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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숲 Apr 30. 2019

미국에서 닭발이 먹고 싶으면 일어나는 일

먹기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냉장고에는 된장, 고추장이 늘 구비되어 있다. 간장, 참기름, 깨소금 등 한국 조미료들도 준비되어 있어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이 생각나면 그때 그때 만들어 먹는 편이다. 한국마트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한 미역, 순대, 어묵도 있다. 가끔 순두부찌개 같은 반조리 식품도 주문한다. 김치는 한국에서 만큼 부족함 없이 먹지는 못하지만, 집에서 직접 김장도 한다. 


SNS에 올라가는 내 요리사진들을 보며, 니가 사는 곳이 미국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는 몇 번이나 듣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잘 해먹어도, 미국에 살면 어쩔 수 없이 그리운 한국 음식들이 있다. 


언제든, 먹고 싶으면 바로 사서 먹을 수 있었던 한국과는 달리, 한 번 떠오른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거 못 먹으면, 이거 먹으면 되지. 남부럽지 않게 차려 먹어도, 먹지 못했던 음식은 어느새 결핍이 되어 ‘먹고 싶어 죽겠다’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발톱을 하나하나 잘라 만든 매운닭발.


‘먹고 싶어 죽겠는’ 한국 음식 중 하나는 닭발이다. 미국에서 닭발을 파는 곳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일단 미국에 들어오면 닭발은 못 먹는 음식이 된다. 그래서 한국에 갈 때마다 닭발은 몇 번이나 사먹는 음식.


결핍으로 자리잡아버린 닭발은 향수병처럼 아련하다. 한국에나 가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포기할 때쯤, 인터네셔널 마켓에서 닭발을 파는 것을 발견했다!


양념이 묻은 닭발 요리도 보기에 그닥 호감은 아닌데, 처음으로 조리되지 않은 닭발의 비주얼은 사실 조금 충격이었다. 으악, 징그럽다, 라는 말이 절로 튀어 나온다. 쭈글쭈글한 닭발 끝에는 발톱까지 그대로 있다. 매운 닭발을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말갛고 원시적인 레어템 닭발 앞에서 한참을 서서 고민했다. 하- 사, 말어. 


사야했다. 사야만 했다. 그리고 요리인생 최대 고비를 마주했다. 마치 이것은 내 부엌의 최종보스. 이것을 해낸다면 나는 어떤 요리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일단 닭발을 삶기 전에, 날카로운 발톱을 잘라내야 한다! 비닐장갑을 끼고, 한 손에는 가위를 들고서 닭발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이 망설이는 게 보였다. 내가 그렇게 강심장은 아니구나. 닭발의 발톱 앞에 한 없이 작아진다.


닭발도 발가락이라고 불러야 하나, 발가락 하나하나에 달린 발톱을 가위로 톡톡 잘랐다. 으악! 으악! 끄으악! 발톱을 자를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닭발 하나, 닭발 두 개, 닭발 세 개째가 되자, 익숙해 졌다. 사람은 참 적응의 동물이다. 처음에는 경악스러웠던 일이 익숙해지자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톡, 톡, 톡, 잘려나가는 발톱 소리를 들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닭발이 먹고 싶으니, 닭발 발톱을 자르게 되는구나.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다. 새삼 나의 먹열정에 감탄을 했다.


매운닭발 요리는 기대에 못 미쳤다. 매운고춧가루, 고운고춧가루, 매운고추까지 넣었는데도 한국서 먹던 것만큼 맵지 않았고, 특유의 불맛도 내지 못했다. 양파와 마늘, 생강, 사과를 갈아서 양념장을 만들었지만, 감칠맛도 아쉬웠다.


닭발 손질에 진을 빼서 일까, 막상 매운닭발이 완성됐지만 먹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든 것도 실망스러웠다. 요리한 사람은 만든 음식에 눈이 안간다는 말을 몸소 체험했다 할까. 진이 빠져버렸다. 만들었으니 의무적으로 먹는다는 느낌. 닭발은 사서 먹자, 결심했던 날.



심장을 반으로 반으로 갈라 만든 닭염통구이.

닭염통구이가 먹고 싶으면 일어나는 일도 있다. 이자까야에 가면 꼭 주문하는 닭염통구이, 고소하고 담백한 맛에 적당히 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닭염통도 닭발을 산 인터내셔널 마트에서 발견했다. 처음 마주한 닭염통, 평소에 사서 먹던 모양새와는 다르다. 


그래도 그대로 조리했더니, 잡내가 나고 심지어 느끼하기까지 하다. 자체적으로 파악한 문제의 원인, 염통을 반으로 갈라서 꼬치에 꽂아 굽기로 한다. 


여기서 잠깐, 닭염통은 닭심장 부위라는 사실. ‘chicken heart’라고 적힌 닭염통을 사다가 닭심장을 하나하나 반으로, 반으로, 가르는 과정. 그 반을 가르면 응고된 피도 보이는데 이런 불순물을 깨끗이 씻어 구워야만 잡내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염통을 손질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물컹한 촉감은 물론, 이게 닭심장이라는 의식을 최대한 모른 척 했다. 


그렇게 손질을 끝내고 꼬치에 꼽아 노릇하게 구운 닭염통구이는 대성공. 잡내도 없다. 이자까야에서 사먹던 딱 그 맛. 시장에 들르면 종종 사먹었던 그 맛. 학교 앞에서 주전부리로 사먹던 바로 그 맛. 


결과가 만족스럽자, 그 뒤로는 재료 손질에 대한 거부감을 무릅쓰고 자주 사먹게 됐다. 처음에는 소금후추간만 해서 굽다가, 그 뒤로는 간장양념, 매운양념을 발라 구워서 먹었다. 술안주에도 이만한게 없다. 미국에서 먹어서 더 맛있다. 미국에서는 그저 닭부산물로 취급받아 거저다시피 살 정도로 저렴한 식재료지만, 내 식탁에서는 소고기스테이크보다 더 귀한 요리다.


닭목을 양념장애 재워 졸인 닭목조림.


미국에서는 닭목도 닭부산물 취급이다. 미국에서 닭목은 안 먹는 부위기 때문이다. 그래서 닭발과 닭염통처럼 닭목만 포장되어 따로 팔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닭목살만 발라내어 꼬치로 만드는 닭목구이가 별미라고 들었다. 


한국에서도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었던 닭목 부위. 호불호도 없던 닭목부위를 잔뜩 사다가 닭목구이도 만들어 봤다. 달콤짭쪼름한 간장 양념에 졸인 닭목구이는 참 맛있었지만, 그야말로 ‘징그러움 주의.’ 닭목 부위만 집중해서 먹자, 몰랐던 닭목살의 부드러움과 고소함이 제대로 느껴진다. 닭목도 한 접시 먹다보면 닭발처럼 은근히 배부르다. 이쯤 되면 닭똥집 손질과 요리는 일도 아닌게 된다.


먹기 위해 어디까지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먹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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