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Sep 12.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48-신암행어사 리뷰14 춘향의 춤

춘향의 아름다운 춤, 그리고 아지태의 품으로


일곱 개의 봉인 (또는 “그렇다”와 “아멘”의 노래) 379p

 1 2 3 4 5 6

1.

내가 예언자이고 그리하여 두 바다 사이에 놓여 있는 높은 산등성 위를 떠도는,

후텁지근한 저지대와 지친 나머지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태세를 하고 있다면, 그렇다! 라고 시인하고 그렇다! 라고 웃어주는 번개를 잉태한 채, 예언자적 번갯불을 내려칠 태세를 하고 있다면.

이같이 배불러 있는 자에게 복이 있으라! 그리고 진정, 언젠가 미래의 불을 밝혀야 할 자는 오랫동안 무거운 폭풍우가 되어 산위에 걸쳐 있어야 하리라!

오, 나 어찌 영원을, 반지 가운데서 혼인반지를, 저 회귀의 반지를 탐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내 아이들을 낳아줄 만한 여인을 나 이제껏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여인 말고는.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2.

일찍이 나의 분노가 무덤들을 파헤치고 경계석들을 옮기고 낡은 서판들을 부숴 가파른 나락으로 굴려 떨어뜨렸더라면,

일찍이 나의 경멸어린 웃음이 곰팡이 낀 고루한 말들을 불어 날려 보내고, 나 빗자루가 되어 십자거미들에게 다가갔다면, 그리고 말끔히 쓸어내는 바람이 되어 낡고 음습한 묘혈들을 찾아들었다면,

내 일찍이 옛 신들이 묻혀 있는 곳, 세계를 중상한 옛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를 곁에 두고는 세계를 축복하고, 사랑하며, 기뻐 어쩔 줄 몰라하며 앉아 있었다면.

부서진 지붕 사이로 하늘이 티없는 눈길로 내려다보기만 해도 나 교회와 신의 무덤까지도 마른에 들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풀과 빨간 양귀비가 그리하듯이 부서진 교회에 즐겨 앉는다.

오, 나 어찌 영원을, 반지 가운데서 혼인반지를,저 회귀의 반지를 탐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내 아이들을 낳아줄 만한 여인을 나 이제껏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여인 말고는.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3.

일찍이 창조의 힘을 지닌 숨결로부터, 그리고 아직도 우연이라는 것들을 강제하여 별의 윤무를 추도록 하는 저 천상의 곤궁으로부터 한 줄기 숨결이 내게 다가왔다면,

나 일찍이, 행위의 긴 뇌성이 투덜투덜하면서도 고분고분 뒤따르고 있는, 저 창조의 힘을 지닌 번개의 웃음으로 일찍이 웃어보았다면,

나 일찍이 이 대지, 신들의 탁자에 앉아 대지가 요동치고 터져 불길을 토하도록 신들과 주사위놀이를 벌여보았다면,

이 대지가 신들의 탁자이고, 창조의 힘을 지닌 새로운 말과 신들의 주사위놀이로 인해 떨고 있기 때문이다.

오, 나 어찌 영원을, 반지 가운데서 혼인반지를, 저 회귀의 반지를 탐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내 아이들을 낳아줄 만한 여인을 나 이제껏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여인 말고는.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4.

나 일찍이 온갖 것이 잘 섞여 있는, 거품이 일고 있는 저 향신료 항아리, 저 혼합물 항아리에 들어 있는 것을 마음껏 마셔보았다면,

내 손에 일찍이 더없이 먼 것을 더업이 가까운 것에, 불을 정신에, 즐거움을 고뇌에, 더없이 고약한 것을 더없이 좋은 것에 쏟아부어주었다면,

나 자신이 혼합물 항아리 속에 있는 온갖 사물들로 하여금 잘 섞이도록 하는, 저 구원의 힘을 지닌 한 알의 소금이라도 된다면.

선과 악을 결합하는 소금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없이 악한 것이라 해도 향신료가 될 가치가 있고 마지막 거품을 넘쳐흐르게 할 가치는 있기 때문이다.

오, 나 어찌 영원을, 반지 가운데서 혼인반지를, 저 회귀의 반지를 탐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내 아이들을 낳아줄 만한 여인을 나 이제껏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여인 말고는.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5.

