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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Jul 05. 2018

한국에서 미국으로, 고양이는 비행기를 탔다

키라라, 13세, 페르시안친칠라. 


대학교 시절, 룸메이트의 고양이가 낳은 하얗고 조그마한, 겁이 많은 고양이는, 일본만화 이누야샤에 빠진 집사의 작명센스에 함몰되어 자신의 영롱한 묘생을 ‘키라라’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키라라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 바람을 쐬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양이 무식쟁이 대학생이었던 나는, 편의점을 갈 때 마다 키라라를 품 안에 껴안고 갔더랬다. 어느 날에는 한 외국인이 내 품안의 복슬복슬하고 아름다운 고양이의 이름을 묻는다. 


그 외국인은 내 얼굴 한 번, 키라라 한 번, 또 내 얼굴 한 번, 그리고 키라라를 한 번, 흔들리는 동공과 어색한 미소로, 그동안 여러 번 제기됐었던 키라라에 대한 나의 작명센스에 최후의 심판을 내리고는 유유히 떠나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키라라는 점점 그 존재 자체가 특별한 고유명사가 되어 이름보다 훨씬 의미 있고, 또 이름처럼 용감무쌍한 묘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감탄했던 일은 키라라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탔다는 것이다. 


동물이 사람에게서 떨어져 따로 옮겨진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지의 비행기 동물 칸에 키라라를 실어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장시간 여행은 결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고양이와 함께 기내 탑승이 허용되는 항공사를 물색했다.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그나마 단 한 곳의 항공사, 에어캐나다만이 키라라와의 기내 탑승이 허용됐다. 에어캐나다 외에도 동물 기내탑승이 허용되는 항공사가가 있지만, 고양이 중에서도 몸집이 큰 편에 속한 키라라는 몸무게 제한에 걸렸다. 


에어캐나다는 규격의 동물 케이지와 동물의 무게가 합해서 10kg 이하고, 동물이 케이지 안에서 서서 한 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움직일 수 있으면, 기내에 사람과 동반 탑승이 가능하다. 케이지 안에 동물이 들어가고 무게 규정에도 맞더라도, 항공사 직원이 동물이 장시간 비행 동안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판단하면, 동반 탑승이 불가능하다. 복슬복슬한 털 때문에 실제보다 2~3배는 커 보이는 키라라의 용모가 처음으로 아쉬웠던 순간이었지만, 키라라는 케이지 안에서 보란 듯이 서서는 뱅그르르 돌더니, 동그란 눈으로 밖을 쳐다봐 주었다. 항공사 직원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문제는 당시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에어캐나다 직항이 없어서 캐나다에서 경유까지 해야 했던 것이다. 또 키라라의 케이지마저 기내 의자 밑에 넣어 두어야 했다. 키라라는 그렇게 한국에서 캐나다까지 약 11시간 동안 꼼짝없이 좁은 케이지 안에서 두려움에 떨고, 답답함에 숨이 막혔으리라. 종종 케이지 가까이에 키라라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괜찮다, 괜찮다, 안심시켜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이름을 불러도 잠잠하고, 비행 내내 조용하던 키라라가 캐나다 공항에 거의 다 도착할 때쯤, 야옹- 큰 소리로 울었을 때는 심장이 덜컹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캐나다 공항에서는 3시간 정도 머물러야 했다. 케이지 문을 열어 키라라를 확인해보니, 답답하고 더웠던지 단단히 화가난 눈에 입주변은 침으로 젖어 있다. 처음보는 모습에 내 심장은 또 걱정으로 두근두근. 당시에도 11살 노묘였던 키라라가 견뎌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탈수가 염려되어 물을 떠서 키라라 앞에 놓았지만, 고개를 돌려버린다. 키라라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도 무용지물이다. 고양이는 아무리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도, 자신이 안전하다고 확신이 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거의 18시간 정도 키라라는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그래도 물은 마셔야 해. 나는 키라라의 입을 벌려 억지로 물 몇 모금을 흘려보내고, 입 주변을 물로 가득 적셨다. 한국에서부터 준비해온 1회용 고양이 화장실을 펴보았지만, 키라라는 케이지에서 나와 안전한 공간을 물색할 뿐이다. 키라라와 내가 그동안 서너 시간의 이동에서 겪었던, 케이지에서 나오면 그 곳은 키라라가 머물 곳이라는, 일종의 경험과 암묵적 약속 같은 것이었다. 미안해, 이 곳은 아직 아니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키라라를 케이지에 넣는다. 다음 비행이 있을 때까지 케이지 문을 열어두고 키라라에게 말을 걸어 주었다. 가만히 앉아 굳건히 버텨주는 모습에 눈물이 핑 돈다.


그렇게 도착한 미국, 키라라를 케이지에서 꺼내 안고서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라는 요청에 그렇게 했다. 키라라의 모습이 케이지 밖으로 보이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키라라를 보고 탄성을 내지른다.  네, 네, 그럼요.



이 모든 고난과 역경을 뚫고서 키라라는 캘리포니아 주 LA근교의 작은 도시, 작은 빌라에 도착했다. 새롭게 시작할 곳에 도착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의 모든 신경은 키라라의 물과 음식, 화장실이다. 도착하자마자, 키라라의 화장실을 만들고 물과 음식을 준비해 키라라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많이 급했던지 모래를 쏟자마자 키라라가 화장실을 찾는다. 키라라는 어느 때처럼 늠름하게 새로운 공간을 탐색하고, 물과 음식을 그 제서야 섭취한 뒤 다시 한 번 꼼꼼하게 탐색을 거듭한다.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지친 몸을 바닥에 뉘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야-옹- 우렁찬 원망의 목소리. 고마워, 키라라. 애썼어. 너는 정말 특별한 고양이야. 우리 함께 새로운 시작을 열자.


이 모든 여행이 가능했던 이유는 신뢰. 모든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로부터 시작한다. 키라라는 낯선 여행과 낯선 장소가 세상에서 가장 싫을 테지만, 내가 곁에 있다면 안심하고 기다려 줄 것이라는 믿음. 내가 키라라를 가족처럼 사랑한다는 것을 키라라도 알고 있다는 믿음.


오, 키라라가 그건 싫대.

키라라 표정이 정말 시무룩하다.

먹긴 먹는데, 그냥 있어서 먹는 거래.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곁에서 듣고 있는 사람들은 간혹 말한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정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곁에 머물렀던 오랜 시간, 나는 키라라를 관찰했고, 키라라도 나를 관찰했다. 작은 몸짓, 눈빛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해한다.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손으로 톡톡, 내 옆 자리를 두드리면 키라라는 휴, 그래 가주지, 하는 눈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앉는다. 키라라가 발로 톡톡, 이불을 두드리면 나는 슬그머니 이불을 들어 키라라에게 이불 안 자리를 내어준다. 키라라를 얼큰하게 안아주려는 심산으로 엉덩이만 떼어도 귀신같이 눈치를 채고 몸을 숨긴다. 요, 여우같은 것, 사랑을 주체 못하는 나의 부담스러운 눈 빛을 봐 버린 거니.  


고양이와 나, 우리는 100가지, 1000가지 언어로 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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