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덴마-슬럼가 지로의 진흙탕과 벤야민의 산책2

밑바닥에서 나온 진심은 정말 진심일까? 어떻게?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잘 알려진 푸쉬킨의 시로 시작해보자. 세상엔 무서운 것들이 정말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공포스러운 것을 하나 꼽자면 자기 자신마저 속이 기만질이 아닐까. 러시아의 시인 푸쉬킨은 모든 사람들이, 세상이 날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허나 사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과업이다. 학창시절에 같이 사랑과 낭만을 추구했지만 친구의 자살에 절망하고, 박사논문을 인정받지 못해서 직업 연구자의 삶을 포기하고 우울 늪에 빠진 젊은 시절의 벤야민도, 그리고 마약에 중독되어 삶의 모든 희망, 꿈을 잃어버린 덴마의 지로도. 자기 자신을 믿기란 왜 이렇게나 어려울까.



이렇게 하류층 슬럼가 중에서도 밑바닥에서 범죄나 도우며 하루하루 인생을 낭비하고 있던 약쟁이 퀑 지로에게 퀑을 귀족에게 경호원으로 소개시켜준다는 주완이라는 퀑 딜러가 찾아왔다. 흔히 누구에게나 인생에 세 번은 온다는 큰 기회, 그렇게 말할만한 이런 행운이 자신을 찾아왔는데도 지로는 왠지 시큰둥하다. 이미 자기 자신이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최소한의 믿음을 상실한 채 단지 하루하루를 마약의 쾌락에만 의지하고 있으니까. 마치 한때 학업이건 사랑이건 다 접어버린 채 오로지 게임에만 몰두했던, 게임이 아니면 삶의 기쁨을 느끼질 못했던 폐인시절의 나를, 적지않은 숫자의 2030 남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지로의 태도. 이러면 보통의 장사꾼은 그저 오늘 운수나쁜 날이었군 하고 기대를 접지만 주완은 무슨 변덕인지 지로에게 좀 더 심층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수시로 멍청한 상사를 욕하고 태만한 동료를 욕하면서도 왜 결국 사회에서 일을 할까. 보통 뭔가를 열심히 해내는 사람들의 첫번째 동기는 돈이다. 화폐, 무엇으로든 교환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상품들의 왕. 맑스 할배의 사용가치 교환가치같은 어려운 용어가 아니더라도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있는 우리 모두는 몸으로 알고 있다. 삼성의 이재용이나 쿠팡의 알바생이나 똑같이 돈만 있으면 맥도날드 햄버거든 뉴욕의 아파트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마법이 화폐에 담겨 있다고. 화폐는 흔히 빈부격차와 차별을 만들어낸다고 원망받고 저주받기도 하지만 사실 화폐야말로 맑스 말처럼 모두에게 평등한, 타고난 수평주의자일지도 모를 일이다.


허나 사실은 이 돈의 마력 만으로는 적당히 돈을 벌고 먹고사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누구든 한 분야에서 초일류가 되려는 힘든 훈련과 고된 준비과정을 버텨내기는 힘들다. 돈 이외의 뚜렷한 자신의 소망. 그것이 없이는 결코 현재의 자기 자신을 바꿀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지로 뿐만이 아니라 새해에 뭔가 변하자는 소원을 빌었던 우리 모두는 자기 밑바닥에 물어봐야만 한다.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하냐고. 돈 외에 그럴만한 소망이 욕망이 나의 밑바닥에 진짜로 있냐고. 아마 박사 논문 통과가 좌절되어 안정적인 직업 연구자의 인생이 좌절되고 지식 낭인이 된 벤야민도 그런 쓰라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런 과정이 필요한 건 아닐까.




물론 지난 글에서 다뤘듯이 '현재'의 쓰레기 퀑 지로에게는 그런 마음 밑바닥의 소망은 딱히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중독증상에 시달리며 마약을 빠는 것만이 유일한 욕망일 뿐. 그 욕망 하나만을 위해 불구덩이에 던져진 마약을 자기 손을 태우면서라도 건져내기도 하 자기를 방해한 마약상을 온 힘을 다해서 응징해낸다. 이런 인간에겐 똑같이 슬럼가에서 사는 하류인생이라도 그 어떠한 믿음도 가질 수가 없을 수 밖에.


