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이 이 지로의 나이트 에피소드 전체에서가장 중요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못 다한 이야기를 좀 더 이어보고싶다. 과거 약쟁이였다가 회개하여 봉사활동을 하는 한 캐릭터는 지로 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큰 조언을 남겨주었다.
마약같은 강력한 중독은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것이라고.
그것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자신의 여자친구 같이 약을 참을만한, 참아보고 싶어질 더 큰 기쁨을 주는 마음의 대상을 찾는 일이다. 이는 마치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결국 언젠가 다른 덕질의 대상을 찾아가게 된다는 서브컬쳐계의 격언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이유로 우리는 끝없이 연애와 사랑, 또는 그 구체적 표현이라 생각하는 성관계를 이상화하고 우상화하기도 한다.
왜냐고? 나는 어떠한 중독에도 빠지지 않은 건강한 사람이라도? 글쎄... 어떤 사람의 다른 글 제목처럼, 한국인 대부분은 노력 중독이다. 진짜 죽도록 공부하고 죽도록 운동하고 잠도 아껴서 죽도록 노동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한국인들. 그래서 이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사랑이든 섹스든 국뽕이든 아이돌이든 게임이든 미친듯이 몰입하고픈 건 아닐까.허나 21세기에 와선 또 그 노력을 배신하는, 노력 자체를 우습게 만드는 소비자본주의의 또다름 흐름 또한 하나의 거대한 욕망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연대 대나무숲에 올라왔다는 이 글처럼...
구 소련같은 공산주의 사회에선 굳이 사람들이 공산주의가 뭔지에 대해 감히 말하지 않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선 나같은 특이취향 삐딱이 반백수글쟁이, 옛말로 룸펜이 아니고서야 굳이 자본주의가 뭔지에 대해 고민하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광고로 수십억을 번다는 보람좌나 대도서관 같은 사람에 대해 뭐야 별 대단한 노력도 안 하는거 같은데 수십억을 번다니 굉장히 불공평해 뭔가 사기같아 라고 대중의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한다. 저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19세기의 맑스 할배는 자본론 책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노동과 상관없이 돈벌이를 하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허나 역설적으로 맑스가 지적한대로 그런 망상이 아니면, 그런 망상이 있어야만 자본주의의 금융 시스템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특히 부동산이나 주식은 장기적으로 반드시 상승한다는 그런 종교나 다름없는 기대심리가 아니면 절대 유지조차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것은 인정해야만, 자본주의에선 노력이 아니라 학벌같은 상징자본이든 외모같은 매력자본이든 자본이 있어야 큰 돈을 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투자해야만 현타가 오지 않고 큰 돈을 벌수 있으리라. 아니면 나처럼 현타가 와서 덴마에도 나온 것처럼 이렇게 색다른 인생을 사는 방법도 있다.
타인의 사랑과 미래에 대한 기대심리를 아에 접으면, 이 덴마의 노숙자처럼 사랑타령도 안 하고 성가시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신봉자인 유튜버도 아닌, 자본주의에서 미래를 접어버린 노숙자도 아닌 제 3의 길을 지로는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런 길을 만들 수 있을까. 중국의 대문호, 아큐정전과 광인일기로 유명한 소설가 루신은 자신의 또다른 단편소설 고향에서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이런 뉘앙스의 말을 남긴 바 있다.
'본래 길 이라는 것은 없었다. 사람이 여러 곳을 걸어다니다 보니 계속 걸어다니며 만들어진 흔적을 길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래서 지로는 이런 제 3의 길을 가기위해, 고액연봉을 받는 경호노동자 백경대가 되기 위해 막노동을 하면서 좀도둑질을 하고 동시에 체력단련도 소화하는 의외성을, 이런것도 인생의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길을 보여준다. 아마 사람이, 특히 지로같은 약쟁이가 무슨 고전소설이나 신화처럼 갑자기 개과천선하고 초인적이고 선한 노력을 할 수는 없다는 걸... 양작가는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니려나.
그리고 3년의 시간이 지나, 마침내 지로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퀑 딜러 주완을 찾아간다. 이전에 자신이 빌려간 3000 하고도 12만원을 들고서.
허나 그 3년 동안 제8우주의 퀑 시장은 불법 능력강화 시술과 딜러들의 수수료 인하 경쟁 등으로 급격히 요동치며 주완은 퀑 훈련과 장사를 접을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마치 공황 직전의 찬란한 호황을 뽐내는 자본주의 체제 속 주식 시장에서 현명한 투자자는 얼른 현금자산을 확보하고 주식에서 발을 빼듯이. 그런 와중에 3년만에 이목구비가 전혀 달라진 퀑이 3012만원을 들고 찾아왔으니, 퀑 한명에 수십억을 다루던 주완 입장에선 당연히 기억이 안 날 수밖에.
심통난 주완에게 돈을 갚고서 자신을 백경대로 보내달라는 이전 약쟁이 지로의 제안. 약쟁이였던 과거를 기억하는 주완은 그저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프로로서 그를 부드럽게 돌려보내기 위해 하나의 악마적인 내기를 제안한다. 과연 이 내기에 지로는 제대로 응답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한번 약쟁이는 그저 약쟁이일 뿐이라는 현실을 반복하게 될까?
벤야민이 말한 것처럼 악몽같은 현재의 반복을 중단시키는 메시아적 중지의 현재시간을 혹시 지로는 결국 찾아냈을까??우리도 혹시 그런 소중한 시간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제 몇 화 남지 않았다. 지로와 벤야민과의 이 긴 산책도 이번 달에는 완결로 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