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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즌졍 May 24. 2020

폭풍 설사에도 커피 마시는 이유

[Essay] 머리도 깨질 것 같고 멀미도 납니다.

눈을 감은채 타자를 치고 있다. 너무 졸린데 잘 수가 없어 노트북을 열었다. 카페 직원이 주문하겠냐 물었을 때, 시선은 메뉴판에 붙여놓은 채 음... 소리를 내며 처언천히 움직여 가방에서 카드 지갑을 꺼내고, 주르륵 여섯 장의 카드를 손끝으로 훑은 뒤 결제할 카드를 골라 엄지와 검지로 잡아 처언천히 뽑아내면서 세 가지뿐인 차 메뉴를 봤다가 빠르게 다시 오만 종류의 커피빈 이름을 읽다가 잠깐 두 가지뿐인 와인도 봤다가 다시 생소한 커피빈 이름과 설명을 읽고 여전히 소리는 음... 이미 앞서 몰아닥친 주문에 바쁜 직원이 결정하시면 알려주세요라 말한 채 커피 그라인더로 미끄러져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음... 하다가, 카푸치노를 주문하는 게 아니었다. 다 마시고 뛰어 내려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게 아니었다.


카푸치노를 주문하는 게 아니었다. 다 마시고 뛰어 내려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게 아니었다.


난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잔다.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은 상관없다. 그냥 플라시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못 잔다. 진짜 못 잔다. 그래서 안 마신다. 녹차도 안 마시고, 홍차도 안 마신다. 무슨 차인지 모른 채 받아 들어도 입술보다 빠른 코가 그 차에 카페인이 들었는지 아닌지 알려준다. 홀로 불뚝 튀어나와 있는 카페인을 난 언제나 잘 찾아낸다. 그 어디에 섞여있어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강렬하면서도 또렷한. 카페인은 분명 본인만의 향기가 있다.


대학 시절, 오만 카페에서 일을 했을 때만 해도 난 하루에 대여섯 샷의 커피를 마셨다. 내가 일했던 카페의 커피 머신들은 대체로 항상 두 샷씩 나왔다. 그러다 보니 한잔, 혹은 홀수 잔의 커피를 만들고 나면 한 샷씩 남았다. 금방 다른 주문이 들어올까 봐 남겨두면, 노랗고 부드러운 크레마가 사라졌다. 그 언니가, 처음 일했던 카페 사장님의 딸이, 유독 크레마에 집착해서 그럴 수도 있다. 크레마가 사라진 샷을 버리기 싫어 그냥 그대로 마셨다. 그러고도 잘 잤다. 그때는.


카페인은 분명 본인만의 향기가 있다.


카페에서 일을 하다 보니 카페 음료를 돈 주고 사 먹는 게 아까웠다. 특히 커피. 그렇게 돈 주고 커피를 안 사 먹다가 카페 알바를 그만뒀고, 커피를 안 마시게 됐다. 하지만 커피는 너무 맛있었다. 성인이 되면서 가장 좋았던 점 중에 하나가 바로 즐길 수 있는 음료의 종류가 늘었다는 거였는데, 커피랑 술 때문이다.


커피 빈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는 다들 알 거다. 난 그 첫 카페의 그 언니, 그 카페 사장님의 딸, 때문에 커피에 흥미가 생겼다. 그 언니도 갑자기 엄마가 연 카페 일을 돕느라 본의 아니게 막 커피를 배운 참이었다. 그래서 한잔 한잔 만들 때마다 종알종알 본인도 안 지 얼마 안 된 커피를 알려주었다. 그 이야기들이 재밌었다. 그래서 커피 맛 구별하는 원데이 클래스를 들었고, 블루베리를 먹으며 프루티 한 게 어떤 건지, 호두를 먹으며 드라이한 게 어떤 건지, 와인 맛 구분하는 거랑 똑같다는 커피 맛 구분하기를 혀에 쥐 나도록 해보았다. 그때 당시엔 잘 모르겠었는데, 덕분에 지금 맥주 맛 하나는 기깔나게 구분한다.


덕분에 지금 맥주 맛 하나는 기깔나게 구분한다.


갑자기 뜬금없지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자꾸 감겨서 화면이고 자판이고 손끝으로만 짐작하게 했던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어떻게든 한번 자보려고 침대에 누워있을 때만 해도 지끈거리던 머리도 가벼워졌다. 이번 주말에는 꼭 소설을 써보겠다 굳게 다짐했는데, 오전에 마신 커피 두 잔에 화장실 들락날락하느라 인상 쓰고 소파에 앉아 TV만 봤다. 그런데 갑자기 쌩쌩해지다니... 뭘까... 진작 타자를 두들겼어야 하는 건가.


예전에 알쓸신잡에서 한 과학자분이 말씀하신 것 같은데, 커피나 담배는 순간적으로 뇌의 어디를 자극해서 지독히도 안 돌아가던 뇌를 화르륵 불태워 준단다. 근데 커피랑 담배로 뇌의 그 어디를 자꾸 자극하면 어느샌가 커피랑 담배 없이는 뇌가 잠깐 타닥이지도 못하게 된다고. 화르륵은 진작에 끝났고 잔잔하게 타닥거리는 것도 못한다고. 분명 오늘 난 오랜만에 마신 거였는데, 우르르 쾅쾅 우당탕탕, 왜 화르륵이 아니라 우르르 쾅쾅 인가 싶었는데, 아 너무 오랜만에 마셔서 살짝 화르륵하려던 게 걷잡을 수 없이 커진건가? 이제 좀 폭풍 설사로 카페인이 배출돼서 화르륵 정도로 가라앉은 건가? 아니다. 이딴 문장을 쓰고 있는 거 보니 별로 지금도 화르륵은 아닌 듯하다.


커피는 너무 맛있거든.


암튼 오전에 마신 커피 두 잔에 젓가락 쥔 손이 부들거렸고, 속은 울렁거려서, 만 천 원이나 주고 시킨 쌈밥을 얼마 먹지도 못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마스크 때문인지 울렁거림은 더 심해졌고, 팔다리는 계속 미세하게 부들거렸다. 이젠 진짜 커피 그만 마셔야겠다고 중얼거렸는데, 아마 다시 몇 달 뒤에 또 커피 마실 거다. 왜냐면 커피는 너무 맛있거든.


다음날 할 일 없는 게 명확한 그 어느 날, 누군가 카페에서 만나자고 하면, 난 분명 전날부터 하루 종일, 무슨 커피 마실지 고민할 거다. 오늘도 사실은(이미 글 쓰는 동안 어제가 되어버렸지만) 아인슈페너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그 카페에 아인슈페너가 없었다. 다음부턴 마시고 싶은 커피 있는 카페로 가야지. 어쩌다 한번 마시는 커피 맛없으면 짜증 나니까 커피 맛있기로 유명한 카페. 근데 내가 마시고 싶은 커피도 있는 그런 카페. 그런데 가야지. 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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