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성의 삶 자체가 감사한 이유
[Essay]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를 봤습니다.
그냥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지 너무 오래되었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이 영화를 발견했고, 바로 상영관과 시간표를 확인했다. 그리고 백수 딸로서 일 나가는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집에서 나와 벚꽃이 꼼질 거리는 목요일 오후 1시 30분 영화를 보러 갔다.
긴즈버그는 잡담을 하지 않는 굉장히 과묵하고 진지하고 소심한 작은 여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매우 똑똑한. 정말 엄청나게 미친 듯이 똑똑한 여성. 그래서 시위보다는 법을 갖고 법정에서 여성을 위해 싸울 수 있는 그런 여성. 감사하고 고맙고 멋있는. 이 질투쟁이 지윤정이 감히 질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웅장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었다.
감히 질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웅장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었다.
변호사로서 긴즈버그는 한 사람 한 사람 본인의 삶에서 성차별을 겪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로 미국을 바꿨다. 치밀한 전략가인 긴즈버그는 그 한 사람만을 위한 재판을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그 한 사람의 사례를 통해 미국 자체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바꿨다. 왜냐면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나’니까. ‘우리’니까.
9명의 대법관 중 유일한 여성인 긴즈버그는 대법관들의 투표로 결정된 사항에 대해 반대한다고 이야기한다. 비록 다수결에 의해 결정이 되었지만, 본인은 반대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지점에서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아니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성들은. 미친 듯이 노력한다. 매 순간 열심히 한다. 그래야만 한다. 왜냐하면, 여성인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알기 때문에. 똑똑한 여성인 나는 잘해야만 한다. 실수해서는 안 된다. 여성이 실수하면 돌아갈 수 없고, 나의 실수로 인해 다른 여성이 기회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근데 이게. 정말. 너무. 힘들다. 괴롭다. 서럽다.
긴즈버그도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피곤하고 괴롭고 힘들었을 거라고. 그리고 그 영화에 등장한 모든 여성이.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여성이. 매 순간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 누구에게 이야기하지도 못한 채 혼자 매 순간. 정말로 일분일초마다. 미친 듯이 싸우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스크린을 통해서 전달되는 긴즈버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단단한 에너지가 좋고 감사하고 멋있으면서도 눈물 나게 했다.
9명의 대법관 중 유일한 여성인 긴즈버그는
대법관들의 투표로 결정된 사항에 대해 반대한다고 이야기한다.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긴즈버그는 보수 진영에 속하는 대법관과 법에 관련해서는 항상 부딪히면서도 함께 여행 가고 오페라를 보러 간다. 긴즈버그와 그는 친구이다. 그것도 꽤나 절친한. 긴즈버그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듯했다. 좋아하고 싶으면 좋아해도 괜찮다고.
때려친 회사를 다니는 내내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하고 힘들게 했던 것들은 좋아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자꾸 좋아하게 되어 버리는 회사 동료들이었다. 본인도 모르는 새에 나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상처 주었지만, 그래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들. 좋아하면서도 내가 왜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지? 의구심이 들게 했던 사람들.
하지만, 긴즈버그가 그랬다. 아니 보여주었다. 좋아하고 싶으면 좋아해도 괜찮다고. 좋아할 만한 사람이라면 주저 없이 좋아하라고. 감사하다.
좋아하고 싶으면 좋아해도 괜찮다고.
감사했다. 긴즈버그라는 여성이 이 지구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긴즈버그라는 여성이 지금까지 본인의 삶을 잘 살아주셨다는 사실에. 내가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매우 유용한 자료를 본인의 전 생애를 통해 만들어주시고 남겨주셨다는 사실에. 비록 다큐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영화의 작품적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한 긴즈버그의 러브 스토리까지 여성인 나의 삶을 위한 자료로 활용할 자신은 없지만…
※[유튜브] 그 여성의 삶 자체가 감사한 이유 에서 본 글을 동영상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