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더운 여름의 제철음식은 뭘까 수박도 있고 빙수도 있겠지만 여름하면 역시 시원한 냉면이다. 하지만 재밌게도 원래 냉면은 겨울에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건 이젠 상식이 되었다.냉장고가 없었던 시절에 얼음을 이용한 음식을 만들려면 당연히 겨울의 날씨가 필요하니까.냉면을 비롯한 국수는 백 년 전 백석에게도 영혼을 달래주는 한 그릇이 아니었을까.
마을 전체를 구수한 즐거움이 은근하게 가득차게 하며 온다는 이것. 하룻밤 뽀오 하얀 김이 소기름불에서 국수 분틀을 통해 온다는 이것.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이 지붕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겨울밤에 아비는 왕사발에 아들은 새끼사발에 담기는 이것...
이 반갑고 부드럽고 슴슴한 맛,
겨울밤 동치미국과 산꿩의 고기와 수육을 삶는 내음새를 상상하며 백석의 시를 낭송하면 저절로 군침이 고인다. 지금 글을 쓰는 나는 7월의 여름이지만 백석의 시를 읽는 순간만큼은 이미 한겨울의 함박눈을 바라보며 함경도 누군가의 잔칫날에 초대받은 듯한 풍경이 그려진다. 바로 이렇게 백석처럼 제철의 감성을 제대로 살린 또 다른 예시는 허영만의 식객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도 널리 회자된 매생이 에피소드가 아닐까.
봉주가 운영하는 운암정에서 매생이국을 대접받은 주인공 성찬이 매생이에 손도 대지 않자 자존심에 상처받은 봉주는 이를 따진다. 그런데 성찬이 역정을 내며 심지어 매생이국은 그렇게 먹는 게 아니라며 훈수까지 두니 봉주는 그러면 대체 어떤 게 진짜 매생이냐고 네가 한번 보여주라고 하자 성찬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인다.
12월 전남 장흥에서 생굴에 매생이 참기름을 함께 비벼먹는다는 상상, 나는 한 번도 매생이국을 먹어본 적이 없음에도 식객 만화를 찬찬히 읽다 보면 마치 이미 진미를 한입 먹어본 듯 만화 속 인물들처럼 입안에 절로 침이 고인다.상상력이라는 조미료로 한껏 사람들의 위장을 들뜨게 만든 성찬은 이제 눈을 뜨고 식사를 시작해 보자는데...
이럴수가 그릇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사실 작중 계절은 지금처럼 여름이고 제철이 겨울인 매생이를 여름에 제맛으로 먹고 싶다는 욕심 자체가 오류라고 성찬은 봉주에게 한 수 가르쳐준 것이다.
물론 이 식객 매생이 에피소드는 성찬이 바쁜 사람들 모아놓고 사실상 사기친 거 아니냐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을 모은 것도 아니고 만화 속에서 가상의 상황극을 연출한 것이고, 이 연출을 통해서 실제보다도 더 극적인 효과를 냈다면 이것이 바로 허영만 화백의 만력이고 허구를 통해서 진실을 말하는 예술의 고전적인 본령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