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게도, 벤야민과 덴마를 읽으며 폐허와 낙원 행복과 도피에 대한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난 또다시 도망가고 싶었다. 한때는 내 내면 밑바닥을 박박 긁어모아 드러낸 자작시로 한때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쓰담하는 것을 좋아해주고 나를 치유해주는 카페의 고양이에게로. 누군가는 실망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나의 못난 사진과 습작시에 조용히 라이킷을 눌러주기도 했다. 그리고 난 그 사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바다를 두 번 아니지 서해 을왕리까지 세 번 다녀왔다.그리고 동해의 일출을 보면서 다시 한번 써보기로 했다... 반복과 폐허와 낙원에 대해서.
태양의 일출은 분명 매일 반복되는 것이지만, 비틀어진 인간의 관점은 이 반복되는 일출 속에서도 새로운 구도를 매번 가져올 수 있는 무언가, 상수가 아닌 변수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 촬영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아무리 같은 것을 반복해서 찍어도 매번 새로운 사진이 나오는 이 현대기술의 총집체 스마트폰 카메라라도 해도, 결국 그 약간의 차이를 가져오는 프레임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래서 벤야민도 사진의 작은 역사 같은 에세이에서 사진 기술에 대한 작지 않은 희망감을 내비쳤으리라.
이제 본론인 덴마의 지로와 벤야민으로 돌아와보자. 여기 하나의 밑바닥이 있다. 마치 태양이 뜨고 지듯이 매일이 반복되지만, 아무도 안전한 오늘이라던가 더 나은 미래라는 것을 결코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제8우주 행성 모압의 한 슬럼가.여기에 사람이 있다. 여기에도 사람들이 산다. 고대 시절부터 존재 자체로 경멸받기도 하고 공포 또는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한, 벤야민의 사상을 이어받은 또 한명의 철학자 아감벤의 말을 빌리자면 호모 사케르Homo sacer, 저주받고 신성한 모순된 존재들이 사는 빈민가.
그리고 이 안에서도 최악의 쓰레기 취급을 받는 한 사람. 덴마의 제8우주 세계관에서 물리적 오류로 인해 공간 도약과 사물의 기억 읽기라는 희귀한 초능력을 가진 퀑이지만 그저 마약 중독자 약쟁이로 하루하루 연명할 뿐인, 쓰레기 퀑 지로가 슬럼가의 가장 밑바닥에서 숨쉬고 있다.이 지로에 대해서 수많은 관점의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겠지만, 일단은 현상학에서 말하는 에포케Epoke 판단중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저 지로의 삶을 찬찬히 그대로 들여다보기...
지로는 누구든 부러워할 만한 탐나는 재주를 가졌지만 그저 남의 도둑질에 이용될 뿐이다. 그리고 기껏 생긴 돈으로는 마약에 전재산을 탕진하며 자기 뿐만 아니라 자기 동생마저도 약물 중독에 빠뜨린, 가족에게마저도 경멸받아 마땅한 존재. 그는 이 세상에 어떠한 특별한 욕망도 없다. 그저 오늘 하루만 살아갈 뿐이다.오늘 하루 어떻게 약을 빨고서 누워있을까 하는 욕망만이.
물론 이것은 단순히 마약쟁이에게만 해당되는 욕망일리는 없을 것이다. 다들 고된 노동에서 해방된 건물주가 되기를 욕망하는 현대 한국인들은, 사실상 장래희망이 이렇게 홀로 쾌락만을 탐닉하는 마약쟁이가 자신도 잘 모르는, 숨겨진 욕망을 건물주라는 사회화된 형태로 표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로의 이런 쓰레기같은 행태를 보고 어떤 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경멸의 눈빛과 언행을 마다않을 것이고, 어떤 이는 섬뜩해하며 그저 멀리서 타인의 불행을 감상하리라. 물론 이것 외에도 이런 마약에 찌든 인간을 동정하거나 그저 웃음거리로 삼고 내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이 중 어떤 방식이든, 그 누구도 지로처럼 이렇게 자신이 그저 약물중독된 폐인으로 살아가길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로도 힘든 슬럼가 생활에서 그저 당장의 위안, 지금의 쾌락을 쫓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약쟁이가 되었을 뿐. 물론 오해하지는 말아달라. 이는 결코 지로에 대한 정당화가 아니라, 구조적 피해자라는 관점을 슬쩍 드러내고 싶었을 뿐이니.
어쩌면 벤야민이 베를린의 유년시절 에세이집에서 부모의 손을 잡고 선물사러 나간 크리스마스날 거리의 빈민층 아이들을 보며 느낀 거리감과는 좀 다르게, 우리는 그저 이 시대에 지로의 사례같은 타인의 불행을 충분한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그저 은근슬쩍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는 불행 포르노 또는 고통 포르노를 만끽중일지도 모른다. 지금 시대에 이런 행태가 가장 적나라한 곳은 유튜브와 인터넷 개인방송들이 아닐까.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벤야민이라면 그 안에 메시아적 중지의 시간을, 구원의 계기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이 가고싶고 닮고싶은 방향도 그러하리라.
범행을 저지르려다가도 약기운이 떨어지면 오로지 마약을 하기 위해 남의 신발도 핥고 불구덩이 속에 자신의 맨살도 집어넣는 쓰레기 약쟁이 지로. 더이상 돈없이 오면 거래를 끊겠다고, 약을 주지 않겠다고 거래상이 엄포를 놓자 지로는 급기야 몽둥이를 들고 막무가내로 폭력을 휘둘러서라도 마약을 손에 넣는다. 누구 맘대로 약을 끊냐고, 너희는 끊어도 나는 절대 못 끊는다고.
이를 보면서 수많은 충성독자인 덴경대들이 댓글에서 지각연재가 일상인 양영순을 향한 자신의 애증을 표현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다른 웹툰들은 다 11시에 칼같이 올라오는데도 그저 덴마가 자신에게 재미있다는 이유로 몇시에 올라오든 심지어 다음 날에 올라와도 그저 오매불망 기다리고 욕하면서도 반드시 양영순을 찾아왔던 이 덴경대 독자들. 그렇기에 이 연재글의 초반에 말했듯이 완결없는 완결네 대한 그들의 배신감은 더욱 무시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지각이 일상인 현실과 마약이라는 비정상이 정상처럼 굴러가는 가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반복되는 이 비현실적인 일상을 중지시키는 초월적인 무언가를 우리는 외부로부터 기대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 안에 이미 그런 초월적 힘이 잠재되어 있을까?
아마도 그 대답은... 후에 지로가 만나는 인생의 은인 중 하나인 주완의 말처럼 자신의 밑바닥에 정말 진심으로 물어봐야만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