내가 바다에게, 그리고 바다와 같은 성질의 것 모두에게 호의를 품고 있다면, 어느 때보다도 그것들이 노기를 띠고 내게 덤벼들 때 더 없는 호의를 품고 있다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돛을 올리도록 하는 저 탐색의 즐거움이 내 안에 있고, 뱃사람의 즐거움이 내 즐거움 안에 있다면,

일찍이 너무 기쁜 나머지 나 환성을 질러보았다면. “해안이 사라졌구나. 마지막 사슬이 내게서 떨어져나갔구나.

무한한 것이 내 주위에서 물결치고 있으며 저 멀리 공간과 시간이 반짝이고 있구나. 자! 오라! 노회한 마음이여!“하고

오, 나 어찌 영원을, 반지 가운데서 혼인반지를, 저 회귀의 반지를 탐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내 아이들을 낳아줄 만한 여인을 나 이제껏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여인 말고는.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6.

나의 덕이 춤추는 자의 덕이라면, 그리하여 나 자주 두 발로 황금과 에메랄드의 황홀경 속으로 뛰어들어 가보았다면,

나의 악의가 웃음을 머금은 악의이고, 장미의 언덕과 백합의 울타리를 제 집으로 하고 있다면.

웃음 속에 온갖 악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지만 악은 그 자체의 복으로 말미암아 성인의 반열에 올라 죄 사함을 받기 때문이다.

무거운 것 모두가 가볍게 되고, 신체 모두가 춤추는 자가 되며, 정신 모두가 새가 되는 것, 그것이 내게 알파이자 오메가라면. 진정. 그것이야말로 내게는 알파이자 오메가렷다!

오, 나 어찌 영원을, 반지 가운데서 혼인반지를, 저 회귀의 반지를 탐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내 아이들을 낳아줄 만한 여인을 나 이제껏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여인 말고는.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



 






/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자. 자신이 발붙이던 육지를 벗어나 해안선을 넘어 바다라는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공포와 만나는 자는 고대나 지금이나 아름답다고 칭송받는다. 배 조선 기술의 발전과 항해술의 진보로 천년 전에 비하면 원양항해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해졌지만, 그래도 바다는 여전히 인간이 배같은 도구없이는 순식간에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공간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차라투스트라는 5절에서 이 바다의 위험과 매력을 찬양한다. 일전에도 말한 것처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니까. 미지의 세계를 향한 기대감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기쁨이지 않은가. 마침내 육지를 완전히 떠나 해안선을 벗어났다면, 나를 안전하게 붙잡아두지만 또한 날아오르지 못하게 만드는 중력의 령으로부터 멀어졌다면 영원의 시간 속에서 즐겁게 무한의 춤을 추는 것도 가능해지리라


그리고 이 춤추는 자의 즐거운 황홀감은 니체가 6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황금과 에메랄드에 비견되며, 즐거운 마음으로 인해 모든 무거운 것들을 춤출듯 가볍게 만든다. 니체의 악의는 그 안에 악조차도 웃음을 품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울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웃기 위해 태어났다고. 웃음이야말로 설사 그 안에 사악한 의도를 내포할지라도 얼마든지 사죄받을 수 있는, 그 자체가 복이 아니겠냐고. 이런 복으로 새처럼 춤추며 날아오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알파이자 오메가, 처음이자 끝이라고 차라투스트라는 노래부르며 춤춘다. 이제 일곱개의 봉인도 다음 절이면 마지막이다. 어쩌면 니체의 이 많은 철학들은 단 한마디로 요약 가능할지도 모른다.


같이 춤춰볼까

쉘 위 댄스?




그리고 누구보다 화려하고 가볍게 춤추듯 가벼운 신암행어사의 캐릭터로는 당연히 춘향이 첫번째일 것이다. 처음엔 말도 못하고 짐승처럼 개의 사료를 먹는 춘향이었지만 그녀는 인간의 언어와 예절을 배우고 그네타기같은 인간의 유희도 배워간다. 그리고 겉으로는 너무나 갸냘퍼 보이던 그녀는 어느날 자기가 놓친 빨래를 찾아 위험하니까 절대 혼자 가면 안된다고 몽룡이 경고한 사막을 혼자 건넌다. 그 와중에 위험한 악수들을 만나는데 놀랍게도 춘향은 놀라운 전투능력으로 혼자서 검 한자루로 그 악수무리를 박살내버린다.




