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Sep 11.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47-신암행어사 리뷰13 춘향.기원

춘향은 짐승과 인간 사이의 교량?


일곱 개의 봉인 (또는 “그렇다”와 “아멘”의 노래) 379p

 1 2 3 4 5

1.

내가 예언자이고 그리하여 두 바다 사이에 놓여 있는 높은 산등성 위를 떠도는,

후텁지근한 저지대와 지친 나머지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태세를 하고 있다면, 그렇다! 라고 시인하고 그렇다! 라고 웃어주는 번개를 잉태한 채, 예언자적 번갯불을 내려칠 태세를 하고 있다면.

이같이 배불러 있는 자에게 복이 있으라! 그리고 진정, 언젠가 미래의 불을 밝혀야 할 자는 오랫동안 무거운 폭풍우가 되어 산위에 걸쳐 있어야 하리라!

오, 나 어찌 영원을, 반지 가운데서 혼인반지를, 저 회귀의 반지를 탐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내 아이들을 낳아줄 만한 여인을 나 이제껏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여인 말고는.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2.

일찍이 나의 분노가 무덤들을 파헤치고 경계석들을 옮기고 낡은 서판들을 부숴 가파른 나락으로 굴려 떨어뜨렸더라면,

일찍이 나의 경멸어린 웃음이 곰팡이 낀 고루한 말들을 불어 날려 보내고, 나 빗자루가 되어 십자거미들에게 다가갔다면, 그리고 말끔히 쓸어내는 바람이 되어 낡고 음습한 묘혈들을 찾아들었다면,

내 일찍이 옛 신들이 묻혀 있는 곳, 세계를 중상한 옛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를 곁에 두고는 세계를 축복하고, 사랑하며, 기뻐 어쩔 줄 몰라하며 앉아 있었다면.

부서진 지붕 사이로 하늘이 티없는 눈길로 내려다보기만 해도 나 교회와 신의 무덤까지도 마른에 들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풀과 빨간 양귀비가 그리하듯이 부서진 교회에 즐겨 앉는다.

오, 나 어찌 영원을, 반지 가운데서 혼인반지를,저 회귀의 반지를 탐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내 아이들을 낳아줄 만한 여인을 나 이제껏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여인 말고는.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3.

일찍이 창조의 힘을 지닌 숨결로부터, 그리고 아직도 우연이라는 것들을 강제하여 별의 윤무를 추도록 하는 저 천상의 곤궁으로부터 한 줄기 숨결이 내게 다가왔다면,

나 일찍이, 행위의 긴 뇌성이 투덜투덜하면서도 고분고분 뒤따르고 있는, 저 창조의 힘을 지닌 번개의 웃음으로 일찍이 웃어보았다면,

나 일찍이 이 대지, 신들의 탁자에 앉아 대지가 요동치고 터져 불길을 토하도록 신들과 주사위놀이를 벌여보았다면,

이 대지가 신들의 탁자이고, 창조의 힘을 지닌 새로운 말과 신들의 주사위놀이로 인해 떨고 있기 때문이다.

오, 나 어찌 영원을, 반지 가운데서 혼인반지를, 저 회귀의 반지를 탐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내 아이들을 낳아줄 만한 여인을 나 이제껏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여인 말고는.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4.

나 일찍이 온갖 것이 잘 섞여 있는, 거품이 일고 있는 저 향신료 항아리, 저 혼합물 항아리에 들어 있는 것을 마음껏 마셔보았다면,

내 손에 일찍이 더없이 먼 것을 더이 가까운 것에, 불을 정신에, 즐거움을 고뇌에, 더없이 고약한 것을 더없이 좋은 것에 쏟아부어주었다면,

나 자신이 혼합물 항아리 속에 있는 온갖 사물들로 하여금 잘 섞이도록 하는, 저 구원의 힘을 지닌 한 알의 소금이라도 된다면.

선과 악을 결합하는 소금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없이 악한 것이라 해도 향신료가 될 가치가 있고 마지막 거품을 넘쳐흐르게 할 가치는 있기 때문이다.

오, 나 어찌 영원을, 반지 가운데서 혼인반지를, 저 회귀의 반지를 탐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내 아이들을 낳아줄 만한 여인을 나 이제껏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여인 말고는.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5.

내가 바다에게, 그리고 바다와 같은 성질의 것 모두에게 호의를 품고 있다면, 어느 때보다도 그것들이 노기를 띠고 내게 덤벼들 때 더 없는 호의를 품고 있다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돛을 올리도록 하는 저 탐색의 즐거움이 내 안에 있고, 뱃사람의 즐거움이 내 즐거움 안에 있다면,

일찍이 너무 기쁜 나머지 나 환성을 질러보았다면. “해안이 사라졌구나. 마지막 사슬이 내게서 떨어져나갔구나.

