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덴마-슬럼가 지로의 진흙탕과 벤야민의 산책4

선을 넘어버린 쓰레기, 지로 나름의 구원 찾기.

때때로 우리는 누구나 살다가 보니까, 어쩌다보니 크고 작게 인간이 지켜야 할 인간의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 날도 있다.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공용 볼펜을 빌려쓰다가 돌려주길 까먹기도 하고 경찰이 안보이니까 무단횡단을 하기도 한다. 허나 그 와중에서도 절대 넘어서는 안될 인간의 선이 있고,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살인이다. 동서양 문화권을 불문하고 공동체에서 당장 쫓겨나거나, 사후세계가 있다면 지옥에 가도 변명하지 못할 큰 죄라고 여겨지는 살인. 이 선을 어쩌다보니 한 번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세 번이나 넘어버린 덴마의 지로는 누구든 정당화해주기 어려운 최악의 쓰레기임이 분명하다. 그러면 대체 이렇게 지옥이나 다름없는 삶의 구렁텅이에 빠진 쓰레기 약쟁이 지로는 누가 어떻게 구원해 줄 수 있을까?여기서는 잠시 정호승 시인의 밥값 시를 읽으며 구원에 대해 참조해볼 수 있을 듯하다.



지옥도 사람이 사는 곳일 거라는 소박한 믿음을 가지고서, 이 시에서 화자는 인간이 되기 위하여, 밥값을 하러 지옥에 다녀오겠다고 말한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다고. 한때 수백만 사회인의 마음을 움직여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밀리언 셀러가 된 웹툰 미생에 나오는 말처럼, 회사 즉 직장이 전쟁터라면 월급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은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 적이 있다. 그 말은 지금도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대다수 사회인들이 공감하는, 이른바 보편적 정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생일날에 가족이 마련해준 케잌을 걷어차며 돈을 벌러 다시 범죄들로 가득한 지옥 속으로 들어가려는 지로의 마음도 이 시인의, 현재 한국의 사회인들의 마음과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



사실 지로도 어찌보면 저 시처럼 밥값을 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정당화해 보자면 인간 노릇을 해보기 위해 슬럼가에서 태어나서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치다 보니 합법적이고 정당한 교육과 노동의 기회조차 없이 주변 사람을 따라 구조적으로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져든 게 아닐까. 어쩌면 최근 미국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흑인들의 분노와 폭력 사태도 이와 그리 멀리 떨어진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지옥같은, 살기위해선 범죄가 강요되는 슬럼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른 기회를 찾다가 퀑에겐 악마, 지옥 그 자체인 전사체로 가득한 콴의 냉장고 속을 헤매게 된 것이리라. 그리고 그 안에서 과거의 기록과 기억을 더듬 지로는 생각지도 못하게 의외의 보물들을 찾게 된다. 마치 벤야민이 유년기 베를린의 기억을 산책하고 더듬거리다가 새로운 발상의 단초를 수집하듯이.



바로 이 냉장고 안에서 지로는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을 예전의 압류딱지들을 살펴보다가 자신의 천적 전사체로 가득찬 이 지옥같은 콴의 냉장고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은 것이다. 게다가 최상급 마약을 비롯해 온갖 물건이 산처럼, 행성을 사버릴 수도 있을만큼 무한정에 가깝게 쌓여서 썩지도 않는 이 냉장고 안을 맘대로 출입할 수 있는 열쇠가 지로에게 있으니 사실상 지로의 돈 걱정은 끝났다고 보아도? 물론 이 사태가 고난 끝에 기적처럼 보답을 받았다는 소년만화나 어린이 동화처럼 그리 간단히 해결될리는 없다. 이렇게 진동하는 돈 냄새를 이리 승냥이같은 범죄조직들이 그냥 내버려 둘리가 없으니까. 이와 관련해 김진영 선생님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기로 하자.


-자본주의 생산체제는 가속도의 체제입니다. 얼마나 빠르게 상품을 상품을 생산해 낼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됩니다. 자본주의를 상징할 만한 것이 바로 그러한 속도에서 유래되는 유행, 즉 모드Mode 입니다. 유행은 상품을 속도와 얼마나 잘 맞추느냐에 따라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유행은 근본적으로 순간의 영역이라 볼 수 있는데, 벤야민은 유행이 가진 속성을 불임Impotenz 으로 보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새로운 것이 계속해서 만들어지지만 그 새로운 것들은 무엇인가를 죽여 버립니다. ...

