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남편은 대사증후군고위험군
남편과 코스트코를 갈 때 반드시 확인하는 게 있다. 이 인간, 지금 충분히 배가 부른가?
언제부터인지 건강검진을 받으면 대사증후군 고위험군이라는 진단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놈의 날카로운 신경증이 고작 축적된 내장지방 때문이라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다. 더 난감한 건 처방받은 약을 먹는다고 치료되는 것도 아니고 살을 빼고 운동을 하고 식단까지 조절해야 한다니... 하여간 본인도 힘들겠지만 주변 사람까지 은근 피곤하게 하는 질병이 아닐 수 없다. 빵도 끊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최근에 꽤나 호전된 듯 보였는데, 이게 완치가 된 상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휴가 마지막 날, 은근히 힘든 일정으로 녹초가 된 우리 가족은 더 이상 밖으로 나돌지 말고 간단히 코스트코에나 다녀오자 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출발 시간이 문제였다. 점심을 먹고, 이런저런 가족의 추억담을 꺼내 호호 깔깔 대다가 그만 4시가 지나고 만 것이다! 남편이 대사증후군 고위험군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고
우리는 즐겁고 행복한 기분으로 코스트코에 도착했다.
핼러윈 시즌이라 각종 귀신인형들이 즐비하다. 할머니 쌍둥이 마녀는 독을 휘젓고 있다 마치 테마파크라도 되는 듯 즐거운 둘째 아이. 동생이 즐겁자 언니도 동심으로 돌아가 엄마 아빠가 어디서 뭘 사는지 관심도 없고, 할로운 캔디와 흥미로운 문구들을 둘러보며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도 모른 채 코스트코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그리고 들려온 남편의 차가운, 아니 허기진 목소리.
"어디야?"
순간... 아차! 그의 목소리에서 대사증후군 고위험군의 어두운 기운이 느껴졌다. 삐뽀삐뽀!!! 급히 아이들을 챙겨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벌써 구겨져있는 남편의 눈썹 각도를 보니 알겠다.
그는 지금 배가 고. 프. 다.
왜 그랬는지, 어쨌든 연애하는 7년 동안 나는 남편에게 짜증을 좀 많이 냈던 거 같다. 남편은 그 시절 취준생이었고, 나는 방송국에서 힘에 부치게 일하던 시기라 은근 남편의 보살핌이 있었다. SBS 등촌동 공개홀에서 일하다 제작센터가 탄현에 만들어지면서 나도 그쪽으로 출근을 하게 됐는데, 지금은 거기가 다 아파트, 주상복합이지만 그땐 거의 논밭이 있던 외진 곳이었다. 치열한 업무에 나의 퇴근은 늘 늦어졌고, 송파구에 사는 남편이 용산구에 사는 나를 데리러 탄현까지 오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것도 새벽 12시가 넘은 시간에.
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풀며 우는 일도 많았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참... KBS 복권 추첨하는 쇼 프로그램에서 작가를 구한다고 선배한테 소개를 받았는데, 가보니 완전 할아버지 작가님과 PD분이 갈등을 빚고 있고 나는 밤새도록 대본을 쓰고 또다시 쓰고... 암튼 이 할아버지 작가님은 내 대본을 컨펌하고, 이 프로그램을 떠나는 분위기인 거 같은데, 절대로 절대로 컨펌을 해주지 않는 것이다. 솔직히 가수가 순서대로 나와 노래하는 프로에서 진행자가 하는 멘트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긴데,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든다는 건지. 그 시절 나는 엠넷 리듬 천국이라는 프로그램을 오래 하면서 그런 나래비 쇼 멘트 쓰는 데는 완전 도가 튼 상황이었다. 암튼 그 작가님은 나를 앉혀두고 내 대본을 비판하며 이것 보라고 이 대본은 절대로 나만 써야 한다는 걸 어필하며 PD와의 갈등을 봉합한 듯하다. 결국 내 대본은 컨펌을 받지 못했고, 나는 새벽에 IBC 건물을 나와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이런 거지 같은 경우를 봤나... 펑펑 울었다. 그때 남편이 아침 일찍 찾아와 나를 안아주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돈 안 벌어도 돼, 내가 벌면 되니까"
취준생의 그 말을 믿고 결혼을 결심했으니, 나도 참 순수했다! 어쨌든 감동적이었다.
아직도 그 순간을 기억할 만큼.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짜증을 낼 때마다 남편이 늘 하던 말
"배고프구나... 얼른 밥부터 먹자."
다정했던 목소리. 그는 그런 남자였는데, 그놈의 대사증후군 고위험군이 뭐길래...
쇼핑한 물건을 트렁크에 싣고 차에 타자, 큰 애가 아빠에게 마들렌 두 개를 건넨다.
"아빠, 이거라도 먹고... 정신 차려..."
이걸 또 급히 먹던 남편은 사래가 들렸는지 컥컥... 난리가 났다.
콘솔에 있던 작은 생수에 뚜껑을 열어 건네니 마시고 또 컥컥.
"우진아, 니 신랑감이 오면 나는... '자네 허기를 얼마나 참을 수 있나?' 물어봐야겠어"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둘째 아이가 말을 보탠다.
"원래 씨암탉 그런 거 주는 거 아니야?"
"아니야. 엄마는 독특하게 허기를 테스트하겠어."
"자네. 허기를 얼마나 견딜 수 있겠나? 안타깝게도 우리 집은 현재 라마단 기간일세."
"네? 4대째 기독교 집안이라고 들었는데 라마단이라니요..."
그놈의 허기를 못 참아 저렇게 신경증이 폭발하는 꼴도 보기 싫고 마들렌 하나도 제대로 못 삼켜 켁켁대는 꼴도 짜증이 나지만그래도... 그 시절 다정했던 그 한 마디 때문에 내가 웃는다.
"지원이 배고프구나... 얼른 밥부터 먹자."
그렇게 나는 밥부터 먹자는 남자와 결혼해, 밥 먹일 궁리를 하며 산다.
그 시절 우리가 노래방에서 함께 부른 애창곡은 젝스키스의 '커플'이다. 기억에 남는 노래 가사는
'허전했던 나의 빈 곳을 이젠 채워줬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