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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Jul 22. 2018

집사 13년차, 내 고양이와 산책하는 법

사실 미국에 오기 전까지는 고양이와는 목줄을 하고 산책을 할 수 없을 줄 알았다. 낯선 것에 경계가 심하고, 숨을 곳이 없는 야외는 늘 두려워했던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은 고양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선입견일 수 있다.


고양이가 목숨을 잃는 다면, 그것은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왕성한 동물이다. 낯선 것에 경계가 심하긴 하지만, 그 낯선 것을 알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해가 쨍한 야외도 익숙해지면 제 집 안방이듯 몸을 뉘인다.  생각해보면, 키라라가 한국에 살적에도 충분히 함께 산책을 할 수 있었다. 키라라를 좀 더 일찍 관찰하고, 기다려주고, 배려해 줬다면.  


대학교 시절 자취를 할 때, 어쩌다 열어뒀던 문 앞으로 키라라가 유유히 나가는 모습을 처음 목격했다. 당시에는 큰일 날 줄 알고, 키라라를 다그쳐 집으로 데리고 돌아왔던 기억.


또 어떤 날 아침에는 털에 흙이 잔뜩 묻어 있다. 깜짝 놀라 문을 확인해 보니, 지난밤에 문을 실수로 완전히 닫지 않았던 모양이다. 키라라는 밤새 빌라 앞 화단을 마음껏 탐험하고 2층이었던 집으로 다시 유유히 돌아왔던 것이다. 이때에도 그저 문단속을 철저히 했을 뿐.


서울에 살적에는 키라라를 위해 옥상을 드나들 수 있는 제일 꼭대기층 집을 선택하거나, 3층 야외 공간을 일부 개인 공간으로 쓸 수 있는 집을 선택했다. 그 야외 공간이 실용적인 것도, 운치가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키라라가 집 밖을 나가 하늘을 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때부터가 키라라의 산책 본능을 본격적으로 이해하고 응원했던 시점이다. 키라라는 옥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도 없고 조용한 시간대에 키라라를 안고서 옥상으로 함께 간다. 키라라를 옥상에 살며시 놓아주고, 멀찌감치 서서 낯선 공간을 탐색하도록 기다려 준다. 안심할 수 있도록 서 있는 것보다는 앉아서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 기다림과 인내심, 고양이는 이 시간을 통해 집사와의 신뢰를 쌓는다.


탐색을 모두 끝낸 키라라는 옥상에 쏟아지는 햇빛을 마음껏 즐기며 먼지바닥을 끊임없이 뒹굴기 시작한다.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이 충만해 지는 기분. 흙먼지는 사람 입장에서 더러운 것일 뿐, 고양이에게는 신나는 놀이 옷.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한 두 번은 다시 안아서 데리고 오지만, 다음부터는 이름을 불러서 집으로 유도한다. 키라라, 가자, 가자. 옥상문을 쪽으로 걸어가면서 부르면 키라라가 쫄래쫄래 따라 올 때도, 싫다고 그대로 옥상 바닥에 앉아 버릴 때도 있다. 그러면 키라라 쪽으로 다가가 가자, 가자. 한 번 더 재촉. 그러면 키라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어나서 옥상문으로 나가 먼저 집문 앞에 도착해 문을 열라, 기다린다.


이제 문을 살짝 열어두면, 키라라는 옥상타임을 알고 혼자 옥상에 놀다가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가끔 호기심 때문에 옥상이 아닌 밑쪽으로 내려갈 때가 있기 때문에 옥상으로 올라가는지 확실하게 확인한다. 불안한 마음에 옥상을 자주 체크하게 되지만, 키라라는 늘 그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가만히 누어 하늘을 보는 모습이 어찌나 두근거리고 낭만적인지.




미국에 와서는 옥상이 아닌 야외를 산책하기 시작한다. 서울은 아무래도 차가 많이 다니고 사람도 많이 다니기 때문에 야외 산책이 힘들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거주구역과 상점구역, 비즈니스구역이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오밀조밀 밀집되어 있지 않다.


