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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Nov 20. 2023

나는솔로 16기 후기 또는 잡담- 영숙 영철 플라톤

동굴 밖에서 동굴을 비웃기란 쉽고 즐겁지만


옆구리가 시리다는 말은 이제 나보다 어린 20대 아래로는 아무도 쓰지 않는 오래된 말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겨울은 또 찾아온다. 나는 후기를 쓰려던 나는솔로 16기를 그냥 잊어버리고 최근 본 하야오 옹의 영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다른 글을 쓰며 도피할까 했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된다며 겨울의 칼바람이 내 면상을 후려갈기는 것만 같은 날씨 찾아왔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듯이 쓰려는 후기 글이 지지부진한 이유가 갖가지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이 16기 돌싱특집 출연자들의 서사가 도무지 끝이 나질 않는다는 것. 17기가 시작했으니 이제 이전기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일반인 예능의 수순이건만... 온갖 후속 취재기사와 출연자들의 유튜브와 심지어 나는솔로 사랑은 계속된다에 16기 상철이 직접 나와서 자기 미국생활을 공개하는 등 장작이 끝이 없고 온갖 논란은 들불처럼 자꾸 번져간다.





그렇다고 무슨 인터넷의 렉카 유튜브나 저질 황색언론마냥 온갖 논란이 터질 때마다 신나게 달려가서 너 욕 좀 먹어봐라 하는 식으로 글을 쓰는 건 굳이 브런치에 쓸 필요는 없다. 그러면 이제 와서 나솔에 대한 글을  써야만 한다면 무슨 글을 쓸까나. 16기 출연자 중에서도 최고의 화제성으로 세 손가락에 꼽힐 영숙과 영철을 재방송으로 다시 보면서 나는 플라톤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시간에 들었던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플라톤이나 그의 이데아니 뭐니 하는 개념은 물론 철학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지만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사회에선 딱히 중요하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솔로를 두 번째로 보면서 난 자꾸만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비유가 떠올랐다. 흔히들 우리 현대인은 이제 어리석었던 고대 중세인과는 달리 플라톤이 말한 동굴 밖에서 진짜 태양을 본 철인처럼 스스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동굴에서 그저 횃불에 비친 그림자를 마치 실체인 양 생각하며 더듬거리고 있 쪽이 진실에 가까운 게 아닐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부터도 그러하다.  리얼 연예예능의 탈을 쓰고 있지만 내가 마치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진실을 보고 있다 착각하며 피디와 제작진이 의도한 대로 연출자에게 감정을 쏟아내버리고 마는 이러한 어리석음이란




한창 나솔의 분위기가 뜨거울 때 생방송을 보던 당시 나는 영철의 광수에 대한 폭력적인 언행과 영숙의 안하무인적이고 이중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발언에 대해 진심으로 분노하며 인터넷 커뮤에 배설적인 글을 써내기 직전까지 몰입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쓰기 직전에 어차피 브런치에 후기를 쓸건데 굳이 그런 똥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며 진정했고, 인생의 흑역사를 하나 더 만들기 전에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 다시 방송을 보니 진정한 의미로 '경각심'을 품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영숙에게 감사할 만 하다.



나는 영숙의 행태에 대해 방송직후 증오, 적개심에 가까운 마음을 품었고 이게 당연히 사람이라면 가져야 할 마땅한 마음이 아닌가 생각하며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솔로를 본 수많은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해 보니 의외로 영숙보다도 광수의 처신이 문제였다는 사람도 결코 적지 않았다. 애초에 옥순을 무슨 자기가 다 잡은 물고기마냥 쉽게 생각한 것도 문제, 다른 여자에게 하나하나 다 찔러보고 광수 본인의 표현처럼 쑤시고 다닌 것도 문제 그리고 그보다도 중요한 건 옥순에게 직접 제대로 확인한 게 아니라 타인의 말에 끝없이 휘둘리고 자기만의 기준 중심이 없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문제... 


그렇지만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나는솔로 프로그램에 대해 온갖 정보를 찾아보고 취득할수록 나는 또한 그들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공감에 다가서기도 했다. 소설로 치면 편집된 영상을 보는 우리들은 일종의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모든 출연진들의 언행을 보고 평가할 수 있지만, 출연진들은 어디까지나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는 제한된 터널시야로 열심히 촬영세트라는 동굴의 어디에 빛이 있을까 찾아야만 한다는 상황. 5박 6일에 촬영장 안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명확하기에 마지막 선택의 날이 올수록 힘들게 직장에 사정을 말하고 휴가내고 여기까지 왔는데 뭔가 건져가는 인연이 있어야 하지 않냐는 급해지는 마음...


사실 이 촬영세트장이라는 이 어두컴컴한 현대의 동굴 안에는 수십대의 카메라가 상시 촬영 중이지만 시공간의 제약과 조급해지는 마음이 겹쳐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말이 바뀌기도 하고, 이중적인 태도가 나오기도 하는 게 모순적이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인간의 삶 그 자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부 악의적인 거짓말이나 자기만 살아남으려는 면피성 발언같이 명백히 잘못된 언행 옹호될 수 없겠지만.


다만 전쟁시기의 일본에 태어나 군수공장을 하는 아버지밑에 태어나 부유하게 자랐지만 아버지와 전쟁을 싫어했고 일관되게 반전과 평화의 작품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 옹의 이번 작품의 주제 메시지처럼, 인간은 누구나 악을 품고 있고 모순적일 때도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게 좀 더 성장하고 제대로 반성하는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동굴 밖에서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을 태양이 아니라 그림자밖에 모른다며 비웃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쉽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진짜 진실은 그 동굴 밖의 태양조차 더 거대한 촬영세트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동굴 밖도 어쩌면 더 큰 동굴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요새 말로 메타인지 능력이라 부르는 이런 자기 객관화 능력은 물론 쉬운 게 아니지만 동굴 안와 밖을 쉽게 가르고 흑백논리로 다루는 게 아니라 그 동굴문 사이를 계속 왔다갔다 하는, 오래된 철학 용어인 변증법의 가르침처럼 모순 속에서 새롭게 승화하는 과정이 필연적인 게 아닐까... 전쟁과 평화를 단순히 다른 상태로 쉽게 나누는게 아니라 평화로울수록 전쟁을 제대로 방비해놓는 것이 진정한 평화로 다가서는 길이라는 걸 역사속에서 배우듯이.


Fin.





Ps. 어쩌면 이걸로 나는솔로 16기에 대한 글은 끝일수도 아닐 수도. 더 쓰고 싶어질 이유가 생기면 쓰고 아니면 쓰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은 문득 생각하니 10년 넘게 롤드컵 우승 컨텐더인 페이커 대상혁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글을 어제 완성했지만 발행 버튼을 망설이다가 왕십리 시지비에서 취소표를 잡아서 즐겁게 티원의 우승 서커스를 감상하고 왔다... 티원의 우승을 축하하며 페이커 대상혁과 2023세계최고원딜 구마유시를 찬양하는 글을 또 하나 써보고 싶어지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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