과는 다수의 아이들이 공부를 하니까 등급 따기가 더 수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말하자면, 100명 중에 4%가 되는 것보다

200명 중에 4%가 되는 것이 쉽다고 생각하니까. 어쨌든 나 역시 그런 모든 고민을 하면서도 나는 문과로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수학이 너무 힘들다고, 마치 왼손으로 푸는 것 같다는 아이를 이과로 보낼 수는 없었으니까.


사실, 나 역시 뼈 속까지 문과인 거 같다. 우리 때는 전기와 후기로 나눠 대학을 진학했다. 나는 문과였지만, 졸업 후 취업 등을 생각해 전기에 통계학과를 지원했다. 통계학과가 왜 문과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불합격했고, 눈물 콧물 쏟다가 후기엔 에라, 모르겠다. 이미 망한 입시 그냥 좋아하는 거나

해보자 하며 국어 국문과에 지원해 합격했다. 


2학년 말 겨울, SBS에서 예능 작가를 뽑는다는 공채 공지를 보고 지원해 운 좋게 합격했다. 그리고 휴학을 하고는 계속 방송작가로 일하다가 그래도 졸업을 해야 할 거 같아 군대 다녀온 동기들과 함께 겨우 졸업을 했다. 전기에 통계학과 합격했으면 어쩔 뻔했을까! 

명절에 집에 모인 가족 인원수도 제대로 못 세는 나다.


어쨌든 국어 국문과를 나와서 선생님 말고 뭐 할 게 있니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쓰는 일로 한 20년 넘게 먹고살았으니, 이쪽 분야도 나름 괜찮은데, 사람들이 아직 잘 모르는 거 같다.

문과로도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동물 병원에서 눈을 가린 우리 꼬맹이도, 수학은 왼손으로 푸는 거 같다며 펑펑 울던 우리 큰 아이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이제부턴 엄마가 아니라 아이가 찾아내야 할 텐데. 세상이 많이 달라졌고, 나는 늙어간다.


아이에게 희망을 가져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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