무한한 것이 내 주위에서 물결치고 있으며 저 멀리 공간과 시간이 반짝이고 있구나. 자! 오라! 노회한 마음이여!“하고

오, 나 어찌 영원을, 반지 가운데서 혼인반지를, 저 회귀의 반지를 탐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내 아이들을 낳아줄 만한 여인을 나 이제껏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여인 말고는.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









인류가 지금처럼 진보하게 된 위대한 발명 중 하나로 인류학자들은 화식, 즉 불을 사용하는 요리의 발명을 꼽는다. 날 것을 그대로 먹는 방식보다 불에 익혀서 먹는 화식으로 인해 인류는 위생적으로도 기생충이나 감염 등으로부터 안전해지고, 한명만 불을 피워서 요리하면 다른 수십명이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 노동의 효율도 급격히 상승시킬수 있었다고. 이런 장점에 더해서 니체라면 아마 화식, 요리의 발명으로 인해 우리는 취향이 더 세분화되고 까다로워졌다고 높이 평가할 듯하다.


그런데 이번 일곱개의 봉인 4번 절에서 니체는 요리의 취향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중 하나인 향신료들을 혼합하고 한번에 들이마시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니체가 취향들의 잡탕을 만들고자 한다거나, 더없이 고약힌 것을 더없이 좋은 것에 분별없이 섞어버리고자 요리에 분탕질을 치는 것일까? 당연히 그럴리는 없을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오히려 모든 향신료들을 결합하는 소금이고자 한다. 그리고 선과 악마저도 결합시키는 더없이 강한 위장을 가진 존재가,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위버멘쉬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는 3절의 신들과의 주사위놀이, 우연의 창조적 힘으로 대지를 탁자삼아 신들과 도박하는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을 보았다. 어쩌면 요리도 그런 우연의 창조적 힘에 기대하는 도박적 요소가 있지 않은가? 재료들과 향신료들 각각의 맛과 향이 있지만 이것들이 한데 섞이면 무슨 맛이 나올지는 사실 아무도 미리 예측하기 힘들다. 그래서 현대의 요리사들은 화학도 공부하고 분자요리 등도 개발하지만 결국 인간의 까다로운 혀를 만족시키는건 우연적이다. 요리는 결코 수학 공식이 아니니까. 이런 우연의 창조적인 힘에 기대어 우리는 새로운 요리를 만들듯이, 선과 악의 힘을 자신이라는 소금으로 결합하면 또 다른 창조성을 가질 것이라 니체는 기대하는 게 아닐까.



신암행어사의 춘향은 어쩌면 바로 이런 선과 악이 결합된, 짐승과 인간 그 사이에 있는 우연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춘향은 대체 어떤 존재인지 인간인지 짐승인지 작품 본편 내내 완전히 해명되지는 않는데, 외전 1편에서는 이 춘향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가 풀어낸다. 수의사인 몽룡은 어느날 사막을 지나다가 거대한 용 같은 존재가 하늘에서 왠 사람을 떨어뜨리는 것을 목격한다.




처음에 몽룡은 당연히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만 동물과도 말이 통하는 능력자인 몽룡은 자기의 낙타와도 대화해도 이것이 꿈이 아니란 것을 직감하고, 인간의 말과 예절을 가르치며 마치 짐승같은 춘향에게 점차 인간의 예절을 가르쳐 나간다.


니체는 일전에 인간이란 짐승에서 위버멘쉬로 건너가는 밧줄 또는 교량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춘향이 이렇게 짐승같이 밥을 먹다가 인간의 언어와 예절을 배워나가는 모습을 보며 춘향은 짐승과 인간 사이에 있는 존재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춘향은 아지태에겐 강력한 동물로, 문수에겐 산도, 인간 춘향으로 각자가 보고자 하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 것은 아닐까.



물론 그럼에도 춘향은 인간인지 동물인지 의혹은 아직 깔끔히 풀렸다고 보긴 힘들다. 그럭저럭 춘향과 잘 지내고 빨래도 가르쳐 준 몽룡은 어느 날 급하게 동물이 위장이 부었다는 말에 춘향이 혼자서 사막으로 갔다는 소식에도 수의사로서의 본분을 우선시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전혀 몰랐던,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줄만 알았던 춘향의 본능이 깨어난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46-신암행어사 리뷰12 주사위철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