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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ul 01.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8-원피스 로빈 포네그리프

두쪽읽기 190701 읽기와 쓰기


니체 전집 번역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다수 인용 및 필사함.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63p-65p

일체의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넋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낯선 피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나는 책을 뒤적이며 빈둥대는 자들을 미워한다.

 
독자를 아는 자는 독자를 위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이런 독자들의 시대가 한 세기 더 지속되기라도 한다면 넋조차도 악취를 풍기게 되리라.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배워 읽을 수 있게 되면, 시간이 흐르면서 쓰는 것은 물론 생각까지 부패하기 마련이다.


한때는 넋이 신이었다. 그러다가 그것은 사람이 되더니 지금은 심지어 천민이 되어가고 있으니. 피와 잠언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그저 읽히기를 바라지 않고 암송되기를 바란다.


산줄기에서 가장 짧은 길은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길이다. 그러나 그런 길을 가려면 너 긴 다리를 가져야 할 것이다. 잠언은 산봉우리라 할 수 있다. 그것들을 들으려면 크고 우람한 체구여야 할 것이다.


엷고 깨끗한 대기, 신변의 위험, 유쾌한 악의로 가득찬 넋, 이런 것들은 썩 잘 어울린다.
나는 내 가까이에 요마를 두려 한다. 나 용기 있기 때문이다. 유령들을 위협하여 쫓아내는 용기는 자기 자신을 위해 요마를 만들어낸다. 용기는 웃고 싶은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너희와 같은 느낌을 가질 수가 없다. 내 발 아래 있는 이 구름. 내가 비웃고 있는 이 어둡고 무거운 것. 그것이 바로 뇌우를 가져오는 너희의 구름이렸다.


높이 오르려 할 때 너희는 위를 올려다본다. 그러나 이미 높이 올라와 있는 나는 아래를 내려다본다.


너희 가운데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높이 올라와 있을 수 있는 자가 있는가?
더없이 높은 산에 오르는 자는 모든 비극과 비극적 엄숙성이라는 것을 비웃는다.


지혜는 우리가 용기 있고, 의연하고, 냉소적이며 난폭하기를 소망한다. 지혜는 여인이고, 그리하여 늘 전사만을 사랑한다.


너희는 말한다. “삶은 견뎌내기 힘들다.” 고. 그러는 너희는 어찌하여 오전에 긍지를 갖다가도 저녁에 이르러서는 체념하는 것인가?


삶은 견뎌내기 힘들다. 그러나 그토록 연약한 언동을 삼가라! 우리 모두는 짐깨나 질 수 있는 귀여운 나귀 암수이니.


우리는 한 방울 이슬이 떨어졌다 하여 파르르 떨고 있는 저 장미 꽃봉오리와 어떤 점에서 같은가?


그렇다. 삶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 속에는 얼마간의 광기가 있기 마련이다.광기 속에는 얼마간의 이성또한 있기 마련이고.


삶을 좋아하는 내게도 나비와 비누방울이,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서 그와 같은 자들이 행복에 관하여 그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 경쾌하고 어리숙하고 사랑스러우며 발랄한 작은 영혼들이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차라투스트라는 눈물을 흘리며 노래부르게 된다.


나 춤을 출 줄 아는 신만을 믿으리라.


그런데 나의 악마를 보는 순간 나 그가 엄숙하며, 철저하고, 심오하며 당당하다는 것을 발견했으니, 중력의 정령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모든 사물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지.


사람들은 노여움이 아니라 웃음으로써 살해를 한다. 자, 저 중력의 정령을 죽여 없애도록 하자!


나는 걷는 법을 배웠다. 그 후 나 나를 줄곧 달리도록 했다. 나는 나는 법을 배웠다. 그 후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움직일 수가 있었다.


