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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Nov 15. 2020

쓰레기같은 지각 공자님 앞에서 고양이 발톱 세우기

바람이 불고 폭풍이 지나간 마음 한켠에서


주말엔 누구나 약속을 잡기 마련이다.


평일엔 다들 바쁘니까. 백수조차도.


모두 바쁜 서울에선 안 바빠도 바쁜 척 해야하니까.


간만에 독서 모임을 부활시켜서 모이려는 토욜 낮.



약속시간인 4시에 딱 맞춰서 도착하니 다행히 1등.


다들 10분 20분 정도씩 늦는다 뭐 그정도야.


네시 반쯤에 예정된 다섯명중 넷이 도착완료.


그런데 한명이 잠실에서 강남오는데 말이 없다...




넓고 넓은 강남에 비슷한 지점도 두개 있길래


혹시나 나처럼 길치일까봐 나처럼 헤맬까봐


지도 앱도 올려주고 사진까지 올리면서


다들 조심히 오세요 독서 모임장으로서 예의를...



1층 매장이 아니라 2층이라고 사진도 공유하고


먼저 모인 사람끼리 처음 온 사람도 있으니


하하호로 조금 어색해도 인사해보고 자기소개하고


조금씩 책 이야기를 펼쳐본다 자기 인생이라는 디저트를 곁들여서.



저번주엔 오랜만에 간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영화 기생충에 대한 고미숙의 비평 책을 읽었다


루쉰의 단편소설 광인일기를 나도 좋아하니까.


괴물 설국열차 봉자 기생충 봉준호의 영화 필모를 따라가며 루쉰과 같이 이야기 성찬을 즐겨본다




광인일기는 중국의 식인 풍습에 대해 다루며


사람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다가 미쳤다고 몰린


한 광인의 기록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아직 어딘가에 사람을 먹지 않은 아이가 있

그 아이를 구하라...'



어쩌면 21세기의 우리가 거리의 길냥이에게


밥을 챙겨주려는 마음도 루쉰과 비슷할 것이다.


서로 잡아먹으려고 찌들어버린 미친 세상이 아닌


뭔가 순수한 아이를 구해보고 싶다는 그 마음.



그런 조금 거창한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를 북돋고


인생과 청년세대와 주식에 대한 한탄도 나누며


이제 슬슬 모임을 마무리할까 싶은 두시간 반쯤


지난 찰나에. 드디어 그 처음 오는 지각생이 왔다. 잠실에서 강남으로 두시간 반 만에.



그런데 이렇게 늦어놓고 그냥 안녕하세요 하더니


마치 자기 빙수는 없냐는 듯 눈동자를 굴린다.


책은 요새 뭐 읽냐고 물으니 자기를 논어 읽는단다.


공자를 읽으면서 인의예지는 대체 어디로...? 그리고 두시간 넘게 늦어놓고 왜 벌써 끝냐나니... 그리고 우리는 뒷풀이 안하냐니 같이 맥주 한잔 하자고 통크게 제안하는 양심이라니 하... 세상에... 처음부터 그럴려고 오시는 그런 분인건가...



게다가 옷은 뭔가 부티나게 입고 오셨는데


나중에 다른분이 구찌라고 알려주셨다.


오호 통재라 구찌를 걸치고 논어를 읽으면서


두시간을 넘게 늦어도 사과를 모르는 그야말로 21세기의 천 하 무 적 성 인 군 자! 구 찌 공 자!



요새 비지니스님이니 플렉스님이니 조롱당하며


사익추구로 온갖 욕을 먹는 모 외국인이 떠오른다.


하 인간세상이란 참 어지럽고 피곤하다 정말.


종교인마저 저러는데 사바세상인이야 뭘 기대할까



ㅅㅂㅅㅂ 속으로 욕이 나오지만 그냥 삭여봤다.


오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기회에 또 뵈어요


쓰래기같은 인간이라서 논어 대체 뭘 읽었냐


고전의 어떤 구절이 맘에 드셨냐 멘탈공격을 하려다가 진흙탕에 빠지기 싫어서 패스해본다.



아마 그런 쓰레기닝겐을 만나도 참아낼 수 있는건


고양이 발톱을 세우기만 하고  긁어내진 않는 건


역시 나에게 작은 안식처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주말이 지나간다. 뻔하지만 모두 편안하기를.




Fin.



마지막으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해하는 나에게 친구가 추천해준 초겨울에 어울리는 인디 음악을 공유해봅니다.


https://youtu.be/7AxVqg7Qf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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