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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Sep 04. 2018

고양이, 미국 동물병원을 가다

1주일에 한 번, 키라라의 귀를 청소 해준다. 그때마다 귀가 조심씩 더러웠지만, 심각하지 않아서 귀 클리너를 열심히 사용했더랬다. 그런데 귀가 더러워지는 게 심상치 않다. 귀 청소 빈도는 같은데 볼 때마다 귀에 갈색 때가 점점 많이 끼어간다.


어라, 이건 좀 문제가 있는데. 약국에서 고양이용 귀 클리너와 귀에 넣는 물약을 구매했다. 설명서대로 부지런히 귀를 닦아주고 약을 넣어주고. 차도가 없다. 다른 브랜드 클리너와 약을 구매해 보았다. 그래도 조금 깨끗해지는 정도다. 비싸고 좋은 브랜드의 클리너와 약을 사서 써 보아도 별 차도가 없다.


이렇게 되면 병원행인가.


사람이 병원 가서 의사 면담만 해도 9만 원 정도가 나오는데, 동물은 어떨까 싶어서 심장이 조마조마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이 듣질 않으니 다른 선택지는 없다.


미국 동물병원은 대부분 시간 예약을 해야 진료가 가능하다. 무작정 아이를 데리고 갔다가는 몇 시간을 기다리거나 아예 진료가 안 될 수가 있다. 키라라도 예약한 날부터 1주일이나 뒤에 진료 날짜가 잡혔다. 진료예약과 의사 면담만으로 이미 7만 원 정도라는 금액이 나왔다.


캐리어만 봐도 숨어버리는 키라라.


키라라는 내가 캐리어 근처에만 가도 정색을 하고 몸을 숨기기 때문에, 아닌 척 하다가 재빨리 키라라를 안아서 캐리어에 넣었다. 한바탕 몸부림을 치며 난리가 나겠지, 싶었는데 키라라가 힘없이 쏙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내심 시무룩해졌다. 나와 힘겨루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노묘.


병원까지는 우버 택시를 이용하기로 한다. 일단 캐리어에 들어가고 밖으로 나오면, 야옹-한 번 안하는 키라라인데, 이날따라 우버 택시 안에서 야옹- 야옹- 항의를 하는 키라라. 몇 년 전 한국에서 미국으로의 여행이 큰 트라우마가 된 듯싶어서 마음이 쓰인다.  



집에서 동물병원까지의 거리가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내가 간 동물병원은 공간이 꽤 넓은 동물용품 숍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다. 동물용품이 늘어선 통로를 쭉 따라가면 병원 카운터가 나온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오늘 진료 예약을 했어요.”


“아이 이름이 키...아라? 뭐라고 발음해야 하나요?”


“키라라, 이렇게 부르시면 돼요.”


진료 예약을 할 때 등록한 동물이름, 키라라(kilala)를 보고 직원이 헷갈려 한다. 내 한국이름처럼 키라라 이름도 헷갈려 하는 구나,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난다.


이름을 확인한 직원은 키라라의 몸무게를 묻는다. 글쎄, 한국에서 올때는 8kg 정도였는데. 이미 3년 전 몸무게라서 다시 재보기로 한다. 14파운드네요. 아직까지도 파운드 단위에 익숙하지 못한 머릿속은 부지런히 계산을 해보지만, 기준점도 기억이 안 난다.



휴대폰으로 확인을 해보니 6kg이 조금 넘는다. 동물에게 2kg은 엄청나게 큰 변화다. 한국에서 진료를 받았을 때, 키라라가 과체중이니 장수를 하려면 살을 빼야한다고 했던 의사의 말이 떠올랐지만, 살이 빠졌다니 괜히 또 걱정이다.


풍성한 털 때문에 키라라의 체중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나이가 들고 뱃살이 늘어져 있어서, 아직도 과체중이겠거니 싶었는데. 역시 조금은 충격이다. 그 후로 집에 와서는, 며칠 간 괜히 간식을 자주 주었다.




예약을 하고 왔는데도 30분이나 더 기다렸다. 낯선 곳의 긴장감 때문에 캐리어 안에서 간헐적으로 바들바들 떠는 키라라, 마음이 조급해져서 이럴 거면 예약을 왜 했나, 화가 났다. 진료를 받으러 온 개들이 키라라를 향해 짖어대고, 꼬마 아이는, 고양이에요? 관심을 보인다. 키라라가 예쁜 건 아는데, 그래도 저리 좀 가 줄래? 목구멍까지 말이 차오른다.


드디어 간호사가 키라라의 이름을 부르고 진료실로 안내한다.


“귓속 문제로 오셨다고 진료 예약 정보에 나와 있네요. 맞나요?”


