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즌졍 Apr 17. 2019

회사를 때려친 101가지 이유: 질투편

[Essay] 좋아하는 일 하는 사람들을 향한 못난 질투심

나는 질투쟁이다. 세상만사에 질투심을 느끼고, 욕심을 부린다. 그니까 욕심쟁이이기도 하다. 근데 게을러서 정작 질투하고 욕심내놔 놓고서는 별로 그것들을 얻어내지는 못한다. 그냥 질투하고 욕심만 낸다.


제목에도 쓰여 있듯이 회사를 때려친 이유야 뭐 대충 101개 정도 된다. 안될 수도 있다. 근데 될 거 같다. 넘으면 넘었지 부족하진 않을 듯. 암튼 그중 하나가 질투였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 그들이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고 즐기고 사랑하는 모습에서 느꼈던 질투. 나는 억지로 일을 하고 있는데 왜 당신들을 그렇게 신나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나도 일 좋아할 줄 알아요. 나도 궁디 흔들어 재끼면서 좋아하는 일 할 줄 알아요. 근데 나는 지금 그러지 못하고 있다구요. 근데 왜 당신들은 그렇게 궁디 흔들면서 일하는 것처럼 보이냐구요. 질투 나게. 그래 나 못났다.


왜 당신들은 그렇게 궁디 흔들면서 일하는 것처럼 보이냐구요.
질투 나게.


아니 사실 어쩌면 난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신명 나게 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해볼라 했는데 아니다. 나도 신명 나게 춤추면서 덩실덩실 일한 적 있고 많고 그게 얼마나 즐거운지 알고 그 순간에 내가 얼마나 잘난 사람이 되는지도 안다. 그렇게 일하면 진짜 일 겁나 잘한다. 아니 근데 사실 그렇게 일 안 해도 나 일 잘하긴 잘한다. 나는 뭐든 대충 항상 잘하긴 잘한다. 근데, 내가 비록 일을 잘하고 있긴 하지만 신나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괴롭고 힘들었는데, 매일 매 순간 같은 사무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 들썩들썩 흥 충만하게 일하고 있는 모습들에 너무 질투가 났다. 그래서 회사를 때려첬다.


신명 나게 덩실덩실 일하면 진짜 일 겁나 잘한다.


내가 일했던 회사를 만든 사람 중 한 명은 꽤 오랫동안 이 회사의 사업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꽂혀 꽤나 깊게 좋아했다고 건너건너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걸로 돈도 많이 벌어서 그 회사를 차릴 수 있었던 거로 알고 있다. 그리고 흔히 말했을 때 팀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나의 팀장님은 원래 본인이 재미있어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라 그 회사의 일도 재미있어서 하고 있었던 거로 알고 있다. 그리고 또 또 다른 사람들도 나는 잘 모르겠는 이 회사의 산업 분야에 다들 미쳐서 재미있어서 뛰어들었고, 뛰어든 채로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회사 일이 어떻게 전부 재미있겠냐마는 암튼 일단 그 사람들은 이 회사에 오고 싶어서 온 거고 지금 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너무 질투가 났다.


고3 때, 그 시절 ‘진로'라 부르던 것을 정해야 했고, 뜬금없이 나와 엄마는 내가 예술을 하는 거로 정했다. 근데 뭐 결국 망했는데, 근데 또 신기하게 그냥 대학 갔는데, 거기에 갑자기 내가 하고 싶던 예술 관련 전공이 생겼고, 그래서 복수전공 했다. 그렇게 대학에서 한쪽 발만 담근 채 예술을 공부했고, 학교 밖에서는 대충 예술 비스무리 해 보이는 것들을 깨작깨작했다. 깨작깨작했지만, 궁딩이 겁나 흔들어 재끼며 펄펄 뛰댕기면서 했다. 그리고는 그냥 당연하게 대학 졸업하면 극단이나 재단 뭐 이런 데 취직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도망쳤다.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혼자 울며 도망쳤다.


하지만, 도망쳤다.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혼자 울며 도망쳤다.


결코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함 없이 살았다. 당연히 내 방이 있었고, 입고 싶은 옷 입고, 먹고 싶은 음식 먹으며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았다. 근데 이게 참 어려운 일이더라. 추울 때 따뜻하게, 더울 때 시원하게, 배고플 때 배 안 곯고 살아남는 일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더라. 그리고 겁쟁이 지윤정은 궁딩이 흔들며 사는 삶보다는 조급한 마음 없이 내일 걱정 않고 사는 삶이 더 아주 조금 더 좋았다. 여기서 또 하나 부끄러운 사실은.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관찰자 시점에서 내린 결론이라는 거. 깨작깨작해본 주제에 내린 결정이었다.


추울 때 따뜻하게,
더울 때 시원하게,
배고플 때 배 안 곯고 살아남는 일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더라.


그래서 질투가 났다. 당신들은 뭔데 당신들 궁딩이 씰룩거리는 일인데도 배부르게 살 수 있는 건지. 사실 내가 워낙 베베 꼬인 질투쟁이에 욕심쟁이라 그런 거지만.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 돈도 되는 일인 게 참말로 부러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은 왜 돈이 안 되는 일인지. 나는 왜 이 돈이 되는 일을 돈이 안 되는 일을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할 수 없는 건지 속땅해따. 흑흑. 그래서 때려쳤다. 헤헤. 히히. 이제 뭐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여전히 난 겁쟁이라 궁딩이를 사방팔방 흔들어 재낄 일까지는 할 용기가 아직은 없는데. 근데 또 모르지 뭐. 이러고 한 달 뒤에 미친년처럼 궁딩이 흔들고 있을지.


[유튜브] 회사를 때려친 101가지 이유: 질투편에서 본 글을 동영상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어깨가 옷을 벗으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