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덴마-슬럼가 지로의 진흙탕과 벤야민의 산책5

내 발목을 붙잡는 수많은 것들 중 진짜는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넘어진다는 것은 분명 내가 걷고 있었다는 증거다. 그렇기에 수백 수천년 전부터 수많은 인류의 고전을 비롯하여 21세기의 자기계발서에서도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인간이라면 도전하고 또 도전하라고 가르친다. 허나 걸을 때마다 넘어지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일이 반복된다면 누구나 걷는다는 그 당연한 일 자체가 상상만으로도 두려워지지 않던가. 심리학에서는 이를 학습된 무기력 같은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진흙탕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뭐가 필요할까,


아마도 저번 글에서 처럼 공포스런 빚쟁이 탈출이든 소중한 가족이라는 희망이든 뭔가 필사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기 위한 동기부여도 필요할 것이고, 과거의 자신이 정말로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철저한 현실인식과 반성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우리는 이문재 시인님의 시를 참조해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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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이문재



나, 죄 조금 짓고

많이 뉘우치며 살 줄 알았다.


밤새도록 번개칠 때

엘리베이터가 공중에서 멈출 때

분만실 앞에서 서성거릴 때

비행기가 뒤늦게 이륙할 때

생년월일시를 댈 때


땅에서 넘어진 자는

넘어진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지 않고서는

일어설 수 없다


나, 죄 조금 짓고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살았다.


나, 죄에 걸려 넘어지고서도

그 죄를 온몸에 묻히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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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내내 살펴보고 있는 덴마의 지로를 비롯한 슬럼가 인생이 바로 이 시처럼 살아오지 않았을까. 살면서 죄는 조금 짓고 많이 뉘우치고 반성하며 모범적으로 살줄 알았지만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살았고, 죄에 걸려 넘어지고서도 이 진흙같은 죄를 온몸에 묻히기를 거부하려고만 하고 반성과 책임은 회피했던 인생, 단지 남의 이야기일 수는 없는 바로 나를 비롯한 당신 인생의 이야기. 지로는 이런 절망적인 무기력의 상태에 익숙해진 인간의 전형이 아닐까. 진창에서 나오려고 하면 더 깊숙히 빠져버리는.


콴의 냉장고 안에 있는 엄청난 가치의 마약. 그리고 그 냉장고의 열쇠를 쥐고 있던 지로는 패왕과 태왕이라는 엄청난 조직된 폭력 앞에서 너무나 무력했다. 그저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안전마저도 지키기 어려울 만큼. 그나마 운이 좋게 패왕이 자신에게 관심을 끄면서 살아남나 싶더니 지로에게 모욕당한 패왕의 경호대는 복수하고픈 마음으로 자신을 아무것도 없는 지옥같은 사막 행성에 버려둔다.


너같은 약쟁이는 숨쉬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민폐이니 만인의 평안을 위해 이곳에서 조용히 생을 마무리하라고. 철학자 벤담이나 영화 어벤저스 1 2편의 아이언맨 같이 지금 시대에도 흔한 고전적 공리주의자의 태도로 본다면 이런 방식이야말로 모두를 위해 최대의 효율적인 편익을 보장하는 방식일지도. 물론 희생당하는 지로 본인에게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이지만.



그렇지만 고민해보니 살아있어봐야 이래저래 남들에게 민폐. 스스로 생각해도 여기서 죽는게 가장 합리적인, 모두에게 이로운 삶의 길이라 다짐하고 자포자기한 지로. 이제 이런 지옥에서도 유일하게 자신과 함께하는 캐미컬 브라더 마약과 함께 생을 마감하려는데, 만드라고라 에피소드에서 수도원에서 멀리 도피한 수녀님이 그랬던 것처럼 무언가 시선이 느껴진다. 사막의 모래가 갑자기 사람같은 형상을 취하더니 지로를 지긋이 바라보기 시작한다. 게다가 왠지 모르게 지로는 이 모래인형을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고 심지어 뭔가 친숙한 느낌을 받는다...



이 무슨 모래동상같은 존재는 지로에게 작은 목소리로 올라오라고 말을 건다. 어쩌면 여기서부터는 이미 약을 마신 지로의 환각일지도 모른다. 모래인형이 말한대로 올라가려다가 오히려 사막에선 흔한 재난 중 하나인 사구에 빠져서 밑으로 빨려들어가는 지로. 내 힘으론 벗어날 수가 없으니 제발 나 좀 도와달라고 처절히 외치지만 이 사람이 없는 사막행성에 그걸 들어줄 사람이 있을리는 없다.


이는 마치 벤야민이 모스크바에 간 것 처럼 외국어를 못하면서 외국으로 떠난 여행객을 떠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분명히 인간의 시선이 느껴지고 자기에게 말을 거는 듯 하기도 하지만 외국인인 나는 그 말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저 상황과 맥락을 봐서 뉘앙스를 추측할 뿐.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을 멈추지 못한다. 외로움이라는 괴물 앞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개죽음당하기 딱 쉬운 사구에서 지로는 갑자기 죽기 전에 원없이 한번 마약을 빨아보고 싶다는 마지막 욕망을 불태우며, 모래에 몸의 표면적을 최대한 늘려서 기어가는 나름의 지혜를 발휘하며 이 모래지옥에서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어쩌면 이는 지로가 인생에서 최초로 남의 도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힘과 머리로 욕망을 성취한 최초의, 또는 인생에서 정말 오랜만의 성공 사례일지도 모른다. 이 재난과 극복의 첫 원인은 패왕의 경호대에게 괜히 발길질을 하고 모욕을 주다가 지로가 일종의 처벌을 받은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지로는 결국 자기의 힘으로 무기력에서 벗어나 자기의 욕망을 지켜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고서 욕망대로 원없이 한번에 다량의 마약을 빨고서 잠든 지로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몽환 속을 헤맨다. 절벽에서 겨우 한 손만으로 버티고 있는데 자신의 가족을 팔아넘긴 슬럼가의 악당 규오를 비롯한 평소에 자신이 짐으로 생각하던, 자기 발목을 붙잡는다고 생각하던 어머니 남동생 막내여동생이 차례로 나타나서 자기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려 한다. 허나 그 허상들이 깨지고 마지막에 나타난 것은 바로...



