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황인찬 시인의 의자라는 시를 읽으며 출발해보자. 우리는 여섯살 때나 더 나이를 먹은 지금에나 놀이를 좋아한다.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쉴러같은 사람이 말한 것처럼, 실로 '인간은 놀 때야말로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즐거울 때 뿐만이 아니라 내 과거의 아프고 어두운 상처와 흉터를 더듬을 때도 놀이라는 형식을 빌리기도 한다. 이 시의 병원놀이처럼, 사실 우리가 웹툰이나 영화를 보고 캐릭터나 상황에 감정이입을 하는 것도 크게 보면 하나의 놀이일 것이다.
허나 놀이의 형식을 빌렸음에도 우리는 실제로 자기 내면 속 슬픔의 바닥에 닿다 보면... 그 어두운 밑바닥을 진짜로 마주보기란 지극히 피곤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슬픔을 거부하거나 도피하거나 정당화한다. 친구를 잃고 박사학위를 거부당한 벤야민이 모스크바로 떠나고, 마약의 세계로 도피하고 심지어 씻을 수 없는 죄까지 범하게 되는 지로가 그러하듯이.
물론 이런 약쟁이 범죄자 지로조차도 그저 태어날 때부터 쓰레기는 아니었고, 한때는 동지들과 함께 법의 힘을 빌려서 악당 규오에 대항하려 했다. 허나 검찰에 악당을 고발했음에도 오히려 보복을 당하고 심지어 가족이 노예로 팔려나가기 직전까지 몰리자 지로와 지로의 어머니는 그저 자기 살 길만 찾는, 나와 같이 흔해빠진 나약한 보통 인간의 밑바닥을 그대로 보여주며 악당에게 동지를 팔아먹는다.
그러자 당연히 지로와 함께 악행을 고쳐보려던 한때의 동지들조차 지로를 버리게 된다. 은행을 도둑질하고 마약을 훔치는 데 쓰이던 지로의 퀑 기술은 범죄조직의 비밀문서나 장부를 빼내는 데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지만, 결국 현실의 엄청난 폭력 앞에 지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사회 정의를 위해서 같은 거창한 대의명분은 없었고 그저 규오같은 악당의 부하가 되기 싫었을 뿐인 지로는 이 이후로 모든 희망을 놓아버리고 약쟁이로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후 덴마가 콴의 냉장고 열쇠를 들고 지로를 찾아왔고, 혹시나 희망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지로는 냉장고 안을 산책하면서 자기 집안의 과거의 기억들을 더듬어 본다. 벤야민이 모스크바와 베를린을 산책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수집하고 알레고리로 재편집한 것처럼...
과거의 압류 딱지같은 쓸모없는 물건을 더듬으면서 기억 읽기라는 자신의 퀑 능력으로 냉장고에서 나가는 길을 찾아나가는 지로. 게다가 자신이 열쇠를 쥐고 있는 이 콴의 냉장고 안에는 마약부터 식료품까지 온갖 물건이 비유적 표현이지만 행성을 살 수도 있을 만큼 무한정으로 쌓여 있었다. 살아서 나가기만 한다면 가족의 부채를 갚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 물론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이 무한의 냉장고 안에는 희망같은 바람직하고 좋은 것들만 들어차 있지는 않았다.
바로 덴마의 제8우주에 물리적 오류를 일으키는 능력자인 퀑의 짝이자 천적, 악몽 그 자체인 전사체도 콴의 냉장고 안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냉장고는 백화점만큼이나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발명품으로 여겨진다. 모든 상품은 금괴 같은 비생명체가 아닌 이상, 특히 식품들은 유통기한이 존재한다. 더이상 소비할 수 없게 되는, 소비했다가는 오히려 해가 되는 시간의 제약이.
허나 냉장기술과 냉장고의 발명으로 우리는 그 유통기한의 제약을 비약적으로 뛰어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식품이 썩어서 버려야만 했던 인류에게 이는 분명 굉장한 축복이자 선물이었다. 허나 역으로 냉장고에 몇년씩 박아두고서 나중에 엄청난 폐기물 또는 곰팡이 배양기가 되어버린 악몽 또는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심지어 생각없이 이를 섭취하다가는 생명조차 위협할 수도 있다. 콴의 냉장고는 이런 현대 냉장고의 양면성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비유가 아닐까. 벤야민이 파리의 거대한 아케이드와 백화점을 산책하고서 이를 판타스마고리아, 자본주의의 환등상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양영순의 작중 아바타 중 하나인 지로도 콴의 냉장고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콴의 냉장고 안에서 자신처럼 출구라는 희망을 찾고 있던 이름도 모르는 치료가 가능한 퀑을 만난 지로. 허나 이 퀑의 짝궁 전사체가 자신을 위협하자 지로는 시험삼아 총을 쏘니 짝궁 전사체도 타격을 받는 것을 확인하고, 어쩔 수 없다는 자기정당화를 늘어놓으며 인간이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어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살인이라는 선을 한번 넘어서라도 냉장고에서 운좋게 살아서 나왔지만, 지로는 더더욱 수렁으로 빠져들어간다.
냉장고에서 겨우 살아나왔지만 그 안에 든 물건때문에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다시 열쇠 쟁탈전에 휘말리게 된 지로. 자신보다 훨씬 강한 하이퍼 퀑이 자기를 위협하며 죽고싶지 않으면 열쇠를 내놓으라며 협박하자 지로는 이제 과거의 살인을 떠올리며 또 한번 선을 넘어버린다.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치는 방법밖에 없다며 또다시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심지어 이렇게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도 지로는 콧수염 캐릭터의 총을 빈 탄창의 총으로 바꿔놓으며 사실상 간접적으로 죽음을 의도했다. 다른 치료능력과 기억읽기 능력을 가진 퀑이 지로의 기억을 읽어내면서 밝혀낸 것 처럼, 지로는 마약 중독으로 인해 자기연민 부정 공포 우울등의 감정에 완전히 짓눌려서 주변의 밝은 에너지마저 어둡게 물들여버리는, 양작가의 그림 묘사처럼 마치 걸어다니는 블랙홀로써 주변에 죽음을 내뿜는 상태...
이런 간접 살인과 직접 살인을 총 세번이나 저지른 쓰레기 지로는 냉장고라는 수렁 속에서 자기 집안의 과거의 기억을 뒤지면서 희망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이로서 지로는 콴의 냉장고 에피소드에서는 모습을 감추고 다음 에피 the knight 의 주인공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과연 이 쓰레기 퀑이자 슬럼가의 밑바닥 지로가 희망을 찾고 인생을 되돌린다는게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면 대체 어떤 동기가 필요할까... 벤야민을 해설한 김진영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희망은 과거에서 정말로 올 수 있을까?이런 최악의 걸어다니는 쓰레기에게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