상품은 단순히 내가 쓰는 물건의 사용가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상품을 버리게 되면 그것은 결국 나도 상품과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옛날 할머니들을 보면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장롱을 들여다보면 수십년 쓴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고집인데, 그 고집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고집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면서도 진리를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삶을 분석하고 의미화하며 현재의 문제와 만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지적인 작업입니다. 그것은 문화비평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우리가 해야 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작업입니다.
-희망은 미래에서 온다. 김진영 벤야민 강의록 79-80p


자본주의와 유행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흔히 거론되는 상품은 주로 패션이다. 이번 여름에는 복고풍 원피스가 유행이다 라는 식으로 끝없이 언론과 광고에서 매년 매번 새롭게 떠들어대고, 유행의 소비가 끝나면 놀랍도록 순식간에 최신유행이었던 옷은 버려진다. 그래서 흔히 말하듯 옷장에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은 늘 없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패션의 유행과 마찬가지로 마약 또한 굉장히 순간적으로 소비되어 쾌락을 극대화하고, 중독되면 지로가 다른 사람의 한 달치 마약을 일주일만에 써버리듯이 더 더 더욱 많은 자극과 쾌락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유행에 지배되는, 매우 민감한 상품 중 하나일 것이다. 또한 마약은 인간에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생산력을 뺏아버리고 오로지 마약에만 의존하고 안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불임이라는 벤야민이 분석한 유행의 속성에 소름끼치게 들어맞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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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마약이 가득 쌓인 콴의 냉장고 안에는 압류딱지나 실패한 사업가인 지로 아버지의 유품 같은 전혀 상품가치가 없는 물품 또한 가득 쌓여있었다. 김진영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이는 하나의 고집이다. 더이상 돈이 되는 교환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식품처럼 먹을 수 있는 사용가치가 있는 것도 아닌, 아무 가치가 없는 물품을 우리는 종종 버리지 못하고 계속 보관해둔다. 그리고 지로 아버지의 그러한 고집 덕분에 아들 지로는 지옥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부여잡기 위해 발버둥치게 된다. 바로 그런 고집을 해석하고 의미를 다시 부여하고 과거를 현재화하는 일이야 말로 문화비평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다시 덴마의 지로의 시점으로 돌아와보면, 이렇게 돈 냄새를 맡고 몰려든 자칭 패왕과 태왕을 비롯한 조직폭력배들이 지로와 냉장고열쇠를 사이에 두고 갈등과 전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갈등 국면에서 지로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안전이다. 살인조차 세 번이나 저지른 쓰레기 약쟁이지만 그 와중에도 자기 가족만은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이 신비한 마인드는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는 이런 한국인 특유의 신념을 '내새끼주의' 라고 명명하며 작년 조국사태를 기점으로 좌 우 모두 다를바 없이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원래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게 되니 또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하자. 여튼 지로는 결국 태왕과 패왕이라는 고래 등 사이에서 새우처럼 얻어터지다가 결국 아에 죄수처럼 붙잡히게 되고, 패왕의 경호대 중 한명과 같이 수감되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 경호대의 기억을 읽어보다가 실로 놀라운 퀑 경호인의 연봉에 대해서 알게 된다.


심지어 이 패왕의 경호대 연봉보다 몇배 이상을 더 받는 고산 공작의 백경대 이야기까지 듣게 되며,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단 한가지의 인간의 마음만이 남아 있던 지로는 급격히 새로운 희망의 불꽃을 쏘아올리기 시작한다. 자기가 노력해서 지금까지처럼 범죄가 아닌 합법적인 그 연봉만 받는다면 더이상 엄마가 아픈 무릎으로 고된 일 나가지 않아도 되고, 둘째도 약 때문에 누워 있지 않아도 되고, 막내 여동생도 술집에서 진상 손님에게 맞으면서 접대하는 험한 일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붙잡혀 있던 패왕의 경호대는 지로에게 계속 발길질 당하기 싫어서 지로 너도 갱생이 가능하다고 이런저런 사탕발림을 해주다가, 자신을 구하러 동료가 오자마자 곧바로 지로 너같은 약쟁이는 절대 갱생이 불가능하다고. 그냥 자위나 하다가 죽어버리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하지만 지로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어떻게 하면 자신도 그런 고연봉을 받는 경호대가 될 수 있을지 이미 머리가 팽팽 돌고 있는 듯하다. 이런 급격한 사고전환, 소위 행복회로를 불태우는 지로에게 정말로 반전의 계기가 찾아올까? 지로는 전투 퀑 트레이닝이라는 지옥의 훈련을 받아가며 자신의 밥값을 다할 수 있는, 벤야민의 언어를 빌려서 말해보자면 끝없이 반복되는 현재의 악몽을 끝내는 메시아적 중지의 지금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러자면 대체 어떤 대단한 타인의 도움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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