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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Aug 09. 2018

노묘, 그 변화를 목도하며


혼자서 사색하고, 혼자서도 잘 먹고, 혼자라도 초라하지 않는 나의 고양이는 이제 13살 노묘가 되었다. 사람 나이로 치면 70세가 넘은 나이.


키라라의 점프의 높이가 낮아졌다는 것을 처음 눈치 챈 날에는, 가슴이 덜컹 하고 떨어졌다. 내 허리춤도 안 되는 낮은 테이블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점프를 망설이고 있는 키라라는 이내 결심 한 듯, 테이블로 뛰어 올랐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미끄러져 떨어지고 말았다. 상심한 채 돌아서는 키라라의 뒷모습. 이때가 키라라가 11살쯤인 듯하다.



이제는 키라라가 뛰어 오르고 싶을 법한 곳에는 점프 높이에 맞춰서 캣타워를 두거나, 의자를 가져다 놓는다. 점프를 성공하지 못했던 곳에 의자가 놓인 것을 발견하면, 키라라는 보란 듯 점프하는데, 나는 그럴 때 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우아, 키라라, 진짜 멋있다. 잘했다! 그러면 졸린 듯 눈을 내리깔며 만족스러운 얼굴.


그렇게 좋아하는 잠자리잡기 놀이도 낮아진 점프 탓에 재미를 잃어갔다. 이쪽으로 흔들, 저쪽으로 흔들 할 때마다 하늘을 날 뜻이 뛰어올라 잠자리 장난감을 낚아채던 키라라는 더 이상 점프하지 않는다. 너는 할 수 있어, 라는 책임감 없는 말 대신, 장난감의 높이를 낮춰주거나, 바닥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한다. 그러면서도 일부러 봐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히 해야 한다. 노묘라도 여전히 알아주는 사냥꾼, 너무 쉬운 사냥감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힘든 사냥에 성공하면 이 또한 아낌없는 칭찬으로 키라라를 추켜세워 준다. 그러면 키라라의  양볼은 만족감에 부풀고 눈이 동그래져서는 다음 사냥을 준비한다. 으이구, 요 귀여운 것. 할아버진데 이렇게 귀엽기 있기, 없기?



나이가 들어갈수록, 활동적인 고양이도 잠을 자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렇다고 고양이가 몸을 움직이거나 놀이 시간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집사의 적극적인 구애가 필요한 것은 맞다. 똥꼬발랄하던 시절에야 가만히 있어도 에너지가 흘러넘쳐 우다다를 일삼지만, 노묘의 잠든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은 집사의 몫이다.


일단 놀이로 관심을 끄는데 성공하면, 키라라가 몇 분간 크게 움직이도록 유도한다.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에 점프를 하는 놀이보다는 집 전체를 뛸 수 있도록 장난감을 바닥에 끌면서 놀아주거나, 이불놀이를 하며 스스로 신이 나서 뛰어다니게끔 한다.


미국에는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어서 고양이가 뛰어다니는데 마찰력이 있어 미끄러지지 않지만, 마룻바닥에서 놀이를 한다면, 발바닥 털을 깎아 주는 것이 좋다. 미끄러운 바닥은 고양이 관절에 무리를 준다.


고양이치고 잠이 참 없구나, 했던 키라라도 올해 부쩍 잠을 많이 잔다. 16시간 이상 잠을 잔다싶으면 부드럽게 브러시를 해주거나 쓰다듬으면서 키라라가 기분 좋게 깰 수 있도록 해본다. 계속 놀아주지는 못하더라도 창문으로 유도해 사색을 즐길 수 있도록 하거나, 곁에 앉아 있는 키라라에게 말을 걸곤 한다.



작년부터는 키라라를 쓰다듬을 때마다 딱딱하게 돌출되기 시작하는 등뼈가 만져지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 이게 설마 뼈겠어. 키라라의 시간을 믿고 싶지 않은 마음들은 직접 느껴지는 촉각조차도 외면하고 싶었지만, 등뼈는 점점 도드라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확실하게 키라라의 뼈가 굳어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정말 노인의 그것처럼, 우리 할머니의 등뼈처럼.


등뼈가 만져지는 키라라를 쓰다듬을 때면, 간혹 괜한 상상으로 울컥해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내, 울긴 왜 울어, 키라라는 여기 있는데. 아직 이렇게 잘 먹고 잘 놀고 건강하게 곁에 있는데.

살은 아직 빠지진 않았지만, 아래로 많이 처지기 시작했다. 아깽이 시절이나 혈기왕성한 시절에도 근육 없이 살이 말랑말랑한 체질이긴 했지만,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등뼈가 도드라지는 이유도 살이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기 몇 달 전, 화장실을 너무 자주 들랑날랑 하는 것을 보고, 뭔가 문제가 있다 직감하여 동물병원에 데려간 날, 의사선생님은 키라라는 앞으로 남은 세월동안 스페셜 사료를 먹어야 된다고 했다. 오늘은 방광염이지만, 수컷 고양이는 이렇게 방광염을 시작으로 비뇨기관의 문제가 더 큰 건강문제로 이어져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경우가 많다 했다.


이때부터는 그동안 섞어 먹이던 다이어트사료와 일반사료를 줄 수 없게 되었고, 물을 많이 먹고 소변을 잘 보도록 유도해 비뇨기관 쪽 기능이 건강하도록 해주는 스페셜 사료를 먹이고 있다.



부드럽고 풍성하며, 반질반질 윤이 나던 털은 어느새 푸석푸석해지고 여기저기 뭉치기 시작했다. 뭉친털은 피부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에 키라라의 외관이 어떻게 보이든, 뭉치는 털을 발견하면 되도록 잘라낸다. 중요한 것은 키라라가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키라라의 건강. 보여 지는 겉모습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키라라의 건강이슈 중, 최근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키라라의 이빨건강이다. 게으른 집사가 칫솔질을 자주 해주는 편이 아니라서 자승자박, 이빨 건강이 염려되고 있다. 치석이나 잇몸염증은 내장기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동물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볼 계획이다. 미국 의사선생님 한번 만나 보자, 키라라. 너는 아주 정색을 하겠지.




도드라진 등뼈도, 푸석푸석한 털도, 처진 뱃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여전히 도도한 나의 사랑, 나의 고양이.


사실은 훨씬 작지만, 털로 부풀린 폭신폭신한 몸을 내 베개에 뉘이며, 원래 내 자린데? 하는 눈으로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는 키라라. 곁으로 삐적삐적 다가가는 나의 시도로 흔들리는 침대의 진동에도, 키라라는 한 발을 시크하게 밖으로 빼고서는 꿈쩍하지 않는다. 그래, 누가 너를 노묘라냐. 나이 들수록 기품이 넘치는 너는 진정 고양이왕족 ‘키라라13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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