캘리포니아에서 살았던 빌라 단지도 출·퇴근 시간 외에는 밖이 조용했다. 그래서 2층집에서 문을 슬쩍 열어두면, 키라라는 기다렸다는 듯 쪼르르 나가 산책을 시작한다. 이때 따라 나가면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이고, 키라라가 혼자 나가면 혼자 산책을 하는 것이다. 집 주변 넓은 잔디와 덤불, 작은 나무들은 키라라가 숨어 다니며 산책하기 딱 좋다.  


처음 10분, 20분이었던 혼자만의 산책시간은 어느 덧 30분, 40분, 1시간이 되었고, 2시간이나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던 날에는 심장이 덜컹하여 키라라를 찾아 헤맸다. 이름을 부른지 5분 만에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어서는 저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오던 키라라. 왜, 나 좀 바쁜데. 어느새 생각했던 산책 반경을 훌쩍 넘겨서 호기롭게 빌라단지 전체 구역을 산책하고 있다. 늠름한 모습에 더 커 보이는 키라라.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문을 열라, 문을 박박 긁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문을 얼른 열어 드린다. 키라라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야옹. 어떤 날에는, 문을 긁는 소리가 다급하다. 박박박박. 무슨 일 일이니, 낯선 사람이라도 만났니. 놀란 마음에 문을 열어주자, 도마뱀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있다. 으악! 마음에 소리와는 달리, 입 밖으로는 고마워, 키라라, 수고했어. 도마뱀을 살며시 바닥에 놓자, 얼른 밖으로 도마뱀을 살려 보냈다.


한국에서의 옥상타임에서 잠자리를 잡아왔던 날, 내가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자 키라라도 놀란 마음에 그 잠자리를 꿀꺽 삼켰다가 토해냈던 적이 있었다. 또, 고양이가 이렇게 사냥을 해서 집으로 가져오면 선물의 의미가 크기 때문에 상심하지 않도록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이 좋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놓여 있었던 벌레의 사체들, 고, 고마워.  


워싱턴DC로 와서는 줄을 메고 ‘진짜 산책’을 함께 하기 시작한다. 계기가 있다.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모든 애완동물은 목줄을 하고 산책을 해야 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자유롭게 산책 생활을 즐겼던 키라라는 워싱턴에 와서도 산책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던지 문을 자꾸만 긁는다. 아, 목줄을 하고 산책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목줄을 채우는 것 자체부터가 도전이다. 목줄을 채우면, 경계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문을 긁다가도 기분이 상해 돌아서 버린다. 이러한 과정이 몇 번 반복된 후, 목줄을 해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확인한 키라라는 목줄을 하고서 문 밖을 나간다.


이때, 주의할 점은 목줄을 당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줄이 컨트롤하려는 의미가 아닌, 산책이라는 의미로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목줄하고 키라라가 원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따라 다닌다. 다만, 가면 안 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할 때면 목줄 살짝 잡아 당겼다. 그쪽은  안돼, 미안해. 이쪽으로 가자. 목줄을 잡아당기면 처음에는 매우 불쾌해 하지만, 몇 번 익숙해지면 이내 산책 경로를 바꿔준다.


키라라가 안내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내가 키라라에게 이끌려 산책하고 있구나, 기분 좋은 굴욕감, 역시 내 고양이. 집사생활 13년차, 이제는 목줄을 하고서도 나의 고양이와 함께 산책할 수 있다. 아니, 키라라가 나를 데리고 다녀 준다.


한 번에 되는 일은 결코 없다. 옥상타임에서 쌓았던 기다림과 인내는, 목줄을 하고서 밖을 나가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한 차원 높은 신뢰감으로.


마냥 겁이 많은 고양이라고 생각했던 선입견은 지켜보고, 이해할수록 사실은 겁쟁이가 아니라 용감한 히어로였구나, 깊은 깨달음으로.


겁쟁이 고양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영원한 겁쟁이 고양이로 남는다. 용감한 히어로, 옥상달빛 낭만고양이는 잠자리와 도마뱀을 사냥하고, 집사와 함께 산책을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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