남을 포함해서 자기 자신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덴마의 작가 양영순은 지로를 그저 단순하고 평면적인 우둔한 약쟁이로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양작가의 만화가로서의 장기 중 하나는 현실 사회에 대한 시사적인 풍자인데, 금융으로 열심히 살려는 사람을 빚쟁이로 만들고 압류를 통해 가족마저 사회의 쓰레기로 만드는 과정에 대한 묘사도 실로 적나라하고 생생하다. 지로도 넓게보면 그러한 금융 시스템으로 인해 파생된 구조적 피해자 중에서도 자신의 특별한 퀑 능력때문에 오히려 더욱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린 사람 중 하나일뿐 아닐까. 정보화 사회가 되어서 비상한 지능을 가진 사람들은 불법 해커가 되듯이.



허나 이렇게 경기 침체로 부당하게 압류된 재산을 되찾으라는 정당한 법적 판결에도 지로는 어떠한 희망도 보지 못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자기 아버지의 부채로 인해 자기 삶이 크게 망가졌고 그 부채조차도 사실 누군가의 잘못이나 실수가 아닌, 그저 경제가 좋지 못해서 생길 수 있는 사업 실패 중 하나일 뿐이지만, 이미 삶이 망가진 지로는 그저 눈앞의 욕망만을 쫓으며 가족인 동생마저 마약으로 망가뜨릴 뿐이었다. 부르주아의 자식으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누렸지만 끝내 박사가 되지못하고 직업 연구자의 길로 가지못한 벤야민도 이렇게 현실에 좌절하고서 다른 길을 찾아 지식 낭인의 길을 가게 된 것이 아닐까.


허나 그럼에도 이 지로에게 택배로 배달된 콴의 냉장고 열쇠때문에 이제는 가족이 패왕이라는 우주 조직폭력배의 손에 노예로 팔릴 위기에 처하자, 그저 약쟁이일 뿐이었던 지로는 순간 각성해서 가족만은 지켜보고자 안간힘을 쓴다. 무고한 사람에게 폭력을 동원하고 자신에게 직업소개라는 은혜를 주려했던 퀑 딜러 주완을 협박해서라도 돈을 뜯어내서 최악의 위기상황을 막아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잔혹하고도 우울한 비극이 넘쳐나는 덴마의 제8우주에서 무슨 흔한 일본 소년만화처럼 파죽지세로 쭉쭉 이 엉킨 실타래들이 풀려나갈 리는 없다.



지로는 자신을 도우려 했던 은인을 협박해서 겨우 가족이 노예로 팔려나가는 최악 만은 막아냈다. 하지만 이전의 빚 때문에 지로의 여동생은 여전히 험한 곳에서 노예나 다름없는 대우와 폭력을 참아가면서 계속 일해야만 했고 지로와 남동생은 여전히 약이 없으면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하다. 이에 분노한 지로는 약을 끊고 제대로 고산의 백경대같은 귀족의 자경대 직장에 들어가려고 복지관에서 권투를 시작하지만... 지로를 보며 코웃음치고 비아냥대는 관장의 말처럼 얼마 못가서 또 약의 금단증상에 시달린다. 마치 새해에 새 결심으로 운동을 시작했다가 한달후에는 헬스클럽에 그림자도 비추지 않는 대다수의 우리들처럼...



작심삼일의 그 삼일. 개는 똥을 끊을 수가 없으니 개라고 불린다. 그런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을 늘어놓으며 주완은 그냥 지로에게 협박당해서 준 돈은 그냥 불우이웃돕기로 생각하겠다며 마지막 덕담을 말한다. 주변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 조용히 혼자서 약 빨다가 뒈져버리라고. 안타깝게도 주완이 이미 예전에 만나서 경고했던 것처럼, 자기 밑바닥에 돈 외의 절실한 진짜 소망이 없는 사람은 결코 현실을 자기 자신을 바꿀수가 없는 것이고, 지로는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서도 내심 나 정도면 그래도 노력했다고, 슬럼가 출신들은 다들 자기처럼 살아간다고 자기정당화하기에 바쁘다.


이런 쓰레기 약쟁이 지로도 정말로 바뀔 수 있을까.


그리고 나도 바뀔 수 있을까


혹시 반복되는 현재 또는 미래를 중단하는 힘은 벤야민이 말하는 것처럼 과거로부터 올 수 있을까


...


아니면 벤야민의 스승 중 하나인 스피노자의 말처럼


결국 욕망은 다른 욕망으로만 극복되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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