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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ul 19. 2020

덴마 지로의 추억과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되돌리고픈 소중한 과거. 윤동주든 벤야민이든


 유서를 쓰다 말고 싶을 만큼 아픈 일주일이었다. 반백수라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주일 내내 하루도 일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게 더욱 나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했다. 적당한 노동은 사실 인간의 몸에 활력을 주고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는 걸 다시금 떠올렸다. 물론 도대체가 아프면 쉬는 그런 적당한 노동, 저녁이 있는 삶이란게 한국에서 가능한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일주일을 집에서 쉬니까 그래도 몸에서 활력이 좀 올라오는 듯하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여름 휴가를 보낸 셈이다. 어쩌면 정동진 동해를 가든 제주도 남해를 가든 을왕리 서해를 가든... 삼해를 다 다녀왔지만 그때 여행을 다녀온 것보다도 나는 역시 혼자서 이렇게 시간을 훅 흘려보내는편이 나를 위한 진정한 휴식이라는 걸, 또 인정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을 읽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 그리고 또 덴마를 읽었다. 덴마에 대해서 쓰고 싶은게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3년간 마약에서 벗어나기 위한 악전고투 끝에 모든 전투 퀑들의 꿈인 백경대에 지원하기 위해서 다시 퀑 딜러인 주완을 찾아온 지로. 하지만 주완은 퀑 딜러 사업을 접을까 고민하던 중이었고, 약을 끊었다는 지로를 보면서도 그다지 믿음을 가지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주완은 하나의 내기를 지로에게 제안한다. 일단 퀑 훈련소에 입소는 시켜주지만 매일매일 너는 마약의 유혹을 참아내야 한다고. 매일의 유혹을 단 하루라도 어기면 즉시 퇴소라는 계약서를 쓰고서 지로는 이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해보려 한다. 물론 주완은 사실 말은  내기라 하면서도 한번 약쟁이었던 지로는 내일이면 바로 알아서 약가지고 튀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의외로 주완의 예상과는 달리 지로는 하루동안 약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배고프니 밥을 챙겨달라 요청한다. 한번 약쟁이는 영원한 약쟁이일 뿐이라는 주완의 생각이 그저 편견에 불과했음을 찌르는, 가방안의 별을 만지면서 유혹을 참아내는 지로. 대체 그 엄청난 마약의 쾌락이라는 유혹을 어떻게 무엇 때문에 참을 수 있었던 걸까?이를 알아보기 위해 주완은 보안을 명목으로 지로의 소지품검사를 해보려 한다. 그리고...



 전에도 말한 스피노자의 말처럼, 욕망은 다른 욕망을 통해서만 극복된다.


 기억 읽기라는 퀑 능력을 가진 지로. 그는 3년 전에 자신의 이 초능력을 범죄 마약의 쾌락을 위해서만 썼지만 이제 그 능력을 다르게 사용하는 법을 마약에 저항하며 온몸으로 배워온 것이다. 지로가 만지면서 마음을 다진 신년 트리 장식. 누구나 아무리 비참한 상황이더라도 한번쯤 더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게 되는 그 과거의 시간을 기억하게끔 하는 그 물건. 심지어 지로는 자신의 기억읽기 능력으로 단순히 불확실한 과거에 대한 상상이 아닌 완전한 과거의 기억 그 자체를 회상해낼 수 있다. 모두가 건강하고 웃는 일이 많았던 그 과거. 모든것을 그때로 되돌리고픈 너무나 따뜻한 기억... 이쯤되면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떠올리는 시인이 한명 있으리라.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불행한 천재시인. 동주.



 어머니와, 가족과 떨어져서 식민지인 조국을 벗어나 제국 일본의 대학을 다니던 윤동주시인. 그도 너무나 따뜻했던, 돌아가고픈 과거를 간직했었고 그 때로 돌아갈 수는 없기에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시를 쓰는 일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겨울이 가고 이렇게 별 헤는 밤이 걷히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반드시 오고야 마는 그 날이 오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에도 풀이 무성한 여름이 올 거라고...


