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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Oct 27. 2018

미국, 할로윈데이 속으로!

악의와 음습함, 그 쾌감에 대하여


올해도 어김없이 할로윈데이가 다가왔다. 할로윈데이, 별 생각이 없다가도 어딜 가나 온통 할로윈데이 데코레이션과 음식의 향연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꾸미자하면 끝이 없는 할로윈데이 데코, 올해의 나의 선택은 거미전구다. 뚜껑이 달린 자그마한 전구 안에 모형 거미가 들어가 있다. 답답하고 배고파서 일찍 죽겠다, 전구를 켜면 뜨거워서 죽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미 죽은 건가, 죽은 거미를 모형으로 만든 걸까, 산 거미를 모형으로 만든 걸까. 생각이 많아지는 거미전구니 할로윈데이의 정신에 딱이다.



할로윈데이 시즌이 오면 어느 집이 더 음산한가, 경쟁하듯 꾸며놓은 할로윈데이 데코를 보며 길거리를 걷는 것만 해도 시간이 훌쩍 간다. 폐가인가, 순간 고민했던 집을 보며 엄지척. 그렇더라도 워싱턴D.C의 할로윈데이 분위기는 이전에 살았었던 캘리포니아와는 사뭇 다르다.  


할로윈데이 분위기에 충실하지만, 뭐랄까, 몰입도가 다르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정부처가 몰려 있는 포멀한 도시다보니, 자유분방한 캘리포니아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결이 다른 몰입도와 흥겨움이다. 카페나 식당을 가도, 애게, 이게 다야? 싶은 기분.




처음으로 미국에서 경험해본 할로윈은 생각보다 더 특별했다. 캘리포니아 LA 근교 작은 도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때 열리는 비밀스러운 어둠의 파티. 두근두근, 초대장 없이 숨어드는 초보 악역의 마음.




어른이고 아이고 아무런 선입견 없이 각자의 개성과 흥겨움으로 할로윈을 즐기는 모습이 퍽이나 놀랍고 인상적이다. 그린핀도르 마법사로 분장한 할머니, 그 하얗게 샌 머리카락은 정말 당신의 머리카락인가요? 새빨간 피칠갑을 한 가족들, 아직 다섯 살도 안 된 것 같은데, 괜스레 아이의 정신건강을 우려하는 오지랖이 발동될 정도의 섬뜩한 분장. 귀여운 아기 팅커벨, 꼬마 마녀, 영화 속 악역들.


나는 초심자답게 무난하게 마녀로 분장을 해보았다. 새까만 벨벳 고깔모자와 검은 드레스, 검붉은 입술을 했지만, 수많은 마녀들 중에서도 이제 막 금기된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하급 마녀의 모습 같을 뿐. 할로윈 악의 무리 속에 섞이니 평범하다.


섬뜩한 괴물들이 줄을 서서 소시지와 팝콘을 기다리는 모습에 웃음이 픽 난다. 거리 곳곳, 골목 하나하나, 어느 곳 하나 대충한 곳이 없이 ‘할로윈 스피릿’이 충만하다.   


속에 있던 악의와 음습함을 이렇게 꺼내 놓아도 그저 수많은 괴물들 중 평범한 하나, 전에 없던 쾌감이 온 몸을 휘어감아 꺄- 소리를 질렀다. 아, 이게 할로윈데이 맛이로구나.





잭-오-랜턴(Jack O"Lantern )은 흔히 말하는 할로윈데이에 쓰는 호박등이다. 할로윈데이가 다가오면 미국 마트에서는 아주 크고 고운 빛깔의 큰 호박을 싸게 내놓기 시작한다. 보통 호박은 단단해서 칼로 모양을 내기가 힘든데, 이 시기에 미국에서 파는 호박등을 위한 호박은 고기 써는 나이프를 사용해도 쉽게 구멍이 뚫릴 정도로 무르다.


먼저 호박 뚜껑을 둥그렇게 뚫는다. 호박에 밑그림을 그리고 칼로 구멍을 내준 다음, 그 안에 초를 켜두면 완성. 컴컴한 곳에서 불을 끄고 보니, 공을 들인 것에 비해 훨씬 기괴한 모습이 마음에 쏙 든다.

어떤 호박등은 꽤나 화려하고 예술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손으로 가능한가 싶을 정도의 섬세함과 열정이다.



이쯤에서 생기는 궁금함, 할로윈데이의 탄생 배경과 잭오랜턴의 존재 이유.


할로윈데이는 켈트인의 전통 축제였다고 한다. 켈트 족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음식을 준비하고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림으로써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았다. 이때 악령들이 자신들을 해칠까봐 두려워 한 사람들이 악령이 사람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 기괴한 분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 할로윈데이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잭오랜턴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옛날에 술을 좋아하고 교활한 잭이라는 사람이 악마를 골탕먹이고 죽게 됐다. 이에 앙심을 품은 악마는 잭을 천국도 지옥도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악마의 복수로 암흑 속을 떠돌게 된 잭은 아일랜드의 추운날씨에 악마에게 사정을 하여 얻은 숯을 순무 속에 넣고 랜턴 겸 난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후에 사람들은 핼러윈 데이의 상징으로 잭오랜턴을 순무대신 호박으로 사용하게 됐다는 전설이 있다.


보통 미국에서는 할로윈 시즌에 호박등을 파서 집을 꾸민 다음에 호박등에 곰팡이가 생기거나하면 버린다.


이 큰 호박을 버려야 되나, 멀쩡한 식재료를 버려야 되는 상황이 오자 마음이 크게 흔들린다. 이거 한번 먹어보자. 그래서 호박등을 파서 하루만 전시해두고 냉장고에 보관한 후 죽을 만들기로 했다. 애써 만든 호박등을 하루 전시하고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은 어찌 주객이 전도 된 것도 같지만.


마음에 쏙 들었던 잭오랜턴에 칼이 숭덩숭덩 들어간다. 이 순간마저 묘한 쾌감을 느꼈다면 조금 위험하려나.



감으로 하는 요리 레시피: 호박죽


재료: 호박 적당량, 설탕, 소금, 찹쌀가루


1. 껍질을 벗긴 호박을 잘 익을 수 있도록 깍뚝썰기한 후 물과 호박 2:1 비율로 끓여준다.

2. 호박이 익으면 잘 으깨준다. 이때 핸드 블랜드가 있으면 편하다.

3. 으깬호박이 어느정도 끓으면 찹쌀물을 개어 풀어준 후 빠르게 저어준다. 잘 저어주지 않으면 찹쌀물이 뭉칠 수 있다.

4. 마지막으로 소금과 설탕 간을 한 후 한김 식힌다. 꿀을 넣어도 좋다.


※새알을 넣고 싶다면 참쌀가루 반죽을 동글동글 말아 물에 따로 끓인다음에 넣어주면 좋다.



잭오랜턴의 최후, 그리고 그의 복수. 늙은 호박으로 만든 호박죽은 정말 맛이 없다. 호박죽은 단호박으로 하자는 깊은 깨달음으로. 늙은 호박으로는 호박전을 해먹는 게 낫다. 남은 호박으로 호박전도 만들었는데 죽보다 훨씬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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