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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May 12. 2024

도서관 보물찾기-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의 밤

노동의 낮 이후 밤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다들 그렇겠지만, 나도 읽다가 중간에 그만둔 책을 다시 펴는 것은 적지 않은 힘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 책이 결코 쉽지않은 현대철학 종류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때때로 읽다만 책을 다시 읽게 하는 마법을 도서관은 부리곤 한다






무려 2월에 빌려서 세 달째 다 읽지 않고 반납을 미루고 있는 책.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이제 반납하셔야 한다고 도서관에서 알림을 보내왔다. 언제나 마감이라는 마법은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고 이제는 피할 수 없기에 한번 즐겨보자는 마음으로 내 마음의 방향을 살짝 바꿔놓는다. 이전에 180페이지 정도밖에 안 읽었고 아직 400페이지나 남아서 꼼꼼히 읽는 것은 무리지만, 그래도 대략적으로 한번 훑어보는 과업은 무사히 끝냈다.





다 읽은 첫 인상평? 이 책이 바로 랑시에르의 박사 졸업 논문이었다는 정보부터 듣고 읽기 시작했기에 솔직하게 평하면, 이렇게 시적이고 문학적인 에세이에 가까운 논문을 무려 박사 졸업 논문으로 통과시켜 준 프랑스 대학 철학과의 학풍이 부럽고 멋지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랑시에르의 이 책이 철학적으로 부족하다느니 논리적 완결성이 없다느니 그런 비판을 할 요지가 결코 아니다. 다만 한국 철학계에서는 글이 문학적이다 이런 말이 나오면 결코 긍정적인 평이 아닐 뿐만 아니라, 졸업 논문같은 엄밀성을 요구하는 글에선 논리적인 면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나 다름없을 만큼 부정적인 평이다. 그렇기에 제목과 목차들부터 시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이 가득한 박사 논문이 통과된 프랑스 철학계에 대해 그저 부럽고 한국도 언젠가 이런 시적인 철학 논문이 널리 통용되길 기원할 뿐이다.






책의 내용에 대한 요약은 굳이 억지로 내가 말을 덧붙이는 것보다는 표지의 소개로도 충분할 듯 하다. 프랑스 혁명 이후 19세기 노동자들의 편지와 저널들을 조사해서 그들이 어떻게 노동계급을 형성하고 자기들의 공동체와 해방을 탐구했는가? 읽기와 쓰기같은 기초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노동 현장에 투입되던 19세기의 노동자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들이 정교한 글을 남겼으리라고 기대하기는 물론 어렵다. 그래서 다소 난잡할 때도 있고 끝맺음이 불분명한 단편적인 글들도 많지만, 낮의 노동이 끝나고 나서 얼마 남지않은 밤의 시간에 그들에 자신의 목소리를 여러 형태로 사회에 남겨두려고 노력한 흔적들은 도처에 남아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수많은 소개글과는 또 다르게 지옥 천국의 문이나 기독교도 헤라클레스라는 책 목차에서부터 냄새를 풍기듯이, 이 19세기 노동자들이 새로운 계급과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한 것은 종교, 그 중에서도 생시몽주의의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었다. 흔히 사회주의라는 사상의 역사에서 칼 맑스 할배 이후가 과학적 사회주의고 그 이전의 푸리에나 생시몽 등은 공상적 사회주의에 불과하다고 쉽게 폄하되며 굳이 더 읽을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지만, 프랑스 공산당의 철학자 알튀세르의 제자인 자크 랑시에르는 그러한 기존의 생각들에 대해 이 책을 통해 논리적 반역을 시도한 게 아닐까 싶다.


 사실 한때 세계의 절반을 붉게 물들인 사회주의와 맑스주의라는 유령은 기독교나 유교 같은 기존의 종교에 반기를 들고 고통받는 시민들의 마음에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기치아래 운동을 펼쳤음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마치 하나의 종교처럼 변해버렸음은 부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소련에서는 맑스나 레닌을 우상화했고, 중국에서 마오 쩌둥같은 독재자를 지금도 종교의 성인마냥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대하는 것은 지금도 그 역사의 잔재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종교와 사회운동을 단순히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본다면 이는 너무 단순하게 역사를 보려는 오류에 불과할 것이다. 랑시에르도 그렇기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 19세기 초기의 노동자들이 그들의 밤 동안 어떤 기록을 남겼고 생시몽 기독교도들과 함께 성서와 글을 공부하고 빵을 나눠먹으며 어떤 연합을 형성하려고 했는지 이렇게 500페이지가 넘는 박사 논문으로 낸 게 아닐까.


랑시에르에 따르면 정치는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들리게 하고, 사회에서 몫이 없던 자의 몫을 주장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정치의 의미라고 정의한다. 원래 들리던 것이 들리고 원래 각자 받아야 할 몫을 받는 건 정치가 아니라 치안 police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찰과 군대를 통한 치안이 아닌 진짜 정치, 그런 정치의 의미에 합당한 대표적인 사례는 당연히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과 1848년의 유럽 전역의 혁명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바로 이 책이 다루는 1830년대의 노동자들과 기독교 생시몽주의자들의 밤이 있었다... 인간은 언제 스스로를 생각하고 노동하는 존재라고 정의하게 되는가? 그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랑시에르의 이 책을 꼭 읽어볼 만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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