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한다. 또 기억해낸다.무언가 거창한 진짜 인생이니 역사의 분기점이니 하는 말이 아니라, 끝을 내야만 또 시작이 있으니까. 지로의 마음이나 벤야민의 마음이나 지금의 내 마음이나 이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리라. 고민하는 척하며 질질 끌었지만 결국 어떤 일이든 하지 않을 수 없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결단의 때가 온다. 지로처럼 자신의 과실로 자괴감의 바닥의 바닥까지 떨어지던가, 벤야민과 맑스처럼 고향을 떠나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며 힘겨운 삶의 가장자리로 내몰리던가.그런 가장자리의 바닥에서 지로처럼 초인적인 노력과 기적적인 기연으로 한번 다시 솟아올랐다고 하더라도, 자기 내면의 불안감은 결코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허나 스스로의 과오로 쓰레기 약쟁이 살인범이 된 지로에게도 단 하나의 해방구가 있었다. 그건 바로 외부의 구원이나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과거를 인정하고 화해하고 반성하는 길. 히말라야를 세르파 한명도 없이 오르는, 언제 어디서 크레바스 낭떠러지로 떨어질 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길이지만 바로 그래서 혼자 가야만 하는 길. 하지만 혼자 가다보면 또 자신같이 혼자서 험한 산을 오르는 길동무들을 마주치기도 하는 길.
자신처럼 과거에 자기 은인을 죽음에 내몬 고아원 원장은, 조용히 자숙하며 봉사활동에 평생을 바치다가 쓰레기통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던 지로와 마주쳐서 다른 건 몰라도 밥 한끼는 줄 수 있다며 손을 내밀었고.
과거 지로가 협박한 퀑 트레이너 주완은 퀑 시장의 급변으로 장사를 접으려는 찰나에, 약쟁이였던 자신을 다시한번 믿어주고 지로처럼 거리의 불량배로 일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던 퀑들의 훈련, 아니 퀑 갱생이라 불러도 될 사업을 다시 재개한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지로가 운이 좋아서, 인복이 많아서만은 아니다. 남들보다 마약을 서너배나 복용할 정도로 심각한 중독자였던 지로가 그 증세를 버텨내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과거 기억을 읽어내는 자기의 희귀한 퀑 능력을 마약이나 돈벌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 쓴 이 장면이리라. 가족과의 따뜻하고 희망찬 미래를 상징하고 끝없이 회상하게 해주는, 너무나 되돌리고 싶은 세계. 지로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그리고 이 지로의 기억 읽기 능력은 또한 단순히 과거를 읽어내는 것만이 아니라 어쩌면 잠재된 미래를 읽어내는 능력 또한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로가 정말로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 마지막으로 모든 마약을 자기 몸에 쏟아붓고 죽음만을 기다리던 사막 행성에서 본 하나의 환영. 과거에는 자기가 대체 무엇을 본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 체력과 정신력이 확연히 달라진 지로는 현 상황에 대해 감을 잡는다.
누구나 구원을 바란다. 이 지긋지긋한 일상, 벗어날 수 없는 고통과 압박이 없는 해방구, 낙원... 그래서 사람들은 한때 내세의 구원을 약속하는 종교에 의지하고 심취했고 21세기에는 그 대상이 과학기술로 포장된 현대자본주의,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달러, 화폐 그 자체가 되었다. 그래서 다들 돈이 많은 연예인을 선망하고 건물주를 숭상하고 수백만 구독자의 유튜버가 10대의 장래희망이 되었다. 심지어 어려운 타인을 구해주고 심각한 재앙을 극복하는 게 업인 슈퍼히어로도 20세기처럼 슈퍼맨이나 헐크같은 괴력의 초인이 아니라, 자본과 기술력으로 위기를 해결하는 배트맨 아이언맨이 21세기의 최고 인기 영웅으로 등극했고 사람들은 지구에 위기가 생겨도 그들이 '스크린 속에서라도' 메시아처럼 짜잔 나타나서 해결해주길 기대한다.
허나 이 와중에 지로는 말한다. 타인의 낙인으로 내가 스스로 쓰레기로 떨어지고 있을 때, 그래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 밑바닥 쓰레기 인생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타인의 구원을 너무나 열망할 때 바로 그 때, 내가 나를 도와야 한다고.
물론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외로운 길은 히말라야 산맥을 홀로 오르는 미친짓에 비견된다. 몸의 지옥과 마음의 지옥을 거쳐, 밑바닥에 떨어졌기에 느낄 수 있었던 아주 소소한 몸의 기쁨... 그리고 마음으로 내가 해냈다 라는 성취의 기쁨. 그 누구도 턱걸이 하나 가지고 칭찬해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인정하고 격려하고 칭찬해주기.
누구나 한때는 지로였다.
그리고 누구나 지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멀리 갈 것 없이 이 글도 그러하다. 그리고 수많은 덴마의 독자 분들도 그러할 것이다. 누구나 말하기 힘든 되돌리고픈 과거가 있다. 떠올리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울 만큼 아픈 기억이 있다. 그래서 타인의 외부의 도움과 구원을 자꾸만 바라게 된다. 물론 타인의 도움 자체는 반드시 필요 불가결하나, 결국엔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를 다독이고 나와 화해하고 나를 기쁘게 해주는 자신,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