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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un 27.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6-베르세르크 도망 낙원

두쪽읽기 190627 배후세계를 신봉하는 자들

니체 전집 번역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다수 인용 및 필사.

 

배후 세계를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46-50p

 

일찍이 차라투스트라도 배후 세계를 신봉하고 있는 자들이 하나같이 그러하듯이 인간 저편에 대한 망상을 품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 세계는 고뇌와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신의 작품으로 보였던 것이다. ...

자신의 고뇌를 외면함으로써 자신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고뇌하고 있는 자에게는 도취적 쾌락이다. 도취적 쾌락과 자기 망각, 세계는 한때 그렇게 보였다. ...

아 형제들이여, 내가 지어낸 이 신은 신이 모두 그러하듯이 사람이 만들어낸 작품이자 망상이었다! 신이라고 했지만 사람, 그것도 사람과 자아의 빈약한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이 유령이 그 자신의 재와 불길로부터 내게 온 것이지, 진정! 저편의 세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었다!

형제들이여, 무슨 일이 일어났는 줄 아는가? 나는 고뇌하고 있는 나 자신을 극복한 것이다. 나 나 자신의 타고 남은 재를 산으로 날랐으며, 한층 밝은 불꽃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보라! 그러자 저 유령이 내게서 달아나지 않던가! ...

배후 세계라는 것을 꾸며낸 것은 고뇌와 무능력, 그리고 더없이 극심하게 고뇌하는 자만이 경험하는 그 덧없는 행복의 망상이었다. 단 한 번의 도약, 죽음의 도약으로 끝을 내려는 피로감,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바라지 못하는 저 가련하고 무지한 피로감, 그것이 온갖 신을 그리고 저편의 또 다른 세계라는 것을 꾸며낸 것이다. ...

형제들이여, 말하라. 모든 사물 가운데서 가장 불가사의한 것이 가장 명백하게 증명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다. 자아. 그리고 자아의 모순과 혼란이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가장 정직하게 말한다. 사물의 척도이자 가치인, 창조하며 의욕하고 평가하는 자아가 말이다. ...

나의 자아가 내게 새로운 긍지를 가르쳤다. 나 지금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노니, 더 이상 머리를 천상적인 사물의 모래에 파묻지 말고 당당히 들라는 것이다. 이 대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지상의 머리를 말이다! ...

병들어 신음하는 자와 죽어가는 자들이야말로 신체와 대지를 경멸하고 천상의 존재와 구원의 핏방울을 생각해낸 자들이다. 이 감미롭고 음울한 독조차도 저들은 바로 신체와 대지로부터 얻어냈겠다!

저들은 자신들이 처해 있던 비참에서 벗어나보려 했지만 별들은 너무 먼 곳에 있었다. 그러자 저들은 탄식했지. “다른 존재와 행복 속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는 천상의 길이라도 있다면! 하고. 그래서 저들은 도망칠 샛길과 피의 잔이란 것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병들어 신음하는 자들에게 너그럽다. 진정, 그는 저들 나름의 위로와 배은망덕을 두고 노여워하지 않는다. 다만 저들이 병으로부터 건강을 되찾는 자, 자신을 극복하는 자가 되어 보다 높은 신체를 창조하기를 바랄 뿐이다! ...

뭔가를 꾸며내는, 그리고 신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자들 가운데는 언제나 병든 자들이 허다했다. 그런 자들은 깨친 자와, 덕 가운데서 가장 새로운 덕인 “정직성”이라는 것을 몹시도 미워한다. ...

진정, 저들이 가장 믿고 있는 것은 배후 세계도 구원의 핏방울도 아니라 신체렸다. 저들 자신의 신체가 바로 저들의 사물 자체인 것이다. ...

건강한 신체, 완전하며 반듯한 신체가 더욱더 정직하며 순수하게 말을 하니, 이 대지의 뜻을 말해주는 것도 그런 신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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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누구나 한번쯤 다시 태어나는 꿈 또는 망상에 달콤하게 빠져든다. 마치 불교에서 인간의 생 자체가 고 라고 말하듯이 세상살이는 너무나 힘들고, 죽고 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라는 헛된 희망을 품는다. 위버멘쉬에 가까워지려고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창조하려는 차라투스트라조차도 그런 과거있었던 것이다. 이 글에서 니체는 그런 배후 세계를 신봉하는 자들을 분석하고 비판한다. 이를 베르세르크 만화 더불어 생각하면 매우 적절할 것이다.



 베르세르크는 20년 넘게 연재중인 미우라 켄타로의 판타지 만화 걸작으로, 위 장면처럼 작화 하나하나에 엄청난 공을 들이기 때문에 연재가 느리지만 전세계적인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주인공 가츠는 매의 단 용병으로 살다가 용병대장인 하얀매 그리피스에게 배신당해서 그에게 복수를 하러 떠나는 긴 여정이 주요 스토리이다. 또한 스토리의 큰 줄기로 과연 선악이란 무엇인가 종교란 무엇인가 같은 큰 질문을 던지는데, 이를 담당하는 대표적인 캐릭터로 이단심문관 모즈구스를 들 수 있다


 이렇게 평소엔 온화해보이는 모즈구스는 잘못된 종교인을 판별하고 심판을 내리는 이단심문관으로, 니체가 극도로 비판한 허무주의적이고 신체를 죄악시한 종교인의 전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는 평소에도 신앙심을 기르기 위해서라며 자기 신체를 학대하며, 그렇기에 자기 기준에 불경한 타인, 이단의 신체를 더욱 가혹하게 대한다.
 

모즈구스가 처음 등장한 위의 그림에서 모즈구스와 인사한 여성은 파르네제라는 귀족 집안의 딸로, 그와 같이 이단심문 일을 돕다가 모즈구스의 잔인한 행각에 공포에 떨다가 가츠 일행으로 합류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오랜 종교인으로 살아왔기에 마수, 몬스터와의 전투를 앞두고도 검을 잡기보다는 습관처럼 기도를 올리고, 가츠는 마치 니체가 빙의한 것처럼 그녀에게 일갈한다.

그렇다. 위의 글에서 차라투스라가 설교하듯이, 종교인들은 신체를 경멸하고 배후 세계로 가길 원하지만 그걸 기원하는 기도마저도 신체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하물며 괴물이 덤벼드는 전투에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니체는 심지어 칸트의 철학 개념인 사물 자체를 비판하며, 신체야말로 바로 물 자체가 아니냐고 역설한다. 이에 대해서는 복잡한 내용이기에 칸트를 다루는 글을 따로 쓰도록 하겠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신체가 아니고서는 그 어디도 갈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베르세르크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조차 유명한 다음의 명언은, 가츠가 말하는 것인지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것인지 분간조차 어려울 정도로 같은 논지를 품고 있다. 우리는 다른 어떤 피안의, 배후 세계의 천국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항상 우리의 몸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게 아닐까.


계속... 신체야말로 큰 이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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