이제 나 가볍다. 이제 나 날고 있으며, 이제 나 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야 어떤 신이 내 안에서 춤을 추고 있구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글은 무엇으로 쓰는가? 니체가 살던 19세기에 글은 당연히 펜으로 잉크로 쓰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니체는 피로 쓴 글만을 자신을 사랑하며, 피로 글을 쓰라고 권한다. 대체 무슨 말일까? 그 다음의 맥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책 앞에서 빈둥대는 자들도 적당히 알 수 있는 글이 아닌, 온 몸을 다해서 피를 짜내듯이 글을 쓰라는 의미이리라.


 그렇기에 피로 쓴 글은 결코 쉽지 않다. 심지어 니체는 누구나 배워서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된다면 쓰는 것 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부패할 것이라 경고한다. 이는 박홍규 선생님 같은 분이 비판하는 니체의 반민주주의적이고 귀족주의적인 면모일 것이다. 하지만 또 이런 글의 포인트만 집어내서 니체를 안티 민주주의 사상가로 매도해 버린다면, 그토록 니체가 생전에도 우려한 약탈하는 군인같은 나쁜 독자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차라투스트라는 분명히 머리말에서부터 산에서 시장으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고 길동무를 찾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이 글에서 또 특이한 사항으로 꼽을 만한 구절은, 지혜는 여인이며 그렇기에 전사만을 사랑한다고 니체가 말했다는 것이다. 흔히 니체는 지독한 남성 우월주의자이며 성차별주의자이며, 그 증거로 차라투스트라를 비롯한 여러 저서에서 니체가 여성을 경멸하고 남성을 찬양한 구절들이 제시된다. 그런데 왜 니체는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로서 지혜는 여인이라고 말한 것일까? 니체가 만약 여성 혐오주의자라면 이런 말을 하는건 지나치게 모순된 언동이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머지않아 다음 글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하겠다. 다만 이 구절에서 보이듯이 니체는 결코 여성을 단순히 낮게 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더 생산적인 해석이 가능하리라.


또한 중력의 정령도 차라투스트라 전체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중력의 정령 또는 악령은 3부의 중심 소재이며, 여기서는 일종의 전조로서 등장했다고 보면 되겠다. 니체 자신은 만약 신을 믿는다면 춤을 출 줄 아는 신만을 믿을 것이며, 그렇기에 엄숙하고 진지한 저 중력의 정령을 노여움이 아닌 웃음으로써 살해하자고 독자들에게 권한다. 앞서 말했듯이 글을 쓸 때는 피로 쓰듯이 온 몸의 힘을 다해서 집중해야 하지만, 나의 삶을 살아갈때는 엄숙한 중력의 정령따위 무시하고서 춤을 추면서 웃어줘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읽기와 쓰기에 대한 니체의 이야기들을 듣고 생각하다 보면 나는 하나의 캐릭터를 떠올린다. 바로 원피스의 니코 로빈, 밀짚모자 해적단의 고고학자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원피스 만화에 대해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간단히 하자면, 밀짚모자를 물려받은 주인공 루피가 고무고무열매라는 악마의 열매를 먹고서 조로 나미 우솝 쵸파 로빈 등등의 동료와 함께 해적왕이 되기 위해서 위대한 항로로 모험을 떠나는 만화이다. 로빈은 꽃꽃열매를 먹은 악마의 열매 능력자로서, 위의 그림에서 나오는 것 처럼 신체를 마치 꽃처럼 피워내서 활용하는게 가능하다. 모험을 하면서 점점 능력이 발전하여 수천개의 팔을 꽃처럼 피워내서 날개처럼 활용하기도 하며, 마치 춤을 추는듯한 우아한 격투스타일을 가지고 있는데 본업은 고고학자로 해적단 안에서 가장 성숙하고 지적인 브레인을 담당한다. 재미있게도 니체 또한 철학자 이전에 그리스 고문헌을 연구하는 문헌학자였고, 책으로 비극의 탄생을 쓴 바 있다.



