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덴마-슬럼가 지로의 진흙탕과 벤야민의 산책6

마약이라는 뼈아픈 후회는 더 큰 마약으로 극복을?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정말이지 지로는 징그러울 정도로 구르고 또 굴러떨어진다. 마약으로 자기 몸을 망친 것도 모자라 범죄에 연루되어 자기 가족들이 전부 다 악당에 의해 노예계약으로 팔려나가고, 직간접적으로 살인을 세 번이나 저지른 후에는 자신을 실험용 모르모트로 팔아넘기려는 퀑 딜러에게 잡힌다. 그는 지로를 백경대로 만들어준다고 속이면서 지로 몸의 마약기운을 빼내기 위해 온몸을 혹사시키는 훈련을 시키지만, 당연히 마약중독자가 그 힘든 고액연봉자의 훈련스케줄을 제대로 소화해낼 리가 있을까?



결국 지로는 마약의 금단증상을 이기지 못하고 약을 달라며 자신을 감시하는 장비를 부수다가, 퀑 딜러에게마저 도저히 상품도 사람도 될 수 없다는 판단하에 버려진다. 어딘지도 모르는 쓰레기장에서 다시 눈을 뜬 지로는 그저 온몸을 덮치는 추위와 허기에 몸을 떨다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진 검은 봉지를 뒤져서 허겁지겁 해치운다. 정말로 벤야민은 이런 쓰레기장 속에서 인간쓰레기로 취급받는 비천한 자들이, 미래로 도약할 수 있는 과거의 유산을 산책하다가 수집해내고 재구성해서 상속받을 수 있다고 보았을까. 지로도...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몰래 음식물 쓰레기를 집어먹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사람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받은 지로.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지로를 바로 약쟁이라고 알아채는 전직 약쟁이였다. 덴마 작중에서 마약에 한 번 빠지면 끝장이라고 여러 번 강조되었는데 그러면 이 멀쩡해보이는 전직 약쟁이는 어떻게 된 걸까?묘한 마법을 부리거나 아니면 극한의 자기계발로 인간승리를 이룬 산 증인일까?



그 해답은 생각보다 담백한 맛이었다. 마약 자체를 끊는다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약은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약마저 참을 수 있을 만한 마약보다 더 마약같은, 사랑과 같은 큰 기쁨에 온몸을 던지는 것에 가까우리라. '욕망은 더 큰 욕망으로만 극복된다.' 스피노자와 그의 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에티카의 이런 구절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으리라. 어쩌면 스피노자를 읽은 벤야민도 그렇지 않을까.



물론 이 전직 약쟁이는 자신의 애인에게서 마약보다 큰 기쁨을 받기에 그 관계에 의존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허나 사실 그런 불안이 없이 사는 사람은, 정확히 말해서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 중 그렇게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오롯이 홀로 독립적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면 지로는? 과연 약보다 큰 기쁨을 누릴만한 애인같은 무언가가 지로에게도 있는가?그리고 지금 시대를 힘겹게 살고 있는 나같은 수많은 반백수에게는?




냉장고를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챙겨놨던 잡동사니에서 지로는 자신의 퀑 능력으로 과거의 기억을 읽어낸다. 그 기억에는 바로 지로가 외면하고 있었던 가족들이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에 대한 사소하지만 소중한 과거가 담겨있었다. 뼈아픈, 너무나도 뼈아픈 후회들이 지로의 모세혈관 하나하나에 파고든다. 이런 후회에 대해선 한국 문학계 최고의 전문가인 황지우 시인의 시 자연스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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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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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처럼 후회의 폐허속을 떠다니는 지로. 그래도 지로는 어떻게든 약쟁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직 약쟁이에게 도움을 청해본다. 물론 그마저도 쉽지 않고 조건이 붙지만...






바로 하루 한 끼는 먹여줄테니 자신보다 비참한, 팔다리 자체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라는 것. 정말 불편하고 다들 인정하기 싫은 진실이지만 인간은 자기보다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을 만나는 지점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널려있는 온갖 비참한 풍경들을 멀리하고 싶으면서도 또 자신의 삶이 너무 힘겹다고 느껴질때는 그 타인의 비참을 찾아다니고 적극적으로 동정하고 소비하기도 한다. 고통 포르노 또는 가난 포르노라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우리 마음의 내면에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 자체는 과연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타인의 과거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또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지로도 자신보다 비참한 사람을 보러 벤야민처럼 거리를 산책하다가 한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게 된다.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귀에 담아듣지 않을수가 없는 그런 뼈아픈 이야기.



