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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Dec 20. 2018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깨운 ‘수제 핫도그’


작년, 나의 크리스마스는 어땠던가.

수 없이 스쳐갔던 평범하고 특별했던 크리스마스 사이에서 유일하게 ‘악몽’으로 또렷하게 기억될 작년 크리스마스.


한국에서 몇 주간 솜털처럼 따뜻하게 떠다니다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기다리는 공항, 그날은 눈이 내렸던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내일 한국은 분명 따뜻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터이지, 행복한 상상 뒤에 꺼림칙하게 도사렸던 걱정은, 더 큰 현실의 괴물이 되어 나를 덮쳤다.


지연, 연착, 지연, 지연, 연착은 몇 시간 동안 이어졌고, 한국에서 이브를 넘기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어코 맞이한 후에야,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떠올랐다. 기상악화 이후 떠오른 비행에 대한 두려움은,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 소비됐던 기진맥진한 감정으로 인해 될 대로 되라 식의 마음으로 희미해졌다.


껌뻑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메마른 눈은, 쑥 들어가 피곤했지만 늘 그렇듯 쉽게 잠들 수 없는 비행. 영화를 몇 편이나 보고, 밥을 두 끼나 먹고, 간식을 두어 번이나 받아들고, 잠을 몇 시간이 동안 청한 뒤에 캐나다에 떨어졌다. 캐나다 벤쿠버를 경유하고 미국에 도착하는 비행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쿠버도 속절없이 아름다웠던 화이트크리스마스 이브, 눈이 펑펑 내렸다.



계획대로라면 3시간 정도 후에 미국 워싱턴행 비행기를 탔어야 했지만, 기상악화로 인한 지연, 지연, 연착, 연착, 지연이 이어졌다. 재발급 받은 티켓은 워싱턴이 아닌 캐나다 다른 도시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또 다른 경유 티켓. 비행 지연이 되더라도 한국에서처럼 소신껏 항의도 해보고 바지런히 정보도 모으며, 상황을 타개하고 수긍해보려는 과정들이 해외 공항에서는 생략되어 버리면서 불공평한 권력의 시대, 불손한 패배자의 마음이 되었다.


비행 지연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태도-친절은 바라지도 않았다-에 분노를 삭이면서, 벤쿠버 공항에서 밤을 새고 말았다. 항공사 규정상 너무 긴 비행 지연으로 승객들에게 불편함을 줄 경우, 대기할 수 있는 숙박권이 제공되는지, 당시 호텔 숙박권을 건네받았지만 거절했다. 새벽 1시가 다 되가는 시간, 쌓일 대로 쌓인 피곤함, 처음 온 도시에 대한 무지함, 잘 통하지 않는 언어를 들고서 공항 밖을 나가 택시를 타고 호텔을 찾는 여정보다, 그냥 그대로 공항에 머무는 것이 낫다 싶었다. 그리고 경유 티켓 인데, 이대로 공항 밖을 나가도 되는지.




새벽 5시쯤 항공사 직원들이 공항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쯤 되니 언어고 뭐고 거치를 것이 없다. 처음 몇 번은, 비행 지연으로 공항에서 하룻밤을 머물렀습니다. 미국 워싱턴으로 가는 가장 빠른 티겟을 주세요. 이성적으로 대처도 해 보았다. 돌아오는 것은 NO.


“저기요! 이 공항에서 세 시간 머물 것을 지금, 밤을 샜어요! 어젯밤에 항공사 직원들이 줬던 호텔 숙박권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기상악화 속에 또 다시 경유티켓을 내미시나요? 그 도시에 가면 워싱턴으로 바로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있나요?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으니, 그냥 여기서 워싱턴으로 가는 티켓을 달라고요!”


울기 직전이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화가 나서 목소리는 떨렸고, 내 격앙된 목소리에 공항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쳐다보았다. 감정을 그 정도 드러내니 항공사 직원의 태도가 바뀌었다. 소곤거리며 하는 말.


“좋아요, 몇 시간 뒤에 워싱턴으로 바로 가는 티켓이 있어요. 그렇지만 단 하나 남은 자리입니다. 다른 승객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그렇게 티켓을 받아 들고 워싱턴에 떨어지니 크리스마스 저녁, 한국은 이미 26일이었던 날. 계획했던 크리스마스의 일정이 물 건너갔어도 하나도 아쉽지 않았고, 식욕도 없었으며, 잠도 오지 않았던, 무기력한 악몽 그 자체의 마음이, 핫도그 한 입에 녹아내렸다면 믿을 수 있을까.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결코 깨지 않을 것 같은 악몽을 깨운 수제 핫도그가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과 거의 지나간 크리스마스를 소소하게나마 기념하기 위해, 남자친구는 핫도그를 준비했다.


작년 크리스마스의 수제 핫도그.
수제핫도그 만들기


재료: 핫도그용 소시지, 식빵이나 핫도그용 번, 양파, 버터, 후추, 소금


1. 양파를 버터에 노릇노릇 볶는다. 후추와 소금 간을 한다.


2. 핫도그용 소시지를 팬에 익혀준다. 이때 물을 핫도그가 반쯤 잠기에 넣고 중불에서 속까지 익혀준다.


3. 소시지 속이 완전히 익으면 팬뚜껑을 열고 뽀득뽀득 노릇노릇 구워준다.


4. 핫도그를 구워 낸 팬에, 볶고 있던 양파를 넣고 볶아 소시지향과 불향을 입혀준다.


5. 토스트한 빵이나, 소시지용 번에 홀씨드머스터드(단맛이 없는)를 발라준 뒤 소시지와 양파를 올린다. 


집에서 종종 만들어 먹는 핫도그.


완성된 소시지 한 입을 왕, 버터향 솔솔 나는 달콤한 양파를 지나 따뜻한 소시지를 아그작, 육즙이 톡 뿜어져 나온다. 노릇노릇 카라멜라이징된 양파는 감칠맛과 단맛을 끌어올려, 짠 소지시의 맛을 중화시킨다. 없던 식욕이 폭발하고, 무감각했던 마음에 그날의 분노가 다시 치고 올라온다. 으악! 꿀꺽꿀꺽, 제일 좋아하는 에일 맥주를 거침없이 들이킨다. 캬, 다 모르겠고, 지금은 행복하다!


내 인생 가장 맛있었던 핫도그다. 완성된 핫도그에 케찹이나 바비큐소스, 칠리소스를 뿌려 먹어도 좋지만, 처음 몇 입은 그냥 먹어야 한다. 좋은 소시지를 쓴 핫도그는 별다른 소스가 없어도 그 자체로 맛있다. 소스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좋은 재료를 양념과 먹으면 아깝듯이.


핫도그가 크리스마스 음식은 아니겠지만, 올해도 먹음직스럽고 따뜻한 수제핫도그에 시원한 맥주 한 병이면 최고의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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