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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Oct 11. 2018

워싱턴D.C, 잔디밭과 푸드트럭의 계절

여름이 지나간 자리, 이곳 워싱턴D.C의 뜨거운 태양은 아직도 머리 바로 위에 떠있다. 그러나 10월의 가을바람은 단호한 자연의 섭리를 타고 부드럽게 불어온다. 


가을바람이 땀 한줄기를 시켜준다면, 주저 없이 길을 나선다. 푸드트럭이 늘어선 국회의사당  앞 국립공원 잔디밭으로.


백악관이 있는 D.C 중심가에는 관광스폿이 몰려있어 늘 여행자들로 넘쳐난다. 방학과 휴가철이 끼어 있는 여름에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을 이곳으로 불러오는데, 호기심 넘치는 구름떼 같은 사람들 사이에 합류하여 익숙한 곳을 생경하게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쨍한 태양과 시원한  가을바람.


더위에 흘리는 땀마저 열정적인 기분에 사로잡혀 활력이 되는 여름의 열기도 사랑하지만, 이곳에 살면서부터는 태양이 멀어지고 바람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는, 가을의 친절한 온도를 기다리게 된다.


여름의 기운이 아직 남은 초록의 잔디밭과 아침·저녁의 서늘한 가을바람에 물든 색색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여름과 가을 사이. 허기진 뱃속에 정신을 혼미하게도 만들었던 음식 냄새 폭격에도, 한 여름 더위에 엄두가 나지 않아 스쳐만 갔던 푸드트럭의 계절이 돌아왔다.




잔디밭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요즘 푸드트럭이 있는 국회의사당 잔디밭 주변은 여름보다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덜해서 조금은 더 여유롭고 편안하다. 큰 나무 아래에 잔디밭을 돗자리 삼아 비스듬히 누어,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젊은 연인들이 예쁘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책 한권에 몰두하고 있었던 여자는, 이내 가을바람을 덮고서 눈을 스륵 감는다. 행여 놓칠세라 풍선이 떠있는 줄을 꼬옥 잡고 걸어가는 아이와 유모차에서 잠을 자는 아기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는 부모. 주말의 소중한 시간을 건강을 위해 쓰기로 했을 남자는 사람들 사이를 경쾌하게 지나치며 조깅을 한다. 


그리고 쭉 늘어선 푸드트럭들. 강렬한 색채들의 트럭만 보고도 그 음식이 뭐가 됐든, 먹고 싶게 만드는 마력, 푸드트럭 아트가 있다면 이런 것일까. 개성 넘치는 트럭들을 구경하는데 만도 시간이 꽤 흘러간다.


늘어선 푸드트럭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음식들 앞에, 평소 음식만큼은 망설임 없었던 선택력에 타격이 오고 만다. 자,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 



푸드트럭 앞 줄을 선 사람들.

햄버거, 핫도그, 샌드위치 등 흔한 미국 음식은 패스다. 의외로 아프리카 음식이 많이 보인다. 영화 ‘아메리칸셰프’에서 처음 본, 저건 언젠가 꼭 먹어봐야겠다, 했던 쿠바샌드위치에 가장 먼저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올바른 결심, 찜해둔 쿠바레스토랑에서 제대로 먹기로 한다.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음식도 많이 보인다. 저 멀리, ‘KimChi’라고 적힌 한국 푸드트럭이 반갑다. 자주 먹었던 타코 트럭과 냄새가 예술인 치킨 트럭을 지나, ‘샤와르마’를 마주한다.


푸드트럭에서 주문한 샤와르마.


아랍지역 음식인 샤와르마는 스트리트푸드를 소개해 주는 푸드쇼에서 처음 봤었다. 이 음식은 양념을 하여 겹겹이 쌓은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등을 구운 다음 칼로 썰어 먹는 음식이다. 육즙이 주르르륵 흐르는 모습을 푸드쇼에서 봤을 때는 황홀하기까지 했다. 고기로만 먹기도 하고, 빵에 넣어 샌드위치로 먹기도 한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내는 푸드트럭에서 제대로 된 샤와르마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다, 합리적인 추론으로 스스로 기대치를 조금 낮췄지만, 낮춘 기대치만큼도 음식의 맛이 채워주진 못했다. 특별할 것 없는 고기 샌드위치 맛.


감동적이었던 필라델피아 치즈 스테이크.


생각지도 못했는데 놀랄 만큼 맛있었던 푸드트럭 음식도 있었다. 이제는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미국 음식’을 체험할 만큼 체험한 터라 별 기대 없이 선택한 ‘필라델피아 치즈 스테이크’. 잘 구운 슬라이스 고기는 한 입 베자마자 육즙을 터트리고, 함께 들어간 신선한 채소들은 뒷맛이 깔끔하다.  


핫도그처럼 생겨서 스테이크라는 이름이 붙은 이 음식은 필라델피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메뉴라서 이렇게 명명됐다고 한다. 사이드메뉴로 나온 프렌치프라이도 갓 튀긴 듯 ‘프레쉬’하게 놀랄 맛이다. 평범한 얼굴로 참 호기로웠던 필라델피아 치즈 스테이크. 



도심 속 푸드트럭.

국립공원 잔디밭 주변이 아니더라도 D.C 도심 곳곳에는 푸드트럭이 있다. 이곳에서 일상을 사는 직장인들의 맛있는 점심을 책임지고, 지나가다 출출한 시민들의 허기를 달래주기도 한다.


길거리에 보이는 계단이나 벤치, 앉을 수 있는 어디에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푸드트럭에서 주문한 음식을 먹는 즐거움. 


익숙한 음식보다 색다른 음식을 탐험하는 즐거움이 크기에, 한국음식을 푸드트럭에서 잘 주문하지 않

았던 터, 제육볶음을 파는 한국 푸드트럭의 트랩에 잡혔던 날이 있다.



“어머, 한국분 이신가 봐요!”


“네, 안녕하세요!”


타지에서 건네는 정말, 반가운 인사.


“여기서 한 5년 푸드트럭을 하는데, 요즘은 K-POP 때문에 한국음식 아는 사람이 참 많아요.”


“그렇겠어요, 방탄소년단이 요즘 대세잖아요!”


“그것도 맞는데, 빅뱅노래를 더 많이 아는 것 같아요.”


뜻밖의 미국에서의 빅뱅 인기 인증. 



한국서 먹던 그 맛의 제육볶음.


한국과 한국음식의 대한 호기심에 사장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꺄르륵 거리며 뛰어간다는 미국 꼬마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주문한 제육볶음을 건네주신다. 음식 포장을 넘어 손에 닿은 밥의 온도가 앗, 뜨겁다, 할 정도로 뜨끈하다. 많이 파세요.


미국입맛에 맞췄겠지, 예상을 깨고 한국 식당에서 종종 주문해 먹었던 ‘그 제육볶음’의 맛과 똑같다. 맵칼한 맛이 미국사람에서는 맵겠다 싶을 정도로 진짜 제육볶음의 맛에 충실한 맛. 분명히 또 먹고 싶어질 맛이다.


아직도 무궁무진하고 흥미로운 푸드트럭 음식의 세계, 부담 없이 쏙쏙 골라먹는 새로운 음식 탐험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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