이 노숙자들의 언쟁에서 지로 뿐만이 아니라 대다수 독자들은 의문의 팩트폭행을 당한다. 60억 인구중에 대체 왜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기에 자기가 노숙자가 되어버렸다는 푸념. 그리고 그를 반박하며 키도 작고 못생기고 시끄럽고 냄새나고 게으른 주제에 욕심만 많다는 팩트라는 이름의 폭력. 과연 너는 너같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좋아할 수 있겠냐는 반문. 그래서인지 이 에피소드의 베스트 댓글도 우울해지고 혼란스러운 독자들로 넘쳐난다. 절대로 남의 이야기 노숙자의 변명으로만 넘길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하나의 댓글이 의외의 지점을 찌른다. 바로 노숙자와는 달리 지로에게는 자신이 동생마저 망치는 쓰레기 약쟁이가 되었어도 어머니가 자신을 감싸고 생일 축하를 해주었다는 그 기억. 아무리 밑바닥 인간쓰레기가 되었어도 어머니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었다는 잊을 수 없는 그 과거. 허나 이렇게 정신을 좀 차리려는 찰나에 지로는 또 몸의 습관대로 딱 한 대만, 마지막으로 한 대만 마약을 빨기 위해 물 한잔을 얻어마시려 하고...



당연히 흔해빠진 클리세처럼 지로는 이 수상한 노숙자들에게 배신당하고 모든 물건을 털리고 모욕당한다. 그리고 노숙자들 마저도 알고 있다. 이 마약에 이 바닥없는 쾌락에 한번 손대면 그걸로 끝이라고. 지겨움. 지로든 독자든 정말이지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이 지겹고 뼈아픈 후회들. 허나 이 과거에 대한 후회들은 결코 이미 종결되거나 완성된 것이 아닐 것이다. 벤야민에게든 지로에게든 그리고 우리에게도. 벤야민에 대한 해설서를 쓴 한상원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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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이 자신의 역사이론에 '신학'의 요소를 끌어들인 이유는 이처럼 지나간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그 안에서 현재의 극복을 위한 의미들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이 점은 호르크하이머와의 논쟁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1937년 3월 16일 벤야민에게 보낸 편지에서 호르크하이머는 과거가 종결되지 않았다는 사고방식은 관념론적이라면서, 지나간 부정의는 이미 발생한 것이고 종결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며 벤야민은 역사는 단지 과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회상의 형식"이기도 하다고 쓴다. 회상Eingedenken이란 단어는 벤야민이 만들어 낸 것으로, 그는 '-를 잊지 않고 기억하다'라는 의미의 eingedenk 라는 형용사를 어간으로, 어떠한 사람이나 대상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ein 그것을 기억/추모한다gedenken는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한다. 그에게 역사란 단지 발생한 사실을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과학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을 기억하며, 그곳에서 벌어진 불의의 수난으로 희생된 자들을 추모하는 것이다.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24p. 한상원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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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벤야민과 한상원의 시각으로 해석해본다면, 과거에 지로의 잘못으로 인해 가족은 희생당했지만 그것은 결코 단지 지나갔거나 종결된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그 과거를 기억하고 추모함으로써 진정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을 동력을 얻는 것이다. 단순히 과거는 잊고 미래를 위해 현재에만 집중하자는, 지금 시대에 흔한 자기계발서의 마술같은 문구는 허망할 뿐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온 존재인지 알지 못한다면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없고, 어디로 가야 할 지도 절대 알 수 없다는 수천년 전의 메시지를 벤야민은 20세기에 맞게 다시 말해준 게 아닐까. 이 약간의 디테일 차이와 반복이 세계를 바꾸는 동력이.






겨우 살아나서 전직 약쟁이에게 다시 찾아간 지로. 이미 죽은거나 다름없는 차가운 바닥에 닿고서야 오히려 살아있다는 실감이 드는 지로는 등장하고서 처음으로 웃음을 보인다. 웃음은 실로 인간이 기쁜 감정을 표현하는 확실한 지표가 아니던가. 어쩌면 이제야 정말로 지로는 차가운 죽음이 아닌 기쁨의 삶이 시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전직 약쟁이가 먼저 겪어본 선배로서 충고하듯이 아직 몇번 더 바닥을 쳐야만 하겠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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