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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무렵 시 한잔15-백석 나타샤와 베르사유의 장미

소주 한 잔 땡기는 못 이룬 칼과 장미의 사랑 노래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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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을 하면 평상시엔 불가능해 보이던 기적이 일어난다는 클리셰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지금같은 여름철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처럼 가난한 시인 백석이 나타샤를 사랑하기에 눈이 푹푹 내린다. 사실은 가난한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는 다들 가난해지고 초라해지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자는 저토록 눈부시고 아름답게 빛나는데 나는 그에 비하면 늘 왜 이렇게 못나고 초라할까


물론 사실 백석 시인은 식민지출신이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꽤 유복한 집안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객관적 경제적 사정과는 상관없이 늘 모자르고 목마르다. 그리고 한반도의 지구 반대편 18세기말 프랑스의 왕비, 로코코의 퀸 베르사유의 장미 마리 앙트와네트도 그러하다





15살 아직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철없는 나이에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 프랑스로 와서 루이 16세와 정략결혼한 마리 앙트와네트. 그녀는 어린 나이에 프랑스어도 잘 모르는 채로 와서 그저 사랑이 없는 정략결혼 생활을 하다가, 스웨덴의 멋진 기사 페르젠 백작을 만나자 불타는 사랑의 감정에 눈을 떠버린다.





하지만 이미 왕비는 결혼한 몸이고 서로의 사회적 입장상 서로 사랑하는 눈빛을 주고받았음에도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멀리한다. 페르젠은 궁정의 그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대서양너머 미국의 독립전쟁에 참전을 갔다오고 4년 만에 돌아오지만... 그 4년만의 재회에도 이 둘의 금지된 사랑은 더더욱 타오를 뿐이다.





백석의 사랑하는 나타샤가 눈이 아무리 많이 내려도 아니 올 리 없다 믿으며 소주를 마시듯, 마리 앙트와네트도 그저 철없이 놀기 좋아하는 15세 소녀가 궁정생활을 억지로 억지로 버티며 술과 도박이나 무도회로 현실을 버텨내는 것은 단 하나의 믿음, 사랑하는 페르젠이 언젠가 자기에게로 돌아오리라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를 보다 못한 근위대장 오스칼이 나서지만...



물론 마리 앙트와네트도 이제 성인이 되었고 궁정과 파리에 자신과 페르젠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를 알아챈 그녀의 근위대장 오스칼이 죽음조차 각오한 충언을 앙트와네트에게 바치지만 그조차도 다시 사랑으로 불타는 마리 앙트와네트를 막을 수는 없다...


백석이 유학까지 다녀온 소위 있는 집 자식이지만 나타샤의 모델로 추정되는 기생 자야에 대한 마음을 거둘 수가 없듯이...


한겨울 함경도에서 차가운 소주를 마시든


한여름 베르사유에서 온후한 와인을 마시든


폭주하기 시작한 이 미친 심장의 노래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황혼 무렵에 시 한 잔...


Fin.





다음 한 잔 백석의 시 통영과 베르사유의 장미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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