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즌졍 May 06. 2019

불편하자. 살아남자.

[JIFF]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파고' 후기

tvN에서 이미 한번 방영이 되었던 작품이라, 극장에서 보는 것이 사실 아까웠다. 그런데 관객과의 대화에서 말씀하시길 영화로 재편집이 되면서 훨씬 호흡도 길어지고 개연성도 높아졌다고 하시더라. 이미 방송에 나왔던 작품이건 말건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한층 더 만족스러워졌다.


경제적 능력이 없고, 어린데, 혼자이고, 밖으로 이동할 능력도 없는데 심지어 여자. 여자.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덕분에 왠지 뭔가 더 잘 굴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겠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그 무엇이든 반복되어 일상이 되어버리고 익숙해지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


왠지 뭔가 더 잘 굴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겠지.


작은 섬 마을에 일을 하겠다고 오는 젊은이가 거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본인이 돌보며 살아온 여자 아이 때문에 그 젊은이들이 계속해서 일을 온다면. 그 여자 아이도 전과 다르게 생기가 도는 것이 보인다면. 비록 그 아이가 조금씩 더 많이 빠져들어가고 있었을지라도. 말릴 이유가 없겠지. 오히려 상황은 전보다 나아졌으니까. 초반에 느껴졌던 작은 불편함이 계속해서 작아져 마치 없는 것처럼 느껴졌겠지.


생각해야 한다. 생각해야 하고. 불편함을 잊으면 안 된다. 그 불편함이 사라지려고 하면 얼른 다시 붙잡아야 한다. 계속해서 불편해해야 한다. 그래야. 행동할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행동할 수 있다. 그 여자 아이는 멧돼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던 영화 속 그 사내처럼.


나도 모르게 계속 실패할 거라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계속 실패할 거라 생각했다. 경찰이라는 직위와 상관없이. 그리고 그곳에는 남성이 너무 많았다. 감독이 그녀를 실패하게 만들 것 같아 불안했다. 그들이 남성이고 또 동시에 많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이미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실패한 이야기를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다.


사막에 혼자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지만. 제대로 잘 살아남고 싶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그들이 서로 함께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돈을 벌자. 인정받자. 함께하자. 벌거벗은 채로도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아자아자.

작가의 이전글 잃지 않으려면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