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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즌졍 Apr 19. 2019

북조선 사람으로 오해받는 이유

[Essay] 힙한 문화를 지닌 북한 사람들이 굶지 않기를 자유로워지기를

대홍단 감자 노래를 너무 잘 불러서 그렇다. 둥굴둥굴 왕감쟈 때~홍다 감좌~ 라고 시작하면 들썩이는 어깨 잡아 내리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사실은 그 영상 속 북조선 어린이가 나와 너무 닮아서일지도 모른다. 그 영상을 본 터키 친구가 바로 “너 어렸을 때?”라고 물었으니.


문제는 사람들이 진짜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농담으로 나에게 탈북자냐고 묻기 시작하면 나는 맞장구 치며 얼토당토않은 북한 사투리를 하곤 하는데, 그 순간 하하 호호 웃으면서도 ‘쓰읍… 어쩌면…’ 이라는 글씨가 그들 얼굴에 또롱하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대홍단 감자 노래를 너무 잘 불러서 그렇다.


나를 붙잡고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외국 친구들은 백이면 백 북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독일 친구에게 나치 이야기를 꺼내는 것과 비슷한 호기심일 거라 생각한다. Korea라는 나라명을 지닌 사람에게서 한 번쯤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겠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나도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다. 초등학생 때 아크릴 물감으로 통일 포스터를 그리던 기억이나 TV에서 보았던 북한 늬우스 영상 정도만 머리에서 맴돌 뿐이었다.


핀란드에 있을 때 책에 인쇄된 텍스트가 너무 읽고 싶었다. 노트북이나 A4로 읽는 논문 말고, 서울에서 들고 온 소설책 말고, 새로운 텍스트. 그렇게 헬싱키 서점의 영어책 코너를 배회하던 중에 갑자기 젊은 한국 여자분의 얼굴을 본 거 같았다. 실제 사람 말고, 책 표지에서. 처음엔 그냥 지나갔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다시 돌아가서 책을 들었다. 무슨 책이길래 표지가 증명사진 같은 한국 젊은 여자분 얼굴이지?


초등학생 때 아크릴 물감으로 통일 포스터를 그리던 기억이나 TV에서 보았던 북한 늬우스 영상 정도


그날 바로 책을 사지는 않았다. 덕분에 그 책에 대한 갈증이 생겼고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하지만 탐페레 서점에서는 그 책을 구할 수 없었다. 한 달 정도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헬싱키에 다시 간 날 우다다다 달려가 책을 샀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머리가 아픈 것뿐이었다. 감히 공감할 수도 상상할 수도 눈물을 흘릴 수조차 없었다. 내가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는 미안함 뿐이었다. 그 이후의 감정은 멋지다. 와 정말 멋진 사람이다. 그리고 감사하다. 이야기해 주어서 정말로 감사하다. 이후로 지금까지도 나는 박연미 씨의 팬이다.  비록 부지런하지는 못해서 가끔 생각날 때마다 영상을 찾아보는 정도이기는 하지만.


감히 공감할 수도 상상할 수도 눈물을 흘릴 수조차 없었다.
내가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는 미안함 뿐이었다.


내 사랑 대홍단 감자와의 만남은 더 간결하다. 회사에서 내가 자꾸 ‘감쟈합니다' 라고 했더니 영상을 만드시던 분이 대뜸 대홍단 감자 링크를 보내주셨다. 하필이면 사무실에서 처음 봐가지고 하루종일 목이랑 궁딩이가 근질거려 죽는 줄 알았다. 결국 참다 참다 그날 밤 엄마 앞에서 재롱 잔치했다.


그 이후로도 그냥 교보문고에서 친구 기다리다가 발견한 북한 디자인 책을 한장 한장 넘겨보다가 그 자리에서 전부 다 봐버린 거 정도? 괜히 마케팅 콘텐츠 만들 때 생각나서 아이디어랍시고 이야기했다가 북조선 사람이라는 오해만 더 깊어졌다.


북한 문화 진짜 힙하다.


지금 나에게 외국인 친구가 북한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꺼낸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두 가지 이다. 하나는 그저 난 북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그들이 굶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다른 하나는 북한 문화 진짜 힙하다. 요즘 스포츠 의류 쪽에서 레트로가 유행이던데, 내가 봤을 때 북한 문화 전 세계적으로 먹힌다. 더 많이 숨겨져 있을 그들의 힙한 문화가 너무 궁금하다.


[유튜브] 북조선 사람으로 오해받는 이유에서 본 글을 동영상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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