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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또는 쿠팡, 에어컨 없는 여름의 그림자

스샷의 철학 철학의 스샷6 아즈마의 느슨철학 f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철학자 아즈마 아재가 와세다 교수를 그만두고서 도쿄에서 운영하는 겐론은, 출판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카페이자 강연같은 이벤트를 위한 다목적 공간이기도 하다.


교수였던 아즈마는 어쩌다가 출판사였던 겐론을 이렇게 카페로 운영하게 되었을까? 단초가 느슨하게 철학하기 책에서 살짝 나오는 듯하다



흔히 일본사람은 좁은 공간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어령 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같은 책이 나올만큼 이건 예전부터 연구된 문화적 특성. 먹고 자는 집 뿐만이 아니라 편의점이나 라멘집같은 일상적 공간들이 다들 좁게 설계되어 있다. 심지어 충분히 넓은 빈 공간이 있을지라도 일부러 작게 설계된 편의점이나 라멘집을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역시 일본 문화에서 기원한 공간, 시설은 작은 공간이 효율적이고 아름다운 걸까?



아즈마 아재도 일본에서 자란 71년생인 만큼 그런 일본인의 작은 공간의 미학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가 직접 회사의 사무실을 운영하고 관리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뀐 듯하다. 무엇을 어디에 둘까 머리를 쓰고 꺼내는 데도 머리를 쓰는 수납 비용은 공간 자체의 비용과 분명히 trade off 상충 관계에 있다. 그래서 미국의 아마존은 물류창고를 관리하면서 일본의 작은 편의점과는 반대로 거대한 공간에서 쉽게쉽게 물건을 꺼내고 쌓아둔다. 원하는 대로라면 당연히 아마존처럼 큰 공간에서 원하는 물건을 맘대로 쌓아놓으면 관리하기 편하겠지만,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도쿄에서 함부로 큰 공간을 쓰려다간 임대료만으로도 파산 각이 날카롭다. 그래서 아즈마도 출판사이자 사무실이자 카페이자 이벤트 공연장이라는 다목적 공간으로 겐론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게 아니려나



아마존과 편의점. 어느쪽이 더 효율적이고 아름다운지는 물론 취향 차이도 있고 사용 목적차이나 규모 차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존을 흉내낸, 아니 사실상 모방한 한국의 대표 물류기업 쿠팡은 어떨까. 쿠팡도 분명 수 조원 을 들여서 전국에 거대한 물류창고를 수십대 지었고 지금도 계속 건설중이지만, 내가 수년동안 쿠팡을 직접 체험한 바로는 아마 쿠팡의 창고 관리는 아마존의 공간비용과 일본식 편의점 수납비용의 중간지점에서 최적화를 의도한 게 아닐까 싶다.


넓은 공간이지만 수십명 수백명의 입고 알바들이 각자 랜덤하게 빈 공간에 물건을 쌓고, 그걸 전산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따라 최소화 경로로 출고 알바 수백명이 물건을 집품하고 포장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비용 최적화를 위해 정직원이 아닌 알바들의 인권이나 건강 문제는 뒷전인 것도 아마존을 충실히 벤치마킹하는 쿠팡.



아마존이 지금같은 폭염에서도 노동자가 쓰러져서 앰뷸런스 부르는 비용이 에어컨 전기비용보다 싸니까 여전히 에어컨이 없다는 이야기는 한때 한국 인터넷과 커뮤도 한바퀴 휩쓴 도시전설, 아니 괴담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괴담이 아니어도 실제로 이미 2011년부터 아마존은 노동자 건강 문제로 바이든 정부차원에서 경고를 받은 바 있다. 그들의 무노조 경영은 삼성만큼 유명하다.


38도가 넘는 펄펄 끓는 여름의 창고에서 얼음 막대 하나 주고 계속 일하라고 강요하는 아마존의 무노조 경영방침은 천만명 넘는 회원이 이용하는 쿠팡으로 이미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남의 이야기로 들릴 수가 없다. 그리고 공식 통계는 없지만 한국인 수십만 수백만명이 쿠팡에서 일일 알바를 해보지 않았을까. 낮에 37도 밤에도 30도를 넘는 그 쿠팡의 노동을 오늘도 수만명이 고생하기에 우리의 친애하는 편리한 당일 로켓배송은 오늘도 쉬지 않는다. 이번 여름에는 과연 또 몇명이 쿠팡 창고에서 쓰러질까 그게 바로 다음주의 나 일지도


공간비용과 수납비용같은 비용 줄이기는 당연히 모든 기업들의 최대 과업중 하나다. 쿠팡은 미국 아마존과 일본 편의점의 장점을 합쳐서 더 효율적인 비용 관리를 의도했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효율적으로 사람의 수명을 쥐어짜는 거대한 창고를 발명하는데 성공한 걸지도 모른다. 여러가지 보이지 않는 노동, 보이지 않는 비용을 줄이고 감추려고 한 여러 노력들은 결국 누군가의 생명으로 대신 지불하고 있는 걸지도.


이런 다국적 기업들의 야만적 경영을 막으려면 언론과 정부와 시민사회가 모두 힘을 합쳐야 가능할까. 아니면 가라타니 고진같은 철학자가 말하는 대로 호수성의 원리, 증여의 힘을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는 세계공화국같은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런 거창한 거대서사가 아니더라도 그저 소박하게 사망자 한명도 없이 에어컨으로 가득한 쿠팡에서의 한 여름밤의 꿈은 언제 올까...


라고 소망하는 붉은 돼지는 아즈망가 대왕 개그만화를 보며 고양이를 기르는 작은 북카페에 오늘 또 고양이사료 한 닢 보태본다


하야오 할배의 분신인 붉은 돼지 포르코 대사처럼


그런 세상에서 지중해 하늘을 비행하고픈 여름


"돼지에겐 법도 나라도 없어"


돼지에겐 혹시 공짜 점심도 없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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