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지 못하는 밤이 계속되고 낮에는 꿈을 상상하고 그려내기 어려운 긴 긴 장마의 여름. 사람을 만나기가 두렵고 나 자신이 하찮으면서도 무서워진다. 그래도 정말로 해야만 하는 일이 아직은 남아 있는가 아닐까 나 자신을 상상해보며 숨을 몰아쉬어본다. 어쩌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여전히 마음의 밑바닥에 남아 있는 듯하다. 나 자신을 때리는 듯한, 날 몰아부치고 질책하는 듯한 웹툰 덴마의 지로를 다시 들춰본다.
힘들게 주완의 퀑 훈련소에 입소했지만 퀑딜러 장사를 접을 생각인 주완은 그저 지로를 포함한 마지막 퀑 셋이 제발로 나가기를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일주일 안에는 나가겠지 다음주에는 나가겠지 했는데 결국 지로는 포기하지 않았고 나가지 않았다. 철학을 전공하고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독일에서 박사를 받으신 한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신 적이 있다. 어떻게 아직 많은 가능성이 남아있을 것 같은 20대에 독일 유학을 그렇게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었냐는 내 떨리는 질문에, 그 당시의 자신에겐 오로지 그 길 외엔 다른 것은 전혀 생각할수 없었다고. 그래서 떠났다고. 아마 지로도 그런 진짜 절박함이 있기에 마약의 매혹조차도 매일매일 가족을 떠올리게하는 별을 쓰다듬으며 또 다짐했던 게 아닐까.
백경대를 선발하는 일종의 천하제일 무술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몰라보게 커진 덩치에 스타일도 깔끔하게 가다듬은 지로. 그와 1년을 보낸 주완도 이젠 지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마치 축구의 감독같은 역할인 그는 무리하게 자신감을 불어넣거나 동기부여를 위해 가혹한 피드백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머리가 아니라 몸이 익혀온 대로 연습한 대로 차분하게 하면 된다고 말한다. 마치 수능이라는 인생의 큰 시련을 10대에 처음 맞이해서 긴장하는 대다수의 수험생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조언와 같지 않은가. 시험이란 굳이 억지로 평소의 120 150퍼센트를 초인같이 발휘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평소 쌓아온 것을 그대로 연습한만큼 딱 100퍼센트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시험장이다. 물론 평소에 아무것도 쌓지 않은 사람에겐 이 말만큼 잔인한 말이 없지만.그래서 나도 이번주도 작게나마 이 글을 쌓아보려 한다.
중간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고서 마약마저 뿌리치는 그 강렬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대회를 우승하고 백경대에 들어간 지로. 그리고 그는 고산 공작의 백경대과 블랙마켓의 패왕 경호대가 충돌하는 와중에 자기 가족들이 살아있다는 기억을 우연히 읽게 된다. 밑바닥의 바닥까지 떨어졌었던 지로를 유일하게 버티게 한 가족들과의 따뜻한 과거, 따스한 기억. 벤야민이 말한 희망의 불꽃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천사가 돌아보려는 과거. 이제 지로는 정말로 자신이 망쳐버린 과거 가족들을 현재의 자기 손으로 구하기까지 단 한 발자국 남았다.
그런데 패왕은 이 고산의 백경대와의 최후 결전을 위해 생각지도 못한 장소를 준비했다. 단순히 피지컬적인 퀑 화력 대결이 아닌, 그 아무리 강인한 인간이라도 약할 수밖에 없는 내면의 바닥에서... 자신의 과거 실수와 약점을 공격해오는 관념 퀑으로 이루어진 행성을 준비한 것이다. 누구나 무의식 속에는 타인은 알 수 없는 죄의식과 부채감정이 있다. 바로 그 지점을 공격해오는 관념 퀑이라는 처음 만나는 전투에 인간의 극한까지 단련한 백경대조차도 끝없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진다.
반대로 패왕의 경호대들은 다들 인공적으로 받은 강화시술이 이 관념 퀑 행성의 정신공격을 막아주기에 아무런 방해없이 백경대를 유린할 수 있었다. 축구나 다른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이듯 서로의 기량이 큰 차이가 없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전투에 임하는지가 승패를 가른다. 당연히 멘탈에서 이미 져버린 백경대가 이 전투를 이길 수 있을리가 없고 그들은 패왕의 경호대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며 갈려나가기에 이를 생중계로 보고있던 사람들도 이미 오 대 영으로 지는 경기는 재미없다고 눈길을 돌리려는 찰나...
정말 흔해빠진 연출이지만 흔해빠졌다는 말은 그만큼 고전적이고 대대로 효과가 입증되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미 시궁창의 바닥에서 이 멘탈 공격을 수없이 받아본 지로는 다들 절망하는 와중에서도 익숙하다는 듯 홀로 일어서서 걸어나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로가 이대로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면 그건 고전적인 연출이 아니라 진부한 노잼 스토리에 불과하리라. 이 바닥의 바닥까지 독자들도 지겨워할만큼 구른 이 지로조차도 아직도 무저갱이라는 마음의 바닥없는 바닥은 몰랐는지도...과거라는 이름의 판도라의 상자 바닥엔 분명히 희망이 있지만, 그 희망을 보기전엔 반드시 수많은 악덕들을 맞닥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