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영어 공부할 바에는 통번역가를 섭외하겠다던 나
수능 영어는 100점을 받았었다. 호기롭게 대학을 갔고, 첫 학기 첫 영어 교양 수업에서 C-를 받았다. 수업도 다 나갔고 과제도 다 냈고 시험도 다 봤다.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영어는 없다고. 어설프게 영어 해서 괜히 사고만 칠 바에야 전문 통·번역 가를 섭외해서 살겠다고. 그리고 3년 뒤, 나는 120점 만점짜리 TOEFL(토플) 시험에서 102점을 받았다. 이거 엄청 높은 점수다.
일평생 성실한 학생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등학생 때까지 영어가 크게 고민이거나 문제였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꽤 자신 있는 과목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모든 한국 사람이 그렇듯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은 몰랐다. 시험지에서 답 고르는 거나, 15분 안에 300단어 외우고 시험 보는 거 정도 잘했다. 그래도 그렇지 10년을 공부했는데, C-는 너무한 거 아닌가. 그때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누구에게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는 배신감.
그래도 그렇지 10년을 공부했는데, C-는 너무한 거 아닌가.
이탈리아에 1달 동안 살아보고 싶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저기 겁나 떠들고 다녔다. 이건 나만의 라이프 팁 중의 하나인데. 일단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면 굉장히 쉽게 아주 기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나처럼 인터넷 검색 못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중요한 생존 기술 중의 하나이다. 이탈리아 가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더니 이탈리아 자판기 커피가 엄청나게 맛있다는 것과 피자랑 파스타가 생각보다 맛없다는 아주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차라리 교환학생을 가라는 소리도.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다. 내가 해외에서 6개월, 아니 심지어 1년을 산다니. 나라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한번 이야기를 듣고 나자, 머릿속에서 이 생각은 점점 커졌고 어쩌면 아주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학교 홈페이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와 진짜 이놈의 대학 쉬끼 진짜. 대학은 참 하나부터 열까지 가만히 떠먹여 주는 것이라곤 없는 곳이라는 것을 이때 새삼 깨달았다.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왕 가는 거 유럽을 가고 싶었고, 또 기왕 가는 거 1년 가고 싶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핀란드가 유일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교육 문제 해결책인 핀란드 교육.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사회 문제 해결책인 북유럽 복지. 내 망상 속에서 나는 이미 꿈과 환상의 나라에 가 있었다.
문제는 많았다. 학점도 문제, 돈도 문제, 토플 점수도 문제. 1년 살기 위한 2년짜리 준비 계획을 짰다. 첫 번째는 토플 시험비와 학원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였다. 2달 동안 하루에 10시간씩, 일주일에 하루 쉬면서 신발을 팔았다. 그리고 토플 학원에 다녔고, 얼굴이 여드름 범벅이 되었고, 3번의 80점을 받고 마침내 102점을 받았다. 핀란드에 가기 위해서는 90점 이상의 점수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밥 잘 먹고 왔다. 핀란드에서.
미국에 교환학생 다녀온 친한 언니가 있었다. 1년 동안 언니는 영어 때문에 제대로 못 즐긴 거 같아 아쉬웠다고 했다. 나보고는 그러지 말라더라. 토플이 영어공부의 끝이 될 수 없었다. 내 핀란드 라이프에서 영어는 밥상 위의 젓가락 같은 존재가 되어야 했다. 내가 할 일은 밥을 맛있게 먹는 것일 뿐. 내가 젓가락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려야 했다. 그리고 나는 밥 잘 먹고 왔다. 핀란드에서.
※[유튜브] 한국에서만 영어공부해서 원어민으로 인정받게 되었다?!에서 본 글을 동영상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