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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즌졍 May 04. 2019

잃어버린 이들은 반복했다

[JIFF]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카오스' 후기

끝까지 모를 줄 알았다. 갑자기 알았다. 끝나기 일분전. 끝까지 상처를 알려주지 않는 그 여성의 뒷모습을 보다가. 할 수 있는 것이 떠도는 것 뿐이구나.


영화 속에는 잃어버린 세 여성이 있었다. 아름답지만 동시에 어딘가 비어있다 느껴지는 영상들이 이어졌다. 잃어버린 세 여성은 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매일 침대에 깨끗이 빨아놓은 옷을 올려두거나, 끝 없이 풀에 젖은 종이를 캔버스에 붙이거나, 떠돌았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들이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잃어버리고 할 수 있는 것이 그 뿐인 세 여성의 현재가 영화 속에 있었다.


잃어버리고 할 수 있는 것이 그 뿐인 세 여성의 현재가 영화 속에 있었다.


잃어버렸다고 해서 일상이 일상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은 언제나 그렇듯 일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단조롭고 평범하다. 그래서 지루했다. 온 몸이 뜨거워지며 갑작스럽게 피로감에 무거워질 때 느꼈다. 뒷 좌석의 커플이 앞 좌석을 네개의 무릎으로 치면서 지나갈 때 다들 이들도 지루하다는 것을 느꼈다.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있고,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지루함. 영화를 보는 이들도 그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버둥거려도 벗어날 수 없는 영화 속 지루함과 달리 의자를 박차고 나갈 수도 있고 꾸벅꾸벅 졸 수도 있는 지루함이기는 하지만.


영화를 보는 이들도 그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끊임없이 녹화하는 CCTV도 아니고, 유튜브에 올리기 위해 본인의 모든 일상을 찍는 액션캠도 아니고, 현실을 똑같이 연기하는 배우를 찍는 카메라도 아니었다. 잃어버린 이후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찍는 카메라였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카메라였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아직까지 대학 강의실에 살아있는 이유는 다 있는거다. 아무리 아픈 상처라도 다른 이가 그 상처를 느끼게 하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듣는게 좋다. 상투적이라고 욕해도 그렇다. 그게 인간이라고 한다. 카페인 덕분에 영화 내내 가볍게 떠있을 수 있었던 눈꺼풀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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