자기 발목을 붙잡은 것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바로 현실적인 노력을 포기하고 약쟁이가 된 과거의 자기 자신이었을 뿐이다. 허나 지로는 그 진짜 현실적 원인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성찰해본 적도 없고 반성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그저 괴로운 과거에 대해 잊고 싶고 생각하기도 싫어서 매일매일 마약을 통해 즉각적인 쾌락의 세계로 도피하기만 했을 뿐. 나같은 현대인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심심찮게 가상으로 도피하듯이.


아마 딱 이런 지점에 대해서 19세기의 독일 사상가이자 경제학자인 맑스marx 할배를 떠올려본다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유명한 구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로는 종교가 없기에 실제 마약에 몰입했을 뿐, 현실의 이 지옥같은 고단함을 버티지 못해서 우리들은 21세기인 지금도 부동산 불패신화라던가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던가 언젠가 로또 한방으로 건물주가 된다는 허망한 미래를 제시하는 유사종교의 망령들에 시달리지 않던가. 이런 메시아적인 미래가 아닌 진정한 희망을 과거로부터 기억하고 회상하는 방식을 우리는 벤야민을 경유해서 지로를 통해 배워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마약의 환각에 시달리던 지로에게 의외의 행운이, 또는 악운이 또 찾아온다. 자신을 이 사막행성에 버려운 패왕의 경호원이 자기 스승인 공자, 이름부터 도덕군자를 떠올리게 하는 스승의 명령 때문에 선행을 하기 위해서 자신을 다시 구하러 온 것이다. 허나 정말로 죽기 직전으로 몰리다가 다시 구사일생한 지로는 집에 도착했지만 이미 악당 규오가 자기 가족들을 전부 노예 계약으로 팔아버린 것을 알고 분노한다. 하다못해 자신을 살해혐의로 찾고 있을 경찰에 자신을 체포해도 좋으니 자기 가족을 제발 좀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연락해보지만...



당연히 이미 온갖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경찰이 살인 용의자인 지로의 말을 굳이 제대로 들어주고 움직일 리가 없다. 오히려 계약금의 100배를 내고서라도 그들을 다시 빼오는게 현실적이라는 비아냥에 가까운 형사의 조언을 듣는 지로. 그런데 역으로 이미 온갖 전과로 은행 계좌조차 압수당한 지로에게는 또다시 은행을 터는 범죄를 저지르다가 붙잡히느니, 고산의 백경대같은 조직에 들어가 고액 연봉을 받는게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합법적 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물론 지로가 여태껏 한번도 가보지 않은 그 정당하고 합법적인 고액 연봉자의 길이 그렇게 순탄할 리는 없다. 그나마 아는 유일한 퀑 트레이너인 주완을 다시 찾아가려다가 자신이 냉장고 앞에서 다투다가 죽인 퀑 딜러와 만난 지로는 붙잡히고, 퀑을 잡아다 파는 사보이 퀑에게 자기가 팔릴 것이라는 기가 찬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정말 흔히 말하는 행운은 없지만 악운에 강한 지로인건지, 그마저도 착착 진행되지는 않는다. 이마저도 마치 무슨 신이 일종의 예정조화설처럼 지로에게 예비해 놓은 것마냥.


그렇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미 마약으로 온몸이 망가진 지로는 사보이에게조차 팔리질 않는다. 이에 지로는 자신을 백경대 같은 곳에 보내달라고,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요청하자 이에 퀑 딜러는 지로를 군수업체에다가 실험용 모르모트로 직접 팔아버리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럴려면 당연히 실험용 쥐도 건강해야 하듯이 지금 지로의 몸에 쌓인 피로와 마약들을 빼내야만 가능할텐데, 과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지로는 정말로 과거의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아니 과거의 자신을 제대로 볼 수는 있을까? 그 더러운 진흙투성이의 오물덩어리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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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 예고...



벤야민이 자신의 역사이론에 '신학'의 요소를 끌어들인 이유는 이처럼 지나간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그 안에서 현재의 극복을 위한 의미들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이 점은 호르크하이머와의 논쟁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1937년 3월 16일 벤야민에게 보낸 편지에서 호르크하이머는 과거가 종결되지 않았다는 사고방식은 관념론적이라면서, 지나간 부정의는 이미 발생한 것이고 종결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며 벤야민은 역사는 단지 과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회상의 형식"이기도 하다고 쓴다. 회상Eingedenken이란 단어는 벤야민이 만들어 낸 것으로, 그는 '-를 잊지 않고 기억하다'라는 의미의 eingedenk 라는 형용사를 어간으로, 어떠한 사람이나 대상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ein 그것을 기억/추모한다gedenken는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한다. 그에게 역사란 단지 발생한 사실을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과학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을 기억하며, 그곳에서 벌어진 불의의 수난으로 희생된 자들을 추모하는 것이다.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한상원 저 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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