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un 23.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4- 게이머, 예술가라는 길동무

차라투스트라 머리말 9 10 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말9 10. 니체 전집 번역본 중에서 다수 인용.

9.


차라투스트라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잤다. 아침놀뿐만 아니라 오전 한나절의 햇살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침내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놀란 듯이 숲과 숲속에 감도는 적막을 들여다보았다. 놀란 듯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뭍을 발견한 뱃사람이라도 되는 양 서둘러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환호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한 가닥 빛이 떠올랐다. 이제는 길동무들이, 내 어디를 가든 업고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죽어 있는 길동무나 송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길동무들이 있어야겠다.

스스로 원하여 내 가는 곳으로 나를 따라가려는, 살아 있는 그런 길동무가.

한 가닥 빛이 떠올랐다. 이제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이 아니라 그의 길동무들에게 말하련다! 차라투스트라가 고작 가축의 무리나 돌보는 목자나 개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나는 여기 가축의 무리로부터 많은 가축을 꾀어내기 위해 왔다. 군중과 가축들은 내게 화를 내리라. 차라투스트라는 목자들로부터 도둑이라 불리기를 바라노라.

나는 목자라고 부르지만 저들은 저들 자신을 선한 자, 의로운 자라고 부른다. 나는 목자라고 부르지만 저들은 저들 자신을 참신앙의 신도라고 부른다.

선하다는 자와 의롭다는 자들을 보라! 저들은 누구를 가장 미워하지? 저들이 떠받들어온 가치관을 파괴하는 사람, 바로 파괴자, 범죄자지. 그러나 이같은 사람이야말로 창조하는 자인 것을.

저들 온갖 신앙의 신도들을 보라! 저들은 누구를 가장 미워하지? 저들이 떠받들어온 가치를 파괴하는 사람, 바로 파괴자, 범죄자가 아닌가. 그러나 이같은 사람이야말로 창조하는 자인 것을.

창조하는 자가 찾고 있는 것은 송장이 아니라 길동무다. 짐승의 무리나 신자도 아니다. 창조하는 자는 더불어 창조할 자. 새로운 가치를 새로운 판에 써넣을 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들을 그리고 더불어 추수할 자들을 찾는다. 모든 것이 무르익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백 개의 낫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삭을 손으로 뽑아내며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들을, 자신의 낫을 갈 줄 아는 자들을 찾는다. 사람들은 그런 자들을 파괴자, 선과 악을 경멸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리라. 그러나 그런 자들이야말로 추수하는 자요 축제를 벌이는 자인 것을.

차라투스트라는 그와 더불어 창조할 자들을, 더불어 추수하고 더불어 축제를 벌일 자들을 찾고 있다. 가축의 무리와 목자 그리고 송장과 더불어 그가 무엇을 도모하랴!

그리고 너, 나의 첫 길동무여, 고이 잠들라! 나 너를 텅 빈 나무 속에 잘 묻어두었으니, 늑대들의 눈에 띄지 않게 말이다.

때가 되었으니 이쯤에서 헤어지자. 아침놀과 아침놀 사이에 내게 새로운 진리가 찾아왔으니.

나 고작 가축의 무리나 돌보는 목자가 되어서 안 되며 송장이나 묻는 자가 되어서도 안 되겠다. 민중과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죽은 자에게 말하는 것도 이것으로써 끝이다.

나 창조하는 자, 추수하는 자, 축제를 벌이는 자들과 벗하리라. 나 그들에게 무지개를, 그리고 위버멘쉬에 이르는 층계 하나하나를 남김없이 보여주리라.

홀로 있는 은자들에게, 그리고 단둘이서 숨어 지내고 있는 자들에게 나 나의 노래를 불러주리라. 그리고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그런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자의 가슴을 나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리라.

나 나의 목표를 향해 나의 길을 가련다. 머뭇거리는 자와 미적미적거리는 자들을 뛰어넘어 가리라. 내 가는 길이 그들에게는 몰락의 길이 되기를!



10.


...


 언젠가 나의 영리함이 나를 떠나버린다면, 아 영리함은 달아나기를 좋아하지! 그렇게 되면 나의 긍지 또한 나의 어리석음과 함께 날아가버리기를!

