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숲 Mar 13. 2020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고양이와 공유하는 일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개인 방이 없었던 청소년기를 보내고, 대학 생활, 직장을 가져서도 룸메이트와 원룸 생활을 했다. 공간을 창조한다거나, 취향에 맞게 꾸민다는 것을 바랄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최근에 들어서야 우리집에서 내가 가장 공간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 속에서 충만함과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기쁘고 행복한 일이었다.      


예전부터 미적 센스는 없었다. 남들과 다른 감각적인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마음먹고 치밀하게 공간을 꾸민다는 것은 포기했다. 그런 계획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에 부담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들이고, 또 들이고, 채우다 보니, 어느새 공간은 취향이 되고 분위기가 되어 있다. 작은 초 하나를 사더라도 원하는 향과 색, 성분을 따져가며 샀다. 내 공간에 흐를 향이라고 생각하면 무엇하나 대충할 수가 없다. 초 하나를 사는데 흐르는 물색없는 시간마저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하얀 불보다는 노란 불이 좋아 노란 조명을 사들였다. 미국의 집은 조명이 설치되어 있기보다 직접 조명을 사야되는 경우가 많다. 조명이 아예 없는 리빙룸과 다이닝룸은 노란 전구로만 꾸몄다. 반짝반짝 작은 전구들을 켜면 매일이 축제 같아서 즐겁다. 비가 오는 날에는 전구와 조명들이 더 아늑해진다. 그 아늑함 속에서 커피를 내리는 루틴이 평소보다 더 따뜻해지는 것이다. 그 따뜻한 공간에 파묻혀 긴 낮잠에 빠진 키라라를 바라보는 것도 행복이다.     


초록이들을 좋아해 시즌마다 나오는 작은 화분들을 조금씩, 신중하게 사다 날랐다. 거실에 해가 쨍하고 들지 않아, 해가 적게 들어야 잘 사는 음지 식물들만 들였다. 우리집 거실의 큰 창문은 키라라와 나눠 쓰고 있다. 키라라는 창문을 봐야하고, 식물들도 해가 필요하기때문에 키라라가 식물들이 있는 선반으로 뛰어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들은 꽤 까다로웠다.     


물론 식물과 키라라의 공존을 위한 나의 시도들은 몇 차례나 좌절되었다. 식물들을 보호하면 보호할수록 키라라는 보란 듯이 초록이들을 탐했고, 끊임없이 도전했다. 자고 일어나면 화분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기 일쑤고, 잎사귀들을 뜯어 놓기도 했다. 힘겹게 싹을 틔운 초록이를 뿌리 채 뽑아 놓은 아침에는 정말 속상했다. 캣닙이나 캣그라스같은 고양이를 위한 식물들을 키라라가 닿는 곳에 놓아두어도,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용맹한 우리 키라라는 쉬운 먹잇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공격과 또 수많은 방어 끝에, 우리는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만들었다. 톡 치면 넘어갈 스티로폼 판의 ‘보여주기식’ 차단에도 키라라는 결국 내가 식물을 많이 아낀다는 것을 받아들였고, 창문 옆에 높은 작은 캣닙 화분에 다행히 만족했다.     


최근 부엌에 놓을 팬트리와 나무책상을 사기 위해 인터넷 쇼핑을 할 때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쇼핑 사이트에 차고 넘치는 팬트리와 책상들, 최고의 가성비로 최상의 선택을 하기 위한 정보 처리는 그야말로 초인적이었다. 불리한 제품 정보를 교묘하게 가리거나 숨긴 제품을 알아채면서 코웃음을 쳤다. 팬트리는 무게 하중을 얼마까지 견디는지 확인했다. 나무책상은  너무 비싼 원목 대신, 목재합판을 살펴보았다. 무늬만 목재합판인 척하는 책상들을 선별하고, 또 목재합판 중에서도 종류를 따져가며 살펴봤다. 약 3일간의 정보 수집과 선별 작업 끝에 원하는 팬트리와 나무책상을 주문했다.     


팬트리는 원하는 크기와 견고함에 큰 만족감을 주었다. 팬트리가 온 날에는 부엌 찬장에 정신없이 섞여 있던 프라이팬들과 냄비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사방에 흩어져 수납됐던 실온보관 식재료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나무책상이었다. 나무책상의 디자인과 크기는 생각했던 그대로였지만, 견고함이 떨어졌다. 조립식인데도 엉성해서 구멍에 맞지 않은 몇 개의 나사는 포기하고 말았다. 또 다른 걱정거리도 있었다. 이 나무책상이 바로 휴전선이 그어진 식물 선반 바로 옆에 자리해야 된다는 것이다. 만약 키라라가 책상으로 뛰어오르면 식물 선반으로 바로 돌진할 수 있다. 그러나 15세 노묘인 키라라의 낮아진 점프력이 우리를 살렸다. 시도하지 않아 다행이면서도 짠한 마음.     


내 옆에 오고 싶어서 눈을 댕그랗게 뜨고 주위를 서성이는 키라라를 번쩍 들어 책상 위로 올렸다. 초록이들을 탐하는 키라라를 몇 번 저지하자 키라라는 이내 포기하고 스르륵 누워 잠에 빠진다. 따닥따닥 타자 치는 소리가 거슬리지도 않는지 꿈쩍 않고 긴 낮잠을 자는 키라라 곁에서 나도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그날의 일을 일찍 끝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