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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Sep 06. 2018

미국서 찾은 ‘클린 푸드’

깨끗한 생채소의 매력에 빠지다


미의 기준의 ‘기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었던, 아니, 필요한 줄도 몰랐던 과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미의 기준에 자유로울 수 없는 현재, 미래를 위한 나름의 타협점을 찾았다. 


사회적인 ‘미의 기준’과 내가 추구하는 ‘심신이 건강한 삶’의 교차점, 채소와 과일 섭취를 늘리고, 운동을 통한 체중감량이다. 많은 고민 끝에, 지금의 다이어트는 과거의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다.


미국에서 찾은 클린푸드.


과거의 다이어트는 남에게 비춰지는 나의 모습에 집착했다. 그야말로 마르기 위한 다이어트, 다이어트를 위한 다이어트. 맹렬하게 원하는 목표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실한 행동력은 자책감을 몰고 왔다. 심할 때는 자기혐오도 느꼈다.


“윗옷을 좀 올려봐. 그게 더 예뻐.”


“안 돼. 엉덩이가 너무 커.”


늘 엉덩이를 감싸는 축 늘어진 옷을 입는 나에게 친구가 조언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남들이 내 ‘뚱뚱한 엉덩이’만 볼 것 같은 기분.


미국에서 살면서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식습관 문제는 차치하고, 일단 미국은 체중에 관대하다. 자기 개성을 표현하는데 자유로우며, 그 표현의 자유에 체중은 대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살집이 좀 있더라도 몸에 밀착된 옷을 입는데 과감하다. 한국에서는  참 대단한 용기다, 수근 대는 소리를 들었을 법한 패션들. 


물론 미국도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한국과 비슷한 ‘미의 기준’이 존재하며, 그 기준에 가까울수록 아름답다, 이야기한다. 


다만, 그 미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또는 그 기준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할 권리를 쉽사리 내주지 않는다.  일반적인 경우, 체중에 대해 조언하거나, 또는 핀잔을 주는 것은 대단히 큰 실례로 취급된다.


자기 몸에 자신감이 있고 남들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들을 보다보니, 평생 머릿속에 박혀 있었던 미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이랬다. 저 사람은 나보다 체중이 훨씬 많이 나가는데도 외모적으로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참 아름답다.




일단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니, 나의 ‘진짜 몸’이 보이기 시작했다. 


복부비만의 근육형 체형. 한국에서 바디체크를 했을 때 ‘과학적으로’ 진단 된 나의 체형이다. 당시 과체중은 아니었으나, 미국 생활 초창기에 식생활의 변화로 체중이 급격히 늘었었다. 과체중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 입던 옷을 입을 수 있었지만, 그때처럼 편하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당시에도 복부비만이었으니, 더 이상 체중이 증가하는 것은 건강상 좋을 게 없다. 


실제로, 체중이 증가하자 컨디션이 나빠졌다. 아침에 일어나도 상쾌하지 않고, 몸이 부어 있다. 고질적인 어깨통증도 심해졌다. 허리에 심각한 통증을 느낀 날에는 처음으로 건강이상의 공포를 느꼈다. 직업상 하루 종일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니, 체중이 늘지 않으면 이상했고, 건강이 나빠지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다이어트를 위한 다이어트가 아닌, 위기의식으로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조깅을 시작했다. 건강, 동기가 확실한 운동은 착실한 행동력을 불러왔다. 착실한 행동력은 성취감과 습관이 됐다. 습관이 익은 몸은 운동한 날의 컨디션에서 조금만 처지면 ‘운동을 해라’고 아우성친다. 운동한 몸의 상쾌한 컨디션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과정이다.


20대, 운동만 해도 체중의 변화가 확실했지만, 30대가 되자 운동으로는 체중변화가 거의 없다. 관건은 먹는 것, 식단 조절을 시작했다. 단순히 탄수화물과 지방 섭취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체중의 변화는 미미하다.




결국 먹는 것을 크게 양보하기로 한다. 이렇게 말하면 꽤나 과격하게 식단조절을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알아주는 먹보, 저녁식단만 클린푸드로 대체하기로 했다. 주말 하루는 치팅데이로 원하는 음식을 섭취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눌러온 식욕이 괴물이 되어 반드시 나를 덮쳐오기 때문.


주중 아침은 늘 먹던 통밀 토스트와 아메리카노(또는 홈메이드요거트와 과일)를 유지하고, 점심은 잡곡밥과 채소위주의 반찬 섭취로 조금의 변화를 주었다. 자체퇴근 후 저녁, 보상심리가 몰고 오는 칼로리에 대한 열망을 잠재우는 것은 가장 힘든 일이었고, 지금도 힘들다. 


다양한 맛의 후무스들.