 로빈은 어린시절부터 오하라 라는 섬에서 학자들과 함께 자연스레 고고학을 연구하여 어릴때 이미 박사 칭호를 들을 정도의 천재였고, 니체는 문헌학에 대한 연구로 겨우 25세에 대학에서 평생 연금을 보장해줄 정도의 역대급 학자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원피스의 작가 오다가 로빈을 니체를 참고로 해서 창조한 캐릭터라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일 것이다. 다만 이런 해석을 통해 그저 만화에 불과할 수도 있는 원피스에  인문학적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고 철학을 좀더 쉽게 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보고자 한다. 로빈은 오하라의 학자들과 같이 해온 금지된 역사 연구, 공백의 100년에 대해 포네그리프라는 거대한 돌을 통해서 알수 있다는 실마리를 잡고서 이 꿈을 위해 한때 적이었던 밀짚모자 해적단의 일원이 된다.



하지만 이 로빈의 역사를 알고 싶다는 소박한 꿈에는 적이 너무 많다. 니체의 다른 책 제목처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한계에 갇혀서 공백의 100년에 대한 역시 연구 자체를 금기시하는 세계 정부가 바로 그 적인 것이다. 아직 이 공백의 100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작품 내에서 명확히 나오진 않았으나, 세계정부에 의해서 멸망당하기 직전 오하라 학자들의 입을 통해 추측해보면, 원피스내 주요 키워드중 하나인 "D의 의지"와 연관시켜서 Demon 이나 Democracy가 아닐까 하는 나름의 분석글이 많이 나오고 있고 나도 신빙성이 있다고 보는 편이다.




 원피스에서 세계정부를 처음에 구성한 20개의 왕국인들은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천룡인'으로 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위협적일 수 있는 공백의 100년과 그때 왕국의 존재와 사상을 지워버린 것이라면, 천룡인이라는 귀족 특권 계급에 위협적인 Democracy, 민주주의를 악마라고 단정짓고 역사 연구 자체를 금기시하고 탄압했다는 추측은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마침 니체도 선악의 계보 라는 차라투스트라 이후에 쓴 저서를 통해, 도덕이나 선이라는 것은 그 계보를 따라가서 어원 등을 분석해보면 나약한 자들의 정신승리, 강자에게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노예의 도덕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강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 니체는 그렇게 사회나 국가의 도덕이랍시고 가르치는 것에 순한 양처럼 순응하지 말고, 마치 사자처럼 달려들고 싸워서 자신의 가치를 새로이 창조해야 자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 것이 아닐까.

 로빈도 도덕 그 자체를 비판한 니체처럼, 세계의 질서 아니 세계 그 자체나 다름없는 세계정부를 적대하며 때론 도피하고 때론 크로커다일 같은 빌런과 손을 잡아서라도 생존해나가며 계속해서 포네그리프를 찾고 공백의 100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나간다. 원피스 단행본이 이제 100권에 가까워지며 슬슬 작가 오다가 예고한대로 마무리에 접근중이다. 진정한 역사의 기록-로드 포네그리프에 대한 단서들도 풀리면서 로빈은 점점 더 역사의 진실에 가까워지고 해적 사황을 비롯한 세계정부와 해군의 압박도 거세진다. 하지만 로빈은 그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로빈은 혼자 다 이겨낼 만큼 강하니까?




천만에. 로빈은 혼자서는 결코 강한 존재가 아니고 해군에 잡혀서 결국 밀짚모자 해적단 동료들에게 구출된 적도 있다. 로빈은 길고 긴 도피생활에 지쳐서 한때는 삶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선장 루피와 동료들에게 살고 싶다고, 나도 함께 바다로 데려가 달라고 하는게 진짜 로빈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결국 로빈이 세계정부와의 말도 안 되는 싸움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니체가 차라투스트라 머리말에서 자신과 함께 위버멘쉬를 추구할 길동무를 찾았듯이, 로빈은 바다를 함께 건너고 같이 싸울 동료를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


 End가 아닌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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