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Mar 19. 2024

피노키오는 마지막까지 사람이 아닌 이유-도서관 보물찾기

마지막까지 사람이 되지 않는 나무인형 또는 우리?


로또나 복권같은 운은 내게 한 번도 온 적이 없지만


도서관 신간코너를 서성이다 보면 제목부터 확 끌리는 사탕상자같은 제목과 마주치는 행운이 종종 내게 온다. 이전에도 종종 마주친 이탈리아의 철학자 또는 재밌는 이야기꾼 아감벤 아저씨의 귀와 입을 또 빌려본다



표지부터 빨강빨강 매혹적인 책.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독일의 벤야민 저작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해서 이탈리아를 비롯해 전세계에 널리 알린 사람이자 그것을 기반으로 근대성과 생명의 근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나름 명성있는 현대 철학자다.


호모 사케르니 벌거벗은 생명이니 하는 그의 철학적 개념들은 한국 인문학계에서도 한때 꽤 난해하지만 좀 배운 사람들이라면 즐겨쓰는 철학적 유행이었지만, 이 책은 이전 책들의 그런 개념들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동화와 디즈니의 애니로 익히 알고 있는 피노키오에 대한 해설과 우화에 대한 고찰로 흥미롭게 접근한다.



우리는 흔히 피노키오의 이야기 전체를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는 나무인형이 갖가지 모험을 거쳐 마지막에 사람이 되는 결말로 기억한다.  태어나 짐승처럼 사람구실 못하던 철없는 아이가 경찰에게 맞기도 하고 학교에 가라고 책 사줬더니 책을 팔아서 연극을 보러 가기도 하고 고양이와 여우에게 사기당해서 죽음의 위기를 맞는 등등 밖에서 개고생 다 하다보니 다시 제페토 할아버지의 소중함을 느끼고 나무인형에서 사람이 된다는 훈훈한 이야기.


이를 피노키오가 고난을 거쳐 중세 신민에서 근대 시민으로 변화하는 은유의 동화라고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고 모범적인 해석이지만, 아감벤은 이 해석에 반기를 들고 오히려 작가 콜로디가 이탈리아 시민, 근대적 인간이 되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가리발디의 이름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통일 운동은 세계사 시간에 언뜻 들었던 기억이 스쳐간다. 통일 근대국가를 완성한 후에 가리발디가 '우리는 이탈리아 국가를 창조했다. 이제 이탈리아 국민을 창조할 때다' 라는 말은 국가와 민족이 고정불변이 아니라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것을 지적할 때 자주 나오는 시사 상식이 되었다. 그렇다면 19세기 당대에 피노키오 작가로서는 이탈리아 근대 시민이 되는 것에 불안정과 저항감을 느낀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닐 듯하다.


아감벤에 따르면 인간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야생과 야생 아닌 다른 생명체 즉 야만에서 벗어난 우월한 인간이라는 식으로 구분한다. 이탈리아가 아니라 우리도 툭하면 교육이 부족하거나 잘 씻지 않는 수준 떨어지는 행동을 보면 야만적이라거나 저급하다고 말하지 않던가. 우리는 이미 근대화를 끝냈다고 평가받는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아직 근대화 국가화가 한창인 19세기의 이탈리아에 살던 피노키오 작가는 그러한 근대화 근대시민에 의심 가득한 부정적인 감정을 품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래서 피노키오 원전의 결말에서 나무인형이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낡은 나무인형은 그대로 두고 갑자기 사람이 된 피노키오가 새로 생겨나는 마무리는 작가가 일부러 의도한 게 아닐까?





인간 내면에 야생성 동물성 인간성이 다 있지만 섞여있지 않고 접촉해 있을 뿐이라는 알 듯 말듯한 아감벤의 아리송한 주장. 인간이 과거 야생에서 동물로, 동물에서 현재의 인간이 되었다고 다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피노키오가 그렇듯 변한 적이 없다고 이 철학자 아저씨는 역설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 300쪽이 넘는 두꺼운 철학책을 흥미롭게 천천히 먹어볼 만한 멋진 맛보기 전채요리로 충분할 듯하다


피노키오 안에는 야생과 동물과 인간이 다 있고 현대의 우리도 그러하다면, 우리는 자기 안의 야만성과 동물성을 그저 인간성의 이름으로 잘 억누르게 교육 훈련받은 것뿐일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의 야만이 튀어나와도 된다고 허락받은 연애나 도박이나 스포츠에 그렇게 열광하는 걸까??? 피노키오가 여우와 고양이를 만나 금화 두개를 천개로 불려준다는 이야기에 속듯이...


계속...



작가의 이전글 시 습작-월욜이라는 공포를 쓰면서 이겨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