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왕 비룡과 외국인 혐오가 애국이라는 택시

스샷의 철학 철학의 스샷 3 아즈마의 느슨 철학 c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슬슬 여름 연휴가 시작할 시기다. 아즈마 아재도 휴가를 즐기러 도쿄를 떠나 지방에서 택시를 타는데, 역시나 그의 저서 관광객의 철학처럼 외지로 가면 반드시 오배송된 세계와 마주친다



'저 놈들'이 와서 동네가 혼잡스럽고 말이 안 통하고 매너가 안 좋고 돈도 별로 안 쓴다... 분명 굉장히 순화한 표현 같은데도 뭔가 굉장히 익숙한 레퍼토리의 혐오 표현들이다. 아마도 택시기사의 마지막이 핵심일 듯하다. 외국에서 관광왔으면 돈 펑펑 쓰고 자기한테 팁도 주고 그런걸 기대하려나?


오사카나 교토같은 외국인도 많이 오는 유명한 관광지 일려나. 바르셀로나같은 세계적인 관광지는 관광 공해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만들어내며 외국인 입장을 제한하고 입장료를 따로 받겠다고 뉴스를 본 적도 있는 듯하다. 동네가 혼잡스러워져서 피곤하다는 것은 인정할 만도 하지만 일부러 승차 거부한다는 걸 자랑스럽게 말한다니 이쯤 되면 같은 일본인이라도 어지러워진다. 대체 이 택시기사님은 왜 그렇게 한국인 중국인을 싫어할까??




놀랍게도 기사님은 자기 입으로 말하기엔 멋쩍지만 자긴 '애국자'라서 외국인을 혐오한다고 당당하게 밝힌다. 중국의 마구잡이 어업으로 일본인이 먹을 참치가 줄어들고 가격이 비싸졌다 정도가 그가 애국을 빙자해 혐오발언을 뱉는 논리지만, 현실은 일본의 마구잡이 어업이 가장 큰 비중이고 애초에 바다는 그 누구의 소유일 수도 없다. 한국에서도 중국때문에 횟감이 비싸진다고 말하던 사례들이 종종 들리던데 어찌 이리도 비슷한지.


애초에 각자의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승차 거부는 법적으로도 도로운송법 위반이고 혐오 발언들은 상식 수준의 윤리적으로도 허용될 리가 없다. 과연 일본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탔으면 택시기사는 어떻게 응대했을까? 요새 불법이나 불의를 빌미로 고발하고 단체 조리돌림하는 렉카 유튜브가 유행하는 추세인데 한국인한테만 일부러 매운 와사비를 왕창 넣었다는 초밥집 사례처럼 조용히 녹음 버튼을 누른 후에 나중에 폭로하면 크게 화제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각자의 정치적 입장은 다를 수 있고 외국을 적대시하는 태도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게 볼테르가 말하듯 관용적인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국을 좋지 않게 보는 것과 외국인을 좋지 않게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개인과 국가를 동일시하며 쉽게 분노를 쏟아내는 것은 그 개인이 외교관이나 총리 대통령같은 나라를 대표하는 공인이 아닌 이상 그저 자신의 무지와 저열함을 드러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연휴에 택시에서 불쾌한 혐오발언을 겪었지만 이를 찬찬히 철학적으로 비판하는 아즈마 아재를 보며 난 어릴 적 너무나 재밌게 보던 한 애니를 떠올렸다. 일본판으로는 중화일미, 한국 방영은 '요리왕비룡' 제목으로 내가 중학생때였나 한창 세계적으로 인기있던 포켓몬스터보다도 난 인상적으로 본 만화였다. 이 애니만 아니었어도 군대에서 취사병 지원했다가 2년 내내 식당에서 고통받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지만 그 2년 덕분에 이제 기본적인 요리는 다 자신있게 할 수 있게 돼서 군생활 이후엔 극진하게 감사하게 된 추억의 요리 만화 요리왕비룡.



일본에서 만든 만화지만 배경은 청나라 중국이고 한국에서 공중파 KBS에서 방영해서 사실상 내 또래들은 거의 다 보았다고 봐도 무방한 인기있는 애니였다. 오죽하면 지금도 런닝맨같은 예능에서 종종 패러디로 나오거나 효과음을 재활용하고 요리왕 비룡 이름으로 활동하는 유튜버도 한국에 존재할 정도다.



심지어 한반도 북쪽이 배경이라면서 누가 봐도 한국 냉면을 소재로 연출한 에피소드도 있으니 더더욱 한국인에게 친화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아마 중국에서도 요리왕 비룡은 자국이 배경인 만큼 많이 소개되고 감상하지 않았을까. 지금 케이팝 몬스터같은 넷플릭스 애니가 한국 배경이지만 외국에서 먼저 뜨고 지금 한국에 그 인기가 상륙했듯이, 요리왕 비룡도 중국인에게 인기가 없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만화나 음악같은 문화적인 접근이 동아시아 한중일 3국이 근현대사의 상처를 넘어서서, 그저 쉽고 편한 타자 혐오의 감정에 삼켜지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삼국지는 중국의 역사지만 한국과 일본이 가장 많이 즐기는 문화콘텐츠 소재이고, 케이팝은 분명 일본 아이돌 음악산업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 재창조해낸 음악이고 중국에서 부러워하고 즐기는 문화가 되었듯이... 요리왕비룡의 주 무대인 양천주가의 전통은 전통을 뒤엎는 것이라는 역설적인 말처럼,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받아들이며 조금 더 친해져보면 어떨까. 그런 의미로 저녁은 간만에 중식집에서 냉면을 먹어볼까나. 모두 즐거운 여름의 저녁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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