허나 이 춘향의 엄청난 전투력이 소문나자 지역 영주는 그녀를 6개월이나 걸려 강제로 붙잡아서 최면술까지 걸어서 자기의 호위무사로 쓰려했고, 몽룡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수의사를 그만두고 암행어사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났다. 하지만 그새 쥬신은 나라가 붕괴되어 몽룡은 암행어사는 커녕 과거시험 자체를 볼수가 없었다. 허탈해진 몽룡은 돌아오다가 우연히 암행어사 문수와 만났지만 악수 슬린져들에게 죽고 춘향에게 받은 유품 머리띠를 문수에게 남기게 된다... 그리고 문수는 부패하고 잔인한 영주를 벌하기 위해 몽룡의 얼굴로 꾸미고서 나타난다.




문수가 말하듯이 구원만은 바라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건 절망 뿐. 이제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치며 문수의 마패에서 나온 팬텀솔져들이 나와 영주의 병사들을 쓸어버린다. 그런데 쥬신의 특수부재였던 그들조차 최면술에 걸려 갑자기 등장한 의외의 투전사 춘향의 실력에 고전한다. 실로 전투라기보단 춤추는 듯 가볍고 빠르며 아름다우면서도 날카로운 춘향은 문수마저도 죽음 직전까지 내몰지만...



 문수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춘향은 사랑했던 옛 추억이 담긴 연인의 유품을 보고 말았다. 그리하여 눈동자에 초점이 없어지고 영주의 말만 따르던 최면술이 풀리고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던 사랑했던 몽룡에 대한 기쁨과 슬픔으로 가득 차오른다. 인간의 이 감정이야말로 살아있다는 그리고 살아가고 싶다는 가장 큰 원동력이고,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힘에의 의지 그 자체일 것이다... 춘향은 그걸 다시 떠올린다





그리하여 결국 문수는 망자 몽룡의 유품을 소중히 챙긴 덕에 살아남고, 영주는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처치된다. 이제 암행어사로서의 할 일을 다 마쳤으니 문수는 또 다른 도시로 떠나려 하지만, 춘향은 자기 이름은 산도라 하면서 자신이 문수를 지키겠다고 말한다... 마치 김춘수의 시 꽃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자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때부터 문수도 춘향을 산도로 부르게 된다.



그 뒤로 방자와도 만나고 이 3인방은 문수와 함께 많은 암행어사로서 정의를 집행하며 수많은 시련을 겪는다. 그러나 서로의 신뢰가 부족하고 손발이 맞지 않아 이 팀은 붕괴 직전까지 가게 되고, 자신의 부족함으로 몽룡을 잃은 것이 너무나 거대한 아픔으로 남은 산도 춘향은 또한번 자신의 약함으로 문수를 잃을수는 없다고 결심하여 잠시 문수의 곁을 떠나 자기단련의 길을 걷는다.


 허나 그게 오히려 악수였는지 문수는 김해에서 홍길동 일당과 싸우다가 정말로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된다. 그리고 이전에 춘향을 치료해준 적이 있는  아지태가 춘향 앞에 나타나 문수가 죽었다고 전해주고, 이런 거짓말을 간파하기엔 너무나 순수한, 짐승과 인간 사이의 존재인 춘향은 아지태의 말을 믿어버리고 삶의 의미가 없어지자, 이제 유일하게 세상에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인 아지태만은 끝까지 지키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다시는 자신같이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고통이 없는 세상을 만들수 있을지, 그러기 위해 자신은 더 강해질 수 있을지 번놔하면서...



그리고 만다라케의 꿈에서 깨어난 문수는 이제 다시 아지태와 싸우려 하고, 아지태의 수하가 된 춘향과도 적이 되어 싸워야만 한다. 독자들은 흔히 문수의 입장에서만 작품을 읽다보니 이를 춘향의 배신으로 해석하지만, 춘향의 입장에서 작품을 읽어본다면 결코 이를 단순히 배신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누구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면 다른 소중한 것이 없으면 삶을 지탱하기가 어려우니까. 춘향처럼 아직 짐승과 인간 사이에 있는 존재는 더욱 그러하니까.


그리고 문수는 과연 춘향을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

마법사 미토 영감의 말처럼 산도가 인간인지 아닌지 묻는 게 아니라 문수는 산도를 정말로 믿고 있는지 물어야 하는 게 아닐까?


계속...




작가의 이전글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47-신암행어사 리뷰13 춘향.기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