 차라투스트라의 내리막길-몰락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이전 글 머리말 5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시장에서 대중들에게 자기의 한계를 극복하여 가치를 창조하는 자, 위버멘쉬를 가르쳤으나 그들은 최후의 인간들로써 그저 매일매일 노동하고 먹고사는 것 같은 조그만 행복을 원할 뿐이었다. 대중의 환성과 고함에 가로막혀 사실상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은 끝이 난 것이다. 하지만  머리말 6 7 8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시장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떨어져 죽은 광대를 만나고, 그를 친구라고 부르며 송장을 업고 가다가 이제는 새로운 길동무를 찾으려 한다. 그런데 시장의 수많은 인물들 중에 왜 하필 광대였을까? 왜 차라투스트라는 광대를 친구라고 부르며 그의 송장을 업고 다니다가 손수 빈 나무에 매장까지 해주고 이제 새로운 길동무를 찾으려 할까?


 이는 대중들 사이에서 위버멘쉬라는 진리를 설파하려는 차라투스트라와 시장에서 눈요기, 구경거리를 제공하면서 관심을 끌어야 살아남는 광대 사이의 유사성 때문이 아닐까? 친구 라는 구분점은 친구 아닌 자 라는 구분점 또한 만들어낸다. 우리는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의 출신 지역이나 취향 성향 등을 물어보면서 자신과의 유사성을 찾으려 애쓰지 않던가? 그것은 단지 지연이나 학연같은 부정적 뉘앙스의 개념이라기보다는 너와 내가 적이 아닌 친구라고 확인하고 안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 위험한 줄타기를 하다 '떨어져 죽은' 광대는 스스로 몰락, 내려가기를 자처하며 사상의 줄타기를 하는 차라투스트라와 이미 만나기 전부터 친숙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죽은 광대를 친구라 부르며 그의 송장을 업고 다니며 매장까지 해준다. 흔히 니체에 대한 통속적인 평가 중 하나는 니체는 대단히 개인주의적인 사상가이며 심지어 자기 자신외엔 아무것도 필요없는, 공동체 자체를 반대하고 혐오한 철학이라는 말이 있다. 허나 그들은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조차도 제대로 읽지 않고서 니체의 사상을 평가한 것에 불과하다. 차라투스트라는 단순한 공리주의로 평가하자면 더이상 도움이 안되는 죽은 송장마저도 친구로 여기는 자이며 항상 자신과 함께 가치를 창조할 길동무를 찾는 존재인 것이다.


 또한 차라투스트라는 무엇보다도 위버멘쉬, 구름 속에서 떨어지는 번갯불처럼 대지에 새로운 가치를 내리치려는 자이다. 그렇기에 이미 죽은 송장은 친구일지라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는 없. 다시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본 차라투스트라는 그것을 깨달았기에 이제 송장을 내려놓고 살아있는 새 길동무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텅 빈 나무속에 광대의 송장을 묻는다는 것은 송장이 언젠가 나무의 거름이 되어 새 시대의 열매를 맺기를 니체는 기대한 게 아니었을까? 흔히 니체에 대한 해설서들은 플라톤의 철인-정치가나 데카르트의 회의하는 이성적 주체와 대비되는 니체의 새로운 인간 모델로 시인-철학자나 예술가적 삶을 말하곤 한다. 시인이든 예술가든 기존 세계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라는 면에서 위버멘쉬에 가까워지려는 인간상을 니체는 온몸을 다해서 말하려 했던 것이다. 아니 말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전 세계에서 음악으로 영화로 그리고 게임 등등으로 니체의 아이들이 끝없이 생성하며 새로운 노래를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시대에 이런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과 즐기는 게이머 이야말로 차라투스트라가 말한 창조하는 자 추수하는 자 축제를 벌이는 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근거가 있는 일이다. 아도르노의 문화산업 비판이나  슬라보예 지젝같이 소비사회, 후기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즐겨라' 라는 하나의 정언명령이 지배하는 세계로 정의하고 그 사상적 기반으로 니체 스피노자를 지목하여 비판하는 것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차라투스트라 본문은 시작도 하지 않았기에, 천천히 다루면서 마치 게임처럼 즐겨보기로 하자. 니체도 후세 사람들이 너무 저급한 수준으로 조급한 이해를 하기보다는 천천히 자신의 철학을 음미하고 재창조하길 바라지 않았을까. 다음 두쪽읽기 부터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총 4부 중에 본문 1부를 드디어 시작해보기로 하자.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
-세 변화에 대하여



작가의 이전글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3-태극기부대와 최후의 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