 그 엄혹하고 잔인한 식민지 시절의 속국출신의 나약한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도의 탄식이었으리라. 허나 그 윤동주의 탄식이 일본인들조차 감동시키고 21세기 한일 문화교류의 큰 가교가 되고 있다는 건 당시의 동주로서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이렇듯 따뜻했던, 돌아가고픈 행복한 과거의 기억은 인간에게 몇번이라도 다시 살아가게끔 만드는 엄청난 동력으로 작동한다. 일본 제국대학의 윤동주에게도 슬럼가의 지로에게도, 그리고 독일의 벤야민에게도. 우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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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트리의 선물상자가 터지면 온갖 물건들과 함께 가난도 흘러나왔다. 모조 금박을 입힌 사과와 견과류처럼 가난한 사람들 역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금속 줄과 울긋불긋한 양초를 들고 부자 동네에 나타났다. 내게는 크리스마스의 창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는 모든 것, 즉 고독 늙음 궁핍함을 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랍장은 내가 원하면 언제라도 열 수 있던 최초의 옷장이었다. 그 중 나를 유혹하며 모험을 약속한 것은 양말이었는데, 손을 가능한 깊숙이 양말 안에 집어넣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었다. 그리고 선물을 꺼낼 때 유희의 제 2부가 시작되었다. 선물을 끄집어냈지만 그것을 담았던 주머니는 더 이상 없었다. 형식과 내용, 껍질과 껍질에 싸인 것, 선물과 주머니는 동일한 것이라는 진실. 하나이면서 제3의 사물인 그것. ... 찬장 열쇠꾸러미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성스러운 질서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손짓하기 전의 혼돈이었다. 그것은 내게도 찬양과 함께 희생을 요구했다. 찬장은 신전이 있는 언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발터 벤야민 베를린의 유년시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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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풍족한 베를린의 유년시절을 보낸 벤야민. 하지만 그는 부모 손에 이끌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나온 상점가에서 화려한 상품들의 아케이드 뿐만이 아니라 구석진 곳에서 구걸하고 있는 가난한 아이들 또한 자신의 눈에 담아뒀다.


 그 어린 시절에 지나간 이 두 풍경을 아마 벤야민은 계속 회상하면서 자신이 힘겨운 가난 속에서도 계속 뭔가를 쓰게하는 동력으로 삼았던 게 아닐까. 이 글을 쓰는 나도 아무리 삶을 놓고싶은 불행이 쌍둥이 세둥이로 계속 내 몸의 문고리를 두들겨도 버텨내는건 무언가 과거에서 삶을 지속시키는 기억이라는 무한동력을 아직도 다 소진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마약이라는 삶을 말라비틀어지게하는 유혹에서 벗어난 존재. 어쩌면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 자기 존재의 한계를 극복한 존재에 가까워진 지로. 제8우주를 돌아다니며 수백 수천명의 퀑을 봐왔을 주완조차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하면서도 지로에 대해 믿음을 하루 더 가져보기로 한다. 이제 제대로 새 인생을 출발하게 된 지로. 그리고 이 퀑 훈련소 안에서 또 새로운 인연도 만나게 된다.



 8우주의 퀑 시장이 급격한 수요로 요동치고 다들 불법시술같은 리스크가 크지만 단기간에 강해지는 꼼수를 찾아다니는 와중에, 나름 지로의 선배라 볼 수 있는 우루사는 여전히 주완 밑에서 우직하게 그저 하루 하루 또 하루 지루한 훈련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지로는 또 한번의 가르침을 얻는다. 그리고 나도 다시 한번 오래된 고전가르침을 내 몸에 새긴다...


내가 뭘 더 해서 남보다 치고 나간 것이 아니라


그저 초심의 자신을 기억하고 반복하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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