“네, 제 생각에는 그래요. 시중에 나와 있는 몇 가지 약을 써 보았는데 나아지지가 않아서요.”


“그렇군요. 먼저 귀 속을 면봉으로 파내어 검사를 할 건데요, 50$(약 6만원) 이상이 될 겁니다. 괜찮으신가요?”


간호사는 의사 면담비용과 귀 속 검사를 하는데 드는 비용을 보여주며, 이래도 계속 검사를 진행할 건지 물어본다. 의사 얼굴은 아직도 보기 전이다. 아직 약값이 포함되지 않은 가격은 100$를 넘겼다. 진료가 진행 다음 계산을 할 때 지불하지 못하겠다는 손님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병원 나름의 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이리라.


병원에서 처방 받은 귀 클리너와 약.


계속 진료를 진행한다고 하자, 간호사는 키라라의 항문 검사를 시작했다. 또 키라라에게 칩이 있는지 물어본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기 전, 몸 안에 칩을 삽입해야 미국으로 동물을 들여 올 수 있다는 관련 규정 때문에, 키라라에게 칩을 삽입했던 터였다. 그런데 키라라 칩이 기계에 잡히지 않는다.


잠시 후, 간호사와 함께 들어온 의사, 환하게 웃으며 미국인 특유의 안부 묻기. 그녀가 그렇던 그렇지 않던, 이미 마음속으로는 자본주의 미소 같으니라고. 새침한 냉소가 떠오른다.


의사는 다른 기계로 키라라의 칩을 삐익- 체크했다. 유니버셜용 기계라고 했다. 미국에만 쓰는 칩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삽입된 칩도 체크 가능한 기계라고.


“한국에서 칩을 삽입해서요.”


“그렇군요. 아이와 얼마나 함께 하신 거죠?”


“아, 거의 태어나서부터요.”


“와우, 12년 6개월!”


키라라의 나이를 체크한 의사는 놀라움이 섞인 미소를 건넨다. 타인의 입으로 들은 키라라와 나의 세월에 스스로도 새삼 놀란다.


의사는 간호사와 이미 대화한 내용을 다시 한 번 물어보며 키라라의 진료를 시작한다. 입을 벌려 이빨 상태를 살펴본다. 내심 키라라 이빨 건강이 염려되던 차, 의사가 아무런 말없이 넘어가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행이다.


“심장소리가 좋아요. 매우 강한 심장을 가졌네요. 키라라는 나이보다 정말 어려보이네요.”


“정말요!?”


나는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팔짝팔짝 뛰었다. 그런 나를 본 의사도 환한 미소를 지어준다.


“그는 정말 멋진 엉덩이를 가졌네요.”


멋진 궁뎅이를 가진 키라라.


미국에서의 엉덩이 칭찬이라, 엉덩이가 예쁜 남자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렸다! 키라라 칭찬에 내가 신나하자 던진 농담이겠지만, 또 다시 팔불출 같이 펄쩍 뛰며 좋아하고 말았다.


의사는 키라라의 배 부분을 손으로 검사하며 뱃살이 조금 있다 했다. 이제 살도 빠지고 체중은 평균인데, 처지는 뱃살은 어찌해야 할까.




키라라가 병원을 찾은 이유를 확인할 차례, 의사는 면봉으로 키라라 양쪽 귓속을 파낸 다음, 검사를 한 뒤 다시 왔다. 귀 속 벌레가 원인이겠지.


“키라라 귓 속에 이스트가 있네요.”


“네?!”


“이스트라고, 바이러스보다는 크고 벌레보다는 작은, 균류 중 하나예요. 그래서 시중에서 팔던 약으로 치료가 안 되었던 모양이에요.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빵굽기를 시전중이신 키라라옹.


그 순간에는 너무 당황에서 ‘이스트’가 뭔지 생각나지 않았지만,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스트, 빵 만드는 그 이스트! 키라라는 ‘빵굽기’를 하려고 귓속에 이스트를 키우는 거야? 푸핫! 웃음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어쩐지! 빵굽기를 너무 예쁘게 잘 하더라만.


약 값을 포함한 최종 진료비용은 185$를 넘겼다. 한국 돈으로는 20만원이 넘는다. 사람이건 동물이면 아프면 큰일 나는 미국이다 싶지만, 한국에서도 동물의 진료와 약 비용은 보험처리가 안되기 때문에 큰 차이는 못 느꼈다.


그래도 노년기를 맞은 키라라의 전체적인 건강진단을 해보고 싶던 중에 잘 됐다 싶다. 동안에다가 멋진 궁뎅이를 가진 키라라의 재발견이다. 비록 빵굽기에 대한 열정으로 귓속에 이스트를 키우고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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