그래도 노력은 계속된다. 저녁식단으로 많이 먹어도 칼로리가 낮고, 식이섬유가 풍부해 포만감을 쉽게 주는 채소와 과일을 선택했다. 문제는 내가 채소와 과일을 즐겨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후무스(hummus)를 만난다. 미국의 대부분의 마트에서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도 좋다.


병아리콩을 삶아 만든 후무스는 중동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소스나 부재료로 흔하게 쓰이는 후무스, 디핑소스로 손색이 없다. 향이 고소하고 맛이 담백해서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후무스는 클래식후무스, 로스티드 레드페퍼, 칠리소스 등 다양한 맛이 있어서 그날의 기분에 따라 선택한다.


후무스를 만들어 보았다.


병아리콩을 갈아서 레몬즙, 올리브오일, 참깨가루 등의 재료와 섞어주면 쉽게 만들 수 있지만, 들이는 품에 비해 맛은 사먹는 것 만 못해 사 먹기로 한다. 의욕도 좋지만, 그 의욕으로 제풀에 쓰러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활활 타오르는 열정에 몇 번이나 몸을 불사르며 체득했다.


후무스가 다이어트에 완벽한 식단은 아닐지라도, 장기적인 목표를 위한 즐거운 타협이다. 후무스를 식단에 조금 추가하면, 평소라면 결코 먹을 일이 없는 생 채소들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무스만 있으면, 생 채소들이 맛있어 진다.



후무스와 함께한 샐러리와 당근.


샐러리는 미국에서 제대로 처음 먹어봤다. 독특한 향 때문에 시도하기가 무서웠던 샐러리, 먹을수록 향채의 매력에 빠져간다. 아삭한 식감은 취향저격이다.


한입 크기로 나온 베이비캐롯도 후무스와 궁합이 좋다. 익은 당근도 골라먹었지만, 이제는 당근 자체의 향을 즐길 수 있게 됐다. 혹자는 베이비캐롯이 미국식단에 혁명을 불러 왔다고 한다. 인기 없던 당근을 먹기 쉽게, 요리하기 쉽게 공급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슈가스냅피(sugar snap peas)에 홀딱 빠졌다. 그린빈처럼 생긴 슈가스냅피는 아무런 조리 과정 없이 생으로 먹는 채소다. 콩깍지 안에 콩들이 알알이 박혀 있는 슈가스냅피, 정말 그냥 먹을 수 있나 싶지만, 한 입 먹으면 이거다 싶다.


요즘 홀딱빠진 슈가스냅피.


아삭한 식감은 샐러리보다 부드럽다. 콩의 향긋함에 오이의 시원함이 어우러진 맛, 맛의 영역이 넓어진 기분. 이름답게, 달콤한 매력은 덤이다. 아무런 소스 없이 슈가스냅피만 먹어도 한 사발은 뚝딱이지만, 여기에 후무스를 조금 더하면 맛이 더욱 다채로워 진다. 


알록달록 미니벨페퍼도 후무스와 잘 어울린다. 피망과 오이의 중간 정도의 맛인데, 매운 맛이 없고 달다. 한입 크기로 나와서 후무스에 찍어먹기에 좋고, 무엇보다 색감이 예뻐 ‘먹고 싶게’ 만드는 채소다.



찐득하고 달콤한 데이츠.


데이츠(dates)라고 불리는 대추야자는, 대추야자를 말린 다음 설탕에 절인 음식이다. 캐러멜처럼 찐득한 달콤함, 취향을 안탈 것 같은 맛이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달아서 서 너 개 먹으면 물리지만, 식이섬유가 많아 금방 배가 부르다. 식간에 허기 질 때, 몇 개씩 간식으로 먹으면 딱 좋을 음식이다.


허기가 꿈틀되어 고칼로리 음식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영혼을 채울 수 없을 것 같은 순간, 잘 먹고 행복하기 위해 돈번다는 자기합리화가 시작되는, 정말, 그 순간, 마음을 잡고 계획된 식단을 섭취해 본다. 그러면 격렬하게 나를 점령했던 허기와 식욕은 어느새 저만치 물러가 있다.  


주 4일 운동을 하면서 클린푸드로 식단 관리에 노력하는 나, 현재 키 165cm에 체중 62kg이다. 그리고 최종목표는 58kg. 


노력하는 만큼 조금씩 살이 빠지고, 매일 더 건강해 지는 기분이 좋다. 30분도 힘들었던 자전거 타기를 이제는 2시간 동안 즐겁게 해낸다. 조깅을 하는 농구 코트에서의 바퀴 수가 늘어갈수록 뿌듯하다.


날씬하게 보이고 싶어 샀던 어두운 옷은 이제 잘 사지 않는다. 몸에 좀 밀착되어 뱃살이 보이더라도, 그 옷을 입어 행복하면 그 옷을 입는다. 


건강하고 깨끗한 클린푸드를 섭취하고, 운동을 습관으로 유지하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이 매일, 조금씩 수월해 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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