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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Feb 28. 2024

스샷에세이 또는 일기- 온라인 게임 대신 작가 일퀘

일일 퀘스트를 게임이 아니라 글쓰기 퀘스트하기


토끼공듀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진 전설의 그림. 정말 옛날부터 이 그림을 본 기억이 나는데 위키에 찾아보니 2014년 제작이란다 어느새 10년. 강산이 변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툭하면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짤이다. 매일매일 휙휙 빠르게 트렌드가 변하는 인터넷세상의 흐름을 생각하면 10년 동안 계속 상기되는 이 그림은,  수백만 장의 짤방이 흘러넘치는 한국 온라인 게임계에서만큼은  '고전' 클래식의 지위에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하루에 열 시간 이상 같은 온라인 알피지 게임을 해서 최고 레벨에 도달하고, 수백 번 같은 몬스터를 박살내면 당연히 지겹고 피곤하고 내가 게임하는 건지 일하는 건지 구분이 어려워진다. 이건  제 아무리 대단하고 재밌는 명작 게임이라도 명백히 정해져 있는 미래다. 영화도 같은 고전 명작이라도 같은 영화를 수십 번 반복재생하면 질릴 수밖에 없을테니. 하물며 위의 스샷에 나오듯 무슨  프로게이머도 아니고 하루 20시간을 같은 게임을 하고 최종 아이템인 전설 무기까지 이미 다 구한 상태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하단의 문장에 대놓고 나오듯이 어느 게임에서나 이런 토끼공듀는 보통 너 그렇게 게임 많이 해놓고 계속 재밌을 수가 있냐 너 바보 아니냐고 조롱당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하나의 의문이 제기될 만하다. 게임은 당연히 재밌으려고 하는 활동인데 이제 지겹고 재미없어진 게임을 토끼공듀는 왜 계속하는 걸까?




어떤 사람은 한때 유행했다는 메이플이나 로스트아크 쌀먹처럼 게임을 통해서 사실상의 생계활동, Play to Earn 게임으로 돈 벌려고 하는 경우도 있을 거고 어떤 사람은 그냥 시간은 많고 집에서 할 일은 없는데 그저 시간을 죽이기 위해 몰입하는 취미의 일환이거나 일상 습관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일상의 습관이 되는 과정 속에서 토끼공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같이 사냥도 다니고 심지어 레벨도 더 높은 할배의 존재는 너무나도 소중하다. 어쩌면 오래된 현생의 친구처럼.



어떻게 잘 아냐고? 사실 내가 바로 후자의 경우였다. 20년 코로나가 심각해지자 내가 즐기던 독서모임을 비롯한 모든 외부 활동들이 중단되었고 누구와 소통을 할지 막막해진 참에, 수능 끝나고 팔자 편하게 마비노기 게임에서 길드원들과 사냥을 하고 현실 정모를 하던 그런 행복한 시기를 떠올렸다.


그래서 지금은 독일간 내 동생이 재밌다고 하던 넥슨의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고 하나씩 캐릭터를 레벨업하고 성장시키고 길드 사람들과 일종의 가족놀이 상황극을 하는 게 내 생활의 일과가 되었다. 온라인 게임의 세계에 복귀한 첫 1년은  그렇게 너무나도 즐겁게 신선놀이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지나갔다...


허나 2년 차부터는 매일 반복되는 일일퀘스트를 습관처럼 하고 하고 또 하면서 망겜 망겜 소리를 길드원들과 함께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런데 롤러코스터의 그 노래처럼 습관이란 게 참 무서운 법이다. 그렇게 재미없어진 2년 차부터 어느새 5년째 나는 같은 게임을 질리고 질렸는데도 매일 같은 일퀘, 일일퀘스트를 하고 또 하고 있었다...


토끼공듀 저 짤방을 처음 보고 그렇게 비웃었지만 내가 바로 토끼공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아마 내가 저 스샷을 처음 볼 때는 할배의 대사와 존재감에 대해 그다지 크게 평가하지 않아서 그랬던 게 아닐까. 사실 똥겜 망겜이라 불리는 수많은 옛날 저질 게임도 같이하는 친구 하나만 있다면 굉장히 재밌게 느껴진다. 사실 5년 동안 게임을 아예 접으려는 시도도 서너 번쯤 했었다. 그런데 번번이 나를 그리워해주고 다시 오라고 잡아주는 저 할배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뭐 때가 된 것 같다. 욕망은 오직 다른 욕망으로만 제압될 수 있다고 철학자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말했던가. 코로나라는 재난의 시기도 끝났고 이제 게임에서 날 잡던 친구들도 하나 둘 현생으로 아예 탈출하거나 망겜이 아닌 다른 구조선을 찾아다닌다. 게임 자체를 아예 접는다는 건 뭐 어려운 일이지만,  나도 이제 하나씩 본업으로, 나의 진짜 일일퀘스트에 충실해져 보도록 하자. 너무 욕심내거나 완벽주의를 핑계 삼아 미루지 말고, 그저 하루하루 오늘도 쓰는 존재로 살았다는 충실감을 목표로...


오늘도 그저 쓰는 시간이 즐거웠고 읽고 쓰는 나 자체가 맘에 들었기에... 일